날지 못해도 좋다. 제대로 걸을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노동,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조건준(경기금속노조 교육담당 집행위원)
1. 그분 7시간 말고, 나의 7시간
“너무 세게 비판하니까, 지난 30년 동안 노동운동을 해온 인생이 잘 못 살아온 것 같습니다. 비판 좀 살살해요” 며칠 전 노조활동을 하는 간부들과 토론회에 참가해서 우리의 뼈저린 성찰이 필요하다는 발언을 했더니 곁에 있던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나도 민주노조운동을 해온 인생을 깡그리 부정당하고 싶지 않다. 더 나아가 여전히 민주노조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싶다. 맞다. 민주노총이 그동안 해온 역할이 분명히 있다.
“보수 언론이 촛불을 공격하면서 배후에 민주노총이 있다고 하더라, 그런 지적에 대해 오히려 민주노총의 위상이 있다는 생각에 긍지를 가졌다” 한 참석자의 얘기다. 맞다. 민주노총은 잘못된 정부의 정책에 맞서 꾸준히 투쟁해온 집단이다. 혹자는 “민주노총이 박근혜 퇴진을 위해 계속 싸워왔다. 이런 성과위에 오늘날의 거대한 촛불혁명이 일어난 것이니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다분히 과장되어 있지만 이 말도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이 성찰해야 할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 그동안 민주노총은 귀족노조라고 불려 왔는가? 순전히 보수언론의 여론조작과 이데올로기 투쟁에 밀려서 그랬다고만 볼 수 없다. 아무리 여론조작을 하더라도 허위는 드러난다. 민주노조는 공격받을 근거를 내부에서 제공해 왔다는 것을 부인해선 안된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며 권력의 잘못된 정책에 맞서 싸워왔다고 하지만 신자유주의 정책에 동의해온 사례들도 적지 않다. 내 일자리를 지키려 비정규직 사용을 인정했고 내 고용을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의 해고를 외면하기도 했다. 내 임금을 올리는데 관심이 있지만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임금에 대해서는 외면해 오기도 했다. 나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권리를 외면해온 순간들이 적지 않다.
혹독하게 말한다면, 우리는 세월호 선장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내가 먼저 살기 위해서 승객을 버리고 탈출한 것처럼, 내 일자리를 지키려고 타인이 잘리고 비정규직이 되는 것을 외면했다. 세월호 침몰의 골든타임에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가를 묻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7시간 못지않게, 비정규직 늘어나는 동안의 ‘우리의 7시간’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뼈저린 성찰에 이르지 못한다면 그냥 민주노총은 또 하나의 기득권을 가진 권력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2. 내 안의 적폐
성찰 없는 비판은 공감이 약하다. 성찰 없는 비판은 외부의 권력자만 바꿀 뿐 우리 모두의 삶을 바꿀 수 없다. 우리 자신에 대한 통렬한 성찰은 “너도 문제가 있으니 남 탓 하지 말라”는 입막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들여다보면서 뿌리로부터 비판을 통해 너와 내가 바로 변화의 주체라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첫째, 나는 운동권 상당수가 그러하듯 사고방식에 ‘권력종자’가 될 씨앗을 품고 있었다. 오랜 운동권의 사상이론에 따르면 사회혁명이나 개혁은 국가권력을 장악해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회운동의 가장 큰 목적은 ‘권력’이다. 권력추구를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권력욕을 최고 가치로 하는 ‘권력종자’들이 만든 적폐를 보자. 민주노동당을 만들었지만 결국 정파들의 권력투쟁은 패권주의와 종북논란으로 번지며 분열하면서 당이 사라졌다. 부끄럽고 아팠다. 이 과정에서 나는 정당했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현장조합원들에게는 웃기는 짓이었다. 근본적으로 성찰하지 못하면서 다시 “정당을 만들자”는 것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몰염치’고 ‘후안무치’다.
둘째, ‘권력종자’였던 나는 사회운동을 ‘권력경쟁’으로 변질시켰다. 나도 한때 목적이 권력을 잡는데 있었던 정파조직원이었다. 정파의 모든 활동과정이 ‘정파권력 확장과정’이다. 정당에서 권력을 잡기위해 조직원을 늘리고, 지지하는 노동조합을 늘리기 위해 노조를 정파의 정치도구로 만들고, 노조집행부를 잡기위해 대리투표를 비롯한 최소한의 민주주의도 무너뜨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권력종자’에게는 ‘민주주의보다 권력 장악이 우선이다’. 정파들의 권력투쟁에 의해 무력화되고 무너지거나 맹동주의자들로 가득차 도저히 민주노조라고 볼 수 없는 사례들을 꼽으라고 하면 단 1초의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쭉 나열할 수 있다. 자본주의 시장은 인간을 ‘이익경쟁’으로 내몰고 낡은 운동권은 인간을 ‘권력경쟁’으로 내 몰고 있다.
