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들 이야기 1 - 복수초같은 사람들아!
3월 29일 저녁 철도 간부들, 해고자들의 술자리에 함께 하게 되었다.
그날 오전에 광주지역, 순천지역 10명의 해고자들에 대한 행정소송 결과가 나왔다.
광주지역 4명의 해고자들은 복직판결을 받았고 순천지역 6명의 해고자들은 패소했다.
지난 22일 행정소송에서 다른 지역 해고자 11명이 모두 복직판결을 받았던 터라 내심 모두들 기대가 컸었다고 한다.
드디어 모든 해고자들이 복직될 수 있겠구나 기대를 하며 밤잠을 설치기도 했으리라.
저녁 술자리에는 복직판결을 받은 광주지역해고자 한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순천지역 간부,해고자들이었다.
모두가 복직판결을 받았더라면 모두가 환하게 웃을 수 있으련만, 웃음이 넘치는 자리였으나
‘복직되지 못한 해고자들의 가슴속은 어떠할까?’
술잔을 부딪히며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감정이 조금 복잡해지기도 했다.
술잔을 부딪히며 하나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정년을 4년 앞두고 있는 54세 해고자...
“어제 아내가 몇일전에 30% 세일해서 산 구두를 신어보았어. 복직하면 깨끗한 구두신고 출근하라고 샀더라구.
근무복 바지도 입어보았는데 살이 쪄서 안맞드라고..허허...” 너털웃음 지으신다.
기대는 많이 했지만 기회가 또 있으니 괜찮다 하신다.
노동조합 지부장이 되어 처음으로 참가한 파업에 해고되고 늦깍이 간부로 생활하면서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생활하신 분이다.
작년 여름에는 십여일간의 노동자통일선봉대를 다녀오시기도 하셨다.
복직의 부푼 꿈을 안고 아내와 함께 웃으면서 신발도 신고 근무복도 입어보았을 그날 저녁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올뻔 했다.
복직판결을 받았지만 다른 동료의 판결에 괜스레 미안해하는 광주지역 해고자...
“마누라한테 전화해서 ‘나 복직됐네’ 했더니, ‘그래요’ 그러면서
‘당신말고 다른 사람들은?’ 하고 바로 물어보더라고...”
“솔직히 기분이 막 좋지는 않아. 다른 사람들이 복직되지 못한 것도 있지만,
전에 우리 본부장이랑 술 먹으면서 내가 어떤 일이 있어도 본부장과 임기를 같이 한다고 했거든.”
“이제 출근해야 하는데 우리 본부장 어떡하나? 생각이 들어.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약속한거는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거든.” 하신다.
출근해서 일주일에 한번을 순천에 오더라도 꼭 본부장과 임기를 같이 할거란다.
그러면서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솔직히 말하면 기분 좋습니다.”
자신의 복직에 기뻐하기 보다는 동료들의 마음을 더 걱정하고 본부장을 생각하는 그 마음에 술잔을 한번 더 부딪혔다.
파업 당시 본부장이었던 해고자...
“솔직히 저는 복직되기 힘들거라 생각했고 저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은 다 되기 바랬는데 이렇게 결과가 나와서,
그때 당시 제가 너무 세게 해서 그러지 않았나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광주지역의 4명의 해고자가 복직되었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동료들이 복직되지 못한 게 자신의 책임인것만 같아 미안하다는 그를 보며 다시 또 술잔을 부딪힌다.
지노위에서 복직되었다가 중노위에서 다시 해고된 해고자...
“어제 아내한테 ‘어이 나 내일 복직될 것 같네.’ 했다가 오늘 전화해서 ‘어이 안되브렀네’ 했더니
‘그럼 그렇지 당신이 자신할때부터 알아봤네’ 하면서 담담해 하더라구” 하면서 발그레한 얼굴로 웃는다.
거기다 한 술 더 떠 “복직판결받은 재필이 형님이 화장실에서 몰래 킥킥 웃고 있나 해서 1층 화장실 갔더니 아무 소리도 안나대.
그래서 2층 화장실로 갔더니 거기서도 아무 소리도 안나대. 역시 의리있어.” 하는 소리에 좌중은 웃음폭탄이 터지고 말았다.
그렇게 한참을 웃으며 술잔을 기우리는데 하는 말
“근데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어요. 술로도 채워지지 않네요.” 하면서 웃는다.
가슴 한 쪽에서 찌릿한 느낌이 전해온다.
다들 떠들썩하게 웃는 가운데 아무말없이 술잔을 주고받던 본부장이 말한다.
“해고생활이라는게 삶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들은 아주 나은 편입니다.
어제 대의원대회에서 결의를 했습니다. KTX민영화저지를 위해 큰 투쟁을 할 결심을 했습니다.
간부들이 어떤 눈빛으로 어떤 발걸음을 딛는가에 따라 우리의 투쟁이 달라질 겁니다.” 잠시 자리가 숙연해졌다.
본부장이 말로 표현 하지 않았지만 구속을 각오하고 해고를 각오하고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다.
해고자들의 복직판결과 패소의 희비가 엇갈렸던 그날 저녁,
본부장은 또다시 구속도 마다않고 해고도 마다않고 투쟁을 결의하자 조용히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이야기한다.
“어제 대의원대회 마치고 지방본부장들끼리 뒷풀이하는데 이야기했습니다.
막상 파업에 들어가면 조합원수가 많은 서울본부의 모습을 막상 주목하겠지만,
조합원수가 많지 않는 호남지방본부는 큰 변수가 아닐수도 있지만,
당신들은 호남지방본부의 모범을 따라 배워야 할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우리 호남지방본부는 전국의 모범으로 서고 있으며 모범으로 서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그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본부장의 말에 모두들 깊은 동의의 눈빛이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철도노조 홈페이지를 봤더니 철도노조 정기대의원대회 시상식으로 모범지구, 모범지부, 모범조합원상을 호남본부가 거의 싹쓸이 하다시피 한 것이다. 그때서야 이해가 됐다. 그들의 가슴깊은 연대의 동의와 그 눈빛들이...
KTX 민영화저지 서명운동 10만명 돌파!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정말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노동조합을 통해 너무도 아름답게 변한 사람들의 모습을 오늘 나는 또 보았다.
낮에 차를 타고 오던 길에 본 이수중학교 담벼락을 뒤덮고 있는 개나리꽃처럼
이렇게 아름다운 이들이 있어 철도현장에 새봄이 오리라 믿는다.
그냥 그렇게 쉽게 오지는 않을 것이다.
구속도 해고도 담담하게 껴안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 곁을 떠나지 않는 동료들이 있으니,
긴 겨울 얼음속을 뚫고 나오는 복수초 노란꽃잎처럼 그들에게 봄은 그렇게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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