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
_세월호 참사 이후 돌아본 대형사고의 역사와 교훈
_박상은 지음(사회운동 작은책)
1. 안전지키는 방식의 변화
-안전을 지키는 방식도 바뀌었다. 정부는 해상안전을 위해 규제와 감독을 강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선주들의 해상보험, 승객들의 여행 보험 가입을 권장해 왔다. 구조, 구난 민간업체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 정부는 치안업무는 물론 구조, 구난업무에서도 민간위탁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시민의 안전도 시장에 위탁하고 있는 것이다.(25쪽)
2. 대구지하철 화재
-영국에서 1863년 지하철이 개통된 이후 전 세계 지하철 사고 중 1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대형참사는 총 세건인데 그 중 두 건이 한국, 대구에서 일어났다. 1995년 폭발사고와 2003년 화재사고가 100명 이상의 사고를 낸 사고다.
-사고 직후 기관사는 열차 전원을 통제하는 ‘마스콘키’를 뽑아 도망간 정신이상자로 취급을 받았을뿐더러 법적으로도 최고형을 받았다. 그런데 ‘마스콘키’는 본래 사고가 일어나 기관사가 자리를 벗어날 때는 뽑아서 가도록 규정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기관사가 아닌 다른 사람이 전동차를 조작하여 더 큰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또 이미 전동차 내의 회로가 화재로 손상되었기 때문에 마스콘키가 꽂혀 있었어도 전동차문을 조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참사 이듬해인 2004년, 철도안전법이 새롭게 제정된다. 이 법은 철도종사자의 면허관리와 시설검사에 대한 기준을 정하고 있는데 안전관리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내용이 없고 기관사 면허제만을 새롭게 도입한 법이라고 비판받았다.
3. 1987년 프리 엔터프라이즈호 침몰
-사고의 직접적 원인은 뱃머리 출입문을 닫지 않고 출항한 후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밀려 들어와 복원력을 잃고 배가 기울었기 때문이었다. 사고의 직접적인 책임자로 문을 닫는 임무를 맡은 부갑판장, 문이 닫혔는지 확인할 임무가 있던 1등 항해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독해야 하는 선장이 지목되었다.
사고 당시 부갑판장은 지브뤼게 항구에 도착한 후 차량 갑판을 청소하고 선실에서 잠이 들었다. 1등 항해사는 부갑판장이 오는 것을 보고 부갑판장이 자신의 임무를 할 것으로 생각하고 브릿지로 이동했다고 진술했다. 갑판에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갑판장의 경우 문을 닫는 것은 자신의 임무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선장실의 구조상 선장은 문이 열렸는지 여부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었고, 선장실에서 문의 개폐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신호기도 없었다.
사건 이후 법정에서는 부갑판장, 1등 항해사, 선장이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것을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런데 이런 부주의는 운항사의 업무 행태에서 기인했다는 점이 조사를 통해 속속 밝혀졌다. 법원은 기업 전체에 ‘부주의라는 병’이 만연해 있었다고 지적하였다. 예를 들어 뱃머리 출입문 위쪽으로까지 파도가 올라오는 문제가 제기되고, 출입문의 개폐 상태를 표시하는 지시기를 설치해달라는 요구가 있었으나 둘 다 무시되었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선장들이 제대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였고, 후자는 선원들이 일을 제대로 한다면 그러한 지시기를 필요가 없을 것이란 이유였다.
4.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
-일본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JR 서일본의 기업체질을 비판하는 최종보고서를 공표하였다. 사고의 배경에 기관사에 대한 징벌적인 일근교육이나 징계가 있었기 때문. 조사위원회가 사고 원인에 대해 기업체질의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한다.
5. 새로운 안전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안전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자동화로 인적오류를 없애 사고를 줄이겠다는 전통적인 안전패러다임은 실패했다. 자동화된 설비와 이를 기반으로 한 작업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음에도 사고는 반복되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늘어났다. 자동화가 이루어졌음에도 사고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동화로 인해 어떤 부분의 안전성이 개선되면, 다른 부분에서 위험을 무릅쓰기 때문이다. 이렇게 감수하는 위험의 정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경향을 ‘위험 항상성’이라 부른다.
전문가와 경영진은 노동자는 자동화된 기계를 매뉴얼대로 잘 다루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규율과 통제가 강화되었는데 이는 오히려 대형사고의 전조인 경미한 사고를 잡아내기 어렵게 만들었다.