셋째, 나는 박근혜, 최순실을 비롯한 비선실세를 만들지 않았던가? 노동운동과 노조활동에 비선실세들이 많이 보인다. 나도 노동조합의 공식적 회의와 논의보다 정파조직의 비공식적 논의와 비공식 라인을 통해 결정한 적이 있었다. 노조 상급단체간부를 채용할 때, 공개채용 없이 정파조직원을 발탁 채용한다. 채용공고는 형식적으로 하고 결국 자기 정파사람을 채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모두 입사비리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특채비리와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분명히 사리에 맞지 않는데 정파의 비선라인을 통해서 관철시킨다. 분명히 맞는 일인데 정파의 비선라인을 통해서 거부당하는 일이 있다. 우리안의 적폐들은 모두 공개적 소통과 투명한 운영을 해야 하는 대중조직의 운영원리를 무너뜨리는 ‘조직농단’이다.
넷째로 나는 세월호 선장의 모습을 가졌다. 정리해고가 닥치자 ‘나만 살자’고 ‘너 죽든 말든’ 외면했던 때가 있었다. 내 이익을 위해 비정규직의 권리를 외면한 사례가 너무 많아 차마 입에 담기 어렵다. 내 새끼를 위해 비싼 과외비를 들여서 경쟁시키면서 ‘성적경쟁, 입시경쟁, 취업경쟁’을 시켜 왔다. 내 새끼는 정규직이 되도록 고용대물림을 만들기도 한다. 심지어 돈 받고 취업비리도 저지른다. 그렇게 내 새끼를 위해 남의 자식을 버리는 일을 해 왔다. 그렇게 내 이익을 위해 뇌물을 받고 정당하게 취업해야 할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기도 했다.
다섯째로 특권을 누리며 무권리를 외면하며 살기도 했다. 그토록 수없이 많이 쏟아진 비판을 들으면서 정규직 대공장은 권리를 누리고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가 무권리 상태로 사는 것을 외면한 경우가 적지 않다. 민주노총은 계급대표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끝없이 달고 산다. 이런 민주노총이 백만 촛불집회에서 주도권을 가지려 한들 가질 수 없고 가져서도 안된다.
내 안의 적폐를 얘기하자면 숱하게 많다. 그만 얘기하겠다. 물론 나는 잊지 않는다. 이런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부단히 싸워온 민주노조들이 있다는 것을, 주변의 숱한 노조간부들과 조합원들과 함께 이런 적폐들을 넘어서 ‘아름다운 스토리(美談)’를 만들기 위해 무던히 애도 썼다. 그러나 나와 내 주변의 미담들은 아직 민주노총, 전체 노동운동의 확실한 이미지로 확장되기엔 부족하다. 민주노총을 보면 가슴 아프지만 자랑할 것 보다는 성찰해야 할 것이 더 많다.
뼈저린 성찰이 보여야 한다. 성찰의 결과가 숱한 실천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배부른’ ‘이기적’ ‘과격’이라는 이미지들을 넘어설 만큼 미담이 늘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은 비로소 바뀐다. 야당의 누가 대통령이 되든,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이 몇 명이 되든 절대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이런 미담들이 넘쳐 날 때 세상은 비로소 바뀔 것이라 확신한다. 이것이 금속노조 경기지부 조합원들이 내게 가르쳐준 교훈이다. 헬조선의 혁명은 그들이 아니라 너와 내가 만든다.
3. 근본적 수정
첫째로 권력보다 권리가 우선이다. ‘권력종자’를 만드는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자. 권력을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다. 세상의 모든 인간관계를 권력욕망으로 해석하는 이론도 있다. 혁명을 위해 정치세력화를 위해 ‘권력의지’를 일부러 키우려는 사람도 있다. 가끔은 그런 사람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화시키지 말자. 권력은 소수의 것이고 권리는 만인의 것이다. 권력은 특수하고 권리는 보편적이다. 권력은 오직 권리를 지키고 확장할 때만 정당하다. 좌파니 진보니 하지만 20세기 사회주의에서 보듯 권력은 권리를 잡아먹었다. 노동자권력이니 민중권력이니 하는 말들은 다 사기다. 지금 한국의 사회운동에서도 권력은 권리를 잡아먹고 있다. 권력투쟁보다 권리확장과정이 사회운동이다. 나는 좌파도 우파도, 진보도 보수도 아닌 오직 ‘권리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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