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서 구출된 소는 결국 ‘식탁’에 오를 것이다
강석영 기자_민중의 소리
2020. 0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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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인 폭우로 피해를 본 건 사람만이 아니었다. 마을이 물에 잠기자 축사를 탈출한 소들이 지붕 위로 몸을 피했다. 떼 지어 도로를 달린 소들도 있었다. 530m 높이의 산속 절로 소 10여 마리가 모여들기도 했다.
“소들이 살려고 그랬단다. 사람이나 소나 살고 싶은 건 마찬가지다” (트위터 이용자 so********)
재난이 발생하자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이들의 존재가 주목받았다. ‘죽기 위해’ 태어난 이들이었다. 농장·도살장에 갇혀 보이지 않던 이들이, 일상에서 우리처럼 고통받는 모습을 드러내자, 그들 역시 살고자 하는 생명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안타깝게 죽은 소들이 너무 가엾다” (트위터 이용자 mo************)
“무사히 구출됐으면 좋겠다” (트위터 이용자 11******)
“장마에 살아남은 소들은 꼭 제 명까지 살았으면” (트위터 이용자 da************)
며칠 새 지붕 위 소들은 무사히 ‘구출’됐다는 소식, 절에 간 소들은 ‘안전한 곳’으로 옮겨졌다는 소식들이 보도됐다. 그런데 과연 이들은 안전한 곳으로 구출된 걸까? 소들은 농장으로 돌아갔다. 20년을 살 수 있는 이들은 좁은 곳에 갇혀 태어난 지 30개월 만에 도살장에 끌려가야 한다.
지붕 위에 올라갔던 소가 지난 11일 송아지 2마리를 출산했다는 뉴스에 ‘기적 같은 탄생’이라는 반응이 잇따랐다. 다른 소들이 구조될 때도 유독 지붕에서 버텼던 어미 소다. 주인은 ‘자식 같은 소’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안쓰럽다고 했다. 하지만 소는 이내 ‘자식’을 빼앗길 것이다.
“소들이 도망친 재난이 폭우인지 인간인지 모르겠다. 육식에 대한 회의가 이런 식으로 찾아올 줄 몰랐다” (트위터 이용자 ho***********)
10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의 한 마을에서 소방대원들이 축사 지붕에 올라갔던 소를 크레인을 이용해 구조하고 있다. 집중호우와 하천 범람으로 물이 차오르면서 떠올라 지붕으로 피신했던 일부 소들은 건물 지붕이 붕괴되며 떨어졌다. 2020.8.10ⓒ뉴스1
동물권 직접행동단체 디엑스이코리아(Direct Action Everywhere-Korea) 섬나리 활동가는 지난 12일 인터뷰에서 “소가 이렇게 빨리 뛰는 걸 본 적이 있나. 원래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살아야 할 이들을 우리가 평생 가둬놨다”라며 “살고자 도망쳤던 이들은 다시 농장으로 끌려갔다. 이런 역사를 가진 이들도 도살장을 거쳐 우리 접시 위에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소도 ‘느끼는 존재’
“도살장 앞서 겁에 질려 눈물 흘린다”
섬나리 활동가는 소들도 ‘느끼는 존재’라고 강조했다. 그는 농장·도살장 등을 찾아 농장 동물이 경험하는 폭력적 현실을 마주하는 ‘비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누렁소들이 축사에서 얌전히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뛰어다닌 소들을 보면 알 수 있듯, 원래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살아야 할 이들이 움직일 공간도 없는 곳에 갇혀 있다. 답답하고 열악한 환경을 견디고 있다”
이른바 ‘한우’로 길러지는 누렁소들은 단백질 및 지방 보조제로 만든 사료를 먹고 14개월 만에 10배 이상으로 체중이 증가한다. ‘젖소’로 길러지는 얼룩소는 더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다. 우유 생산을 위해 강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다가 2년도 안 돼 주저앉는다. 모든 걸 빼앗긴 소들은 도살장에서 마지막 목숨을 빼앗긴다.
“소들도 자신이 죽으러 간다는 걸 알고 있다. 도살장 앞 소들은 마치 사형수가 사형장에 끌려가기 직전처럼 덜덜 떨며 똥오줌을 싼다. 겁에 질린 눈에선 눈물이 흐른다. 이들도 우리처럼 죽음 앞에서 슬픔을 느끼고 공포에 떠는, 세상을 느끼는 존재다”
도살장 앞에서 만난 얼룩소ⓒDxE-KOREA
“도살장 앞 트럭에 실린 누렁소에 가까이 다가갔더니, 놀랐는지 주저앉아있던 소가 다리를 벌벌 떨며 일어나 똥을 쌌다. 트럭 기사가 내리더니 ‘왜 가까이 오냐’며 ‘소가 놀라면 고기가 경직돼 손해를 본다’고 소리 질렀다. 공포와 두려움에 떠는 소를 보며 ‘고기가 경직된다’고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현실이 끔찍했지만, 이 사회에서 당연한 인식이다. 우리는 소들이 죽어있는 도시에서 그들을 먹으며 살고 있다”
“몸에 스프레이로 ‘홍성 한우’라고 쓰여 있던 소들과 살기 위해 도망치던 소들이 대비됐다. 인간은 소들을 ‘가축’이라 낙인찍고 착취와 학살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
섬나리 활동가는 우리가 ‘아기 소’를 먹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의 평균 수명은 20년 가까이 되지만, 평균 2년 6개월 만에 도살장 신세다.