기업주는 쉽게 이러한 문제제기를 회피할 수 있다. 자신들은 안전제일을 내세우고 있고, 안전수칙을 위반하라고 명령한 적이 없다고 말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부의 안전대책은 ‘안전 산업 육성’이라는 명목 하에 기업 이익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제출되고 있다.
사고의 원인을 개인이 아니라 전체 조직의 시스템에서 찾고자 하는 시도는 ‘조직사고’라는 개념을 낳는다. 조직사고는 한 번 일어날 경우 큰 피해를 가져오며 핵발전소, 항공기, 석유화학, 화학공장, 해양수송이나 열차수송 등 복잡한 최신 기술을 사용하는 분야에서 발생한다. 사고의 원인이 복합적이고 각 단계별로 수많은 원인제공자가 존재한다. 따라서 어떤 개인을 책임자로 특정하기 어렵다. 오히려 문제는 조직의 운영방식, 즉 개인과 개인 혹은 개인과 시스템이 관계 맺는 방식이다. 조직사고에는 사고에 관여된 사람들과 피해자가 다르다는 특징도 있다. 항공기나 철도, 여객선 승객은 그 시스템에 관여한 적이 없지만 사고가 일어날 경우 속수무책으로 피해자가 된다. 그러나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점검을 소홀히 하고, 노동자에게 경제적 압력을 가해 실수를 유발한 이들은 사고의 피해자가 되지 않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직후, 2009년에 여객선 선령제한을 최대 25년에서 30년으로 완화한 조치가 주목받았다. 이 역시 명목상으로는 각종 안전관리감독의 강화와 함께 추진되었다. 수직 증축 리모델링도 마찬가지였다. 안전성 검사는 규제 완화를 정당화하기 위한 책임 회피 수단에 가깝다.
공공부문 민영화는 큰 틀에서 규제완화 정책의 일부이다. ‘안전 민영화’ 방안이다.
안전 산업 육성으로 안전 문제를 풀겠다는 것은 오히려 ‘이제부터 국가는 안전을 책임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안전민영화는 구조 과정에서 해경의 무능이 드러나자 해경을 해체했던 것만큼이나 황당하고 무책임한 해법이다.
안전불감증은 안전사고의 원인에 대한 매우 손쉬운 진단이다. 하지만 자신의 안전에 불감한 사람은 없다.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노동자에게 위험작업을 중지할 권리를
기관사가 위험 상황에 운행을 멈출 권리가 보장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를 실제 사용했을 때 책임을 추궁하는 조직의 문화가 존재한다면 노동자들은 실제 이 권리를 사용할 수가 없다.
1994년 스웨덴 에스토니아호는 기상악화에도 불구하고 출항했다 침몰해 무려 852명이 사망한다. 선장은 기상이 나쁘면 운항을 정지하거나 도착 시간을 늦출 권한이 있었지만, 에스토니아호 선장은 날씨와 상관없이 정시에 도착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스웨덴은 그 무엇보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문화를 통해 운항 거부가 가능하게끔 만들고자 노력해왔다.
매뉴얼은 만능이 아니다
JR동일본과 에스토니아호 사고를 겪은 스웨덴이 동시에 지적하고 있는 것이 있다. 매뉴얼이 만능이 아니라는 것이다. 매뉴얼은 사고 대응에서 70~80%밖에 책임지지 못한다. 사고는 여러 요인이 복합되어 일어나는 것이고, 실제 상황대처에서는 노동자의 판단력이 중요하다.
에스토니아호 사고를 겪은 뒤 스웨덴은 해양학교에서 안전 프로그램을 강화했다. 스웨덴 역시 이전까지는 사고가 발생하면 매뉴얼을 강화했다. 그러나 에스토니아호 사고 이후에는 배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교육을 새로 시작했는데, 이 교육은 ‘위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해야 하는지’에 방점을 찍은 교육이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책임에 대해
1차 구조책임자인 선장 및 선원들이었다는 점에서 선장 및 선원들이 중형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납득하더라도, 구조적인 원인을 제공한 자들에 대한 형량이 이들에 비해 너무 낮다. 회사의 안전정책에 대한 결정권을 기준으로 본다면 오히려 권한이 가장 적었던 이들이 중형을, 권한이 가장 많은 이들이 가벼운 형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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