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쓴다
- 브레히트와 김지하의 시운에 부쳐
하얀 광목 위에
나는 쓴다
빠앙!
기적을 울리며 달려온 세월
두 눈 비비고 저 멀리
아이를 업은 아내와
아내의 등에 업힌 아이를 위해
나는 쓴다
끼익, 끼이익!
아, 혀를 물고 철길에 쓰러지던 동료들
동료들의 빈소를 지키던 아주머니
허공을 쳐다보던 아이들의 텅 빈 눈망울 위에 나는 쓴다
눈을 뜨면 밥을 먹고 직장으로 달렸다
나의 노동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맛난 먹거리와 따뜻한 잠자리를 주었다
이마에 구슬땀 흘러
기차바퀴 축에 기름을 쳤다
하나 둘 여차, 동료와 호흡 맞춰 침목을 깔았다
나의 노동은, 우리의 노동은
철길을 놓고 기차를 달리게 했다
그렇게 달려온 우리들
아비와 어미와 남편과 아내와 자식인 우리들
서럽던 시절,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고
하루건너 픽 픽 동료들이 철길에 쓰러지던 시절
우리는 보았다
너와 내가 함께 소리 지르면 노래가 되고
함성이 되는 것을
너와 내가 손 잡으면 단결이 되고 연대가 되어
진행, 진행, 진행, 신호기마다 파란 불빛 달고 내달려
노동이 존중받는 일터 사랑으로 믿음으로 하나 되는 삶터를 만든
철도노동자의 꿈과 긍지
저들은 모른다
자갈밭을 모른다
단 한 번도 동료들과 피눈물 흘려본 적이 없는 저들은
철길을 모른다
나 살자고 동료를 버리는 자갈밭에
레일 한 장 침목 한 장 놓일 수 있겠는가
나 살겠다고 안전을 팽개치는 철길에
열차가 단 한 걸음이라도 발을 뗄 수 있겠는가
누가 감히 나의 노동을 줄 세우려 하는가
누가 감히 우리의 노동에 성과를 따지려 하는가
누가 감히 나와 동지를
동지와 나를
갈라놓으려 하는가
보아라!
우리가 얼마나 굳세게 전진하는지
들어라!
우리의 함성이 얼마나 크게 울려 퍼지는지
한 대의 기관차를 움직이기 위해 모여든
수많은 동지들의 숭고한 노동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들의 꿈과 긍지를 위해
나는 쓴다
하얀 광목 위에
뚝 뚝 떨어지는 피눈물로 쓴다
아내와 아이들과 남편과 어머니의 얼굴 위에
그 해맑은 미소 위에 눈망울 위에
떨리는 손으로
떨리는 가슴으로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는 쓴다
총파업승리!
물러설 수 없는 우리들의 염원
총파업승리라고 쓴다
_시인 김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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