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은 아쉬움

늦게 온 소포_고두현

대지의 마음 2020. 1. 2. 16:02

늦게 온 소포
_고두현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 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꺼풀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몇 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울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리라"


헤쳐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리 내다본 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