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철마야

나는 쓴다_시인 김명환

대지의 마음 2016. 10. 19. 06:12






나는 쓴다

- 브레히트와 김지하의 시운에 부쳐

 


 

하얀 광목 위에

나는 쓴다

빠앙!

기적을 울리며 달려온 세월

두 눈 비비고 저 멀리

아이를 업은 아내와

아내의 등에 업힌 아이를 위해

나는 쓴다

끼익, 끼이익!

아, 혀를 물고 철길에 쓰러지던 동료들

동료들의 빈소를 지키던 아주머니

허공을 쳐다보던 아이들의 텅 빈 눈망울 위에 나는 쓴다

 


눈을 뜨면 밥을 먹고 직장으로 달렸다

나의 노동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맛난 먹거리와 따뜻한 잠자리를 주었다

이마에 구슬땀 흘러

기차바퀴 축에 기름을 쳤다

하나 둘 여차, 동료와 호흡 맞춰 침목을 깔았다

나의 노동은, 우리의 노동은

철길을 놓고 기차를 달리게 했다

그렇게 달려온 우리들

아비와 어미와 남편과 아내와 자식인 우리들

 


서럽던 시절,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고

하루건너 픽 픽 동료들이 철길에 쓰러지던 시절

우리는 보았다

너와 내가 함께 소리 지르면 노래가 되고

함성이 되는 것을

너와 내가 손 잡으면 단결이 되고 연대가 되어

진행, 진행, 진행, 신호기마다 파란 불빛 달고 내달려

노동이 존중받는 일터 사랑으로 믿음으로 하나 되는 삶터를 만든

철도노동자의 꿈과 긍지

 


저들은 모른다

자갈밭을 모른다

단 한 번도 동료들과 피눈물 흘려본 적이 없는 저들은

철길을 모른다

나 살자고 동료를 버리는 자갈밭에

레일 한 장 침목 한 장 놓일 수 있겠는가

나 살겠다고 안전을 팽개치는 철길에

열차가 단 한 걸음이라도 발을 뗄 수 있겠는가

누가 감히 나의 노동을 줄 세우려 하는가

누가 감히 우리의 노동에 성과를 따지려 하는가

누가 감히 나와 동지를

동지와 나를

갈라놓으려 하는가

 


보아라!

우리가 얼마나 굳세게 전진하는지

들어라!

우리의 함성이 얼마나 크게 울려 퍼지는지

 


한 대의 기관차를 움직이기 위해 모여든

수많은 동지들의 숭고한 노동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들의 꿈과 긍지를 위해

나는 쓴다

하얀 광목 위에

뚝 뚝 떨어지는 피눈물로 쓴다

아내와 아이들과 남편과 어머니의 얼굴 위에

그 해맑은 미소 위에 눈망울 위에

떨리는 손으로

떨리는 가슴으로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는 쓴다

총파업승리!

물러설 수 없는 우리들의 염원

총파업승리라고 쓴다



_시인 김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