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는 주중에 늘 마주치던 똑같은 대화 상대와 직업적인 근심을 되씹는 행위가 아니다. 나는 동료들과 함께 외국에 나갈 때면 도쿄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풍경은 감상 않고 마치 여전히 파리나 스트라스부르에 있기라도 한 듯 학내 문제를 논하고 싶지 않아 차라리 혼자 있을 만한 곳을 찾아 달아나곤 한다. 마찬가지로 동상이 세워진 어느 장군의 전기나 뒤돌아서면 바로 잊어버릴 어떤 조형물의 존재 이유에 대해 끝도 없이 지루한 설명을 듣는 일도 영 탐탁지 않다. 예컨대 도심을 걷는 사람은 관광지나 기념물들을 찾은 관광객과는 사뭇 다르다. 지나치는 길에 힐끗 시선을 던진다거나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습관적으로 흡족하게 바라보는 일은 있어도 그 장소들을 마주칠 때마다 마음속을 훓고 지나가는 감정이나 느낌은 최소한이고 일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