“구조된 소들은 오래오래 살다가 결국 죽는 게 아니다. 정말 짧은 시간을 사는 아기들이다. 우린 신생아를 잡아먹는 사회에 살고 있다. 10년을 사는 닭은 한 달 만에, 15년을 사는 돼지는 6개월 만에 도살장 행이다. 인간이 허용한 만큼 동물들은 생존할 수 있다”
살려고 도망친 소
‘도살장’으로 돌아와
“온 사회가 도살장이다”
구출된 소가 결국 도살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섬나리 활동가는 “온 사회가 도살장”이라고 비판했다.
“도살장은 우리가 살면서 굳이 찾아가지 않는다면 볼 일이 없도록 외곽에 숨겨져 있다. 하지만 죽은 동물들이 온 도시에 널려있는 게 현실이다. 소들에게 도살장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점은 소들에겐 온 사회가 도살장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곳이 도살장인 사회에서 ‘자식처럼’ 키운 소에게 ‘자식’을 빼앗는 게 현실이라고 섬나리 활동가는 지적했다. 자식을 빼앗긴 소는 몇 주를 굶으며 창자가 끊어질 듯 울부짖는다고 그는 전했다.
“소는 다른 포유류처럼 자식과 유대감이 끈끈하다. 어미 소가 송아지를 핥아주며 젖도 주고 계속 붙어있으려고 한다. 하지만 송아지는 4~500만 원에 팔려간다. 사람들은 송아지를 어미 소에게서 빼앗으면서 자식같이 키웠다고 한다. 진짜 자식을 빼앗긴 소의 심정은 어떨지 생각해야 한다. 소를 재산으로 취급하니 이런 감정들은 무시된다”
필요에 따라 송아지를 산 채로 강물에 버리기도 한다. 젖소의 수컷 송아지는 키우면 키울수록 손해가 난다는 이유로 탯줄까지 그대로 남은 송아지를 익사시키려 한 것이다. 암암리에 안락사시키거나 땅에 묻는 일도 벌어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물폭탄을 피해 지붕으로 올라갔던 전남 구례군 양정마을의 어미소가 구조된 다음날인 11일 새벽 건강한 쌍둥이 송아지 2마리를 출산했다. 갓 태어난 송아지들이 사이좋게 어미의 젖을 먹고 있다.ⓒ뉴스1 (구례군제공)
전라북도 등에 따르면, 지난 10일 오전까지 닭·돼지·소 등 49만여 마리의 동물이 폐사됐다. 질병 등을 이유로 앞으로 더 많은 동물이 폐사될 예정이다. 재난에서 동물의 위치를 묻자 섬나리 활동가는 “동물의 삶 자체가 재난”이라고 말했다.
“이번 홍수나 산불처럼 인간이 집단 피해를 봤을 때만 동물의 피해가 뉴스에 실린다. 하지만 돼지 농장 화재만 검색해봐도 이틀 건너 하루꼴로 불이 난다. 돼지가 천여 마리 죽어도 단순 개인이 재산을 잃은 것으로 치부돼 뉴스에 실리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재난이라고 하는 곳에서 동물들은 더 잔인하게 죽을 뿐이다. 이들은 존재조차 인정되지 않는 물건으로 살고 있다”
“육식 멈춰야 기후위기 막는다”
이번 장마의 원인으로 기후위기가 지목됐다. 축산업은 기후위기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축산업에서 전 세계 온실가스의 16.5%가 배출된다. 특히 육류 제품 관련 부분의 비중은 61%가 넘는다. 전 세계 모든 교통수단이 내뿜는 탄소보다 많은 양이다.
섬나리 활동가는 축산업이 전 산업과 연결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축산업을 하나의 독립된 부분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고기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사료를 만드는 과정, 동물을 키우고 죽이는 과정 모두 에너지가 필요하다. 동물 사체가 썩지 않기 위해 대규모 냉장 유통도 필수다. 아울러 축산업은 외식업, 엔터테인먼트 등 전 산업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축산업의 탄소 배출은 모든 부분과 연결됐다. 단순히 ‘고기 생산’에서 배출되는 탄소만 계산할 일이 아니다”
8일 오후 전남 구례군의 명소인 사성암에 10여마리의 소떼가 올라와 있다.구례군은 이 소들이 어떤 이유로 500고지의 산 정상 암자로 올라왔는지를 살펴보고 있다.ⓒ구례군
소는 트림, 방귀에서 메탄가스가 나오는 탓에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하지만 섬나리 활동가는 소가 ‘주범’이라는 표현에서 그들이 착취되는 구조가 가려진다고 꼬집었다.
“소가 배출하는 메탄가스로 기후위기가 발생한다는 식의 주장은 마치 소한테 문제가 있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기후위기를 일으킨 건 인간이다. 소를 많이 태어나게 한 것도 우리고, 기후위기로 비참하게 죽는 것도 동물이다”
육식에 회의를 느끼는 것을 넘어 축산업 등 사회 전체를 바꿔야 한다고 섬나리 활동가는 강조했다.
“동물이 죽는 걸 보면서 연결된 존재로서 우리가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결국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변화의 동력이 떨어질 것이다. 인간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계층이 먼저 죽는 걸 신경 쓰지 않은 채 이루어지는 논의가 나이브한 것처럼 말이다”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넘어서 사회를 바꿔야 하는 문제다. 장마 이후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유행할 것이라고 하더라. 작년 말 경기 북부를 휩쓸어 살처분된 돼지들의 피로 임진강이 빨갛게 물들었다. 이런 일들이 얼마나 반복돼야 하는 건가. 지구의 포유류 중 60%가 축산동물이라는 건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우리가 동물들을 더 태어나게 하지 않으면 끝날 일이다. 우리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면 바로 바뀔 수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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