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철마야

기차로 유럽 간다면… 기관사와 철도박사의 ‘동해선’ 가이드_한겨레신문 토요판

대지의 마음 2018. 5. 13. 12:13

[토요판] 커버스토리
최북단역에서 만난 기관사-철도기술연구원장





▶ 남북한 정상이 만나 ‘동해선 철로를 되살리겠다’고 했다. 사람들은 설레기 시작했다. 부산을 출발해 동해안을 따라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면 모스크바를 거쳐 유럽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상상만으로도 짜릿한 일이 벌어지게 생겼기 때문이다. 이 상상이 단순히 ‘기차로 유럽에 가닿는 일’에 그칠까? 더 많은 가능성을 찾아 더 큰 상상을 하기 위해 박흥수 기관사, 나희승 한국철도기술연구원장과 동해선으로 떠났다.


부산~원산을 잇는 ‘진짜 동해선’
일제강점기 자원 수탈 목적으로
원산~양양, 부산~포항 불완전 개통
강릉~제진, 영덕~삼척은 미개통

남북 정상 판문점 선언에서 언급
역대 북 정권 줄곧 동해선에 관심
북쪽 노선, 전철화율 높지만
노후화한 인프라 개보수 필요



“이 열차의 종착역인 삼척역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 전 역인 삼척해변역에 내려서 바닷가를 둘러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삼척역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난 7일 오후. 정동진역을 출발해 삼척역으로 가는 바다열차를 탔다. 월요일이지만 대체공휴일이라 열차 안은 여행객들로 북적거렸다. 주로 50대 안팎 여성이 많았다. 왁자지껄한 객실 소음을 뚫고 나온 안내방송이 인상적이었다. 바다열차는 평일엔 하루 2회, 주말엔 하루 3회 정동진역을 출발해 삼척역으로 향하는 관광열차다. 관광객들에게 “아~~무것도 없는” 역은 의미가 없다. 삼척역은 1991년 8월 여객 수송이 중단돼 2007년까지 15년 넘게 섬 같은 역이었다. 2007년 관광열차가 다니면서 다시 길이 열렸다.


안내방송이 맞았다. 삼척역에 내리니 역사 안은 물론이고 역 밖에도 그 흔한 편의점 하나 보이지 않았다. 대신 역사 뒤쪽으로 거대한 시멘트공장이 눈에 들어왔다. 위압적인 회색 건물 사이로 ‘삼표시멘트’라는 회사 이름이 적혀 있었다.




■ 동해선의 ‘접점’을 찾아서


“남과 북은…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 나가며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하여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나가기로 하였다.”(‘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2018년 4월27일)


시작은 사소한 궁금증에서 비롯됐다. 왜 ‘경의선 및 동해선’이 아닌 ‘동해선 및 경의선’일까. 가나다순으로도, 실현 가능성을 따져도, 서울 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보더라도 경의선을 먼저 언급하는 게 맞을 것 같은데 말이다. 판문점 선언 발표와 함께 사람들은 흥분했다. 판문점 선언은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대륙을 가로질러 유럽으로 가는 길이 머지않아, 언젠가 열린다는 얘기였다. 두번째 궁금증이 일어났다. 부산에서 출발해 유럽을 향하는 여행객은 경의선을 타게 될까, 동해선을 타게 될까.


‘이번 참에 동해선을 타고 달려보자’고 결정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해선의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부산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남쪽 최북단역인 강원도 고성군 제진역까지 가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7번 국도처럼 동해안과 나란히 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은 순진했다. 부산에서 출발한 동해선은 경북 영덕까지만 선로가 놓여 있다. 영덕부터 강원도 삼척까지(약 122㎞)는 철로가 놓이지 않았고 놓였던 적도 없다.(2020년 개통을 목표로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다) 동해선을 종단하려는 계획은 무산됐다. 대신 끊어진 지점으로 가 끊어진 선을 상상으로라도 이어보기로 했다. 1944년 탄생한 이래 한번도 남쪽으로 이어지지 못한 삼척역에서 출발했다. 목적지는 대한민국 최북단역 제진역이었다.


 이 갑작스러운 기행에 나희승 한국철도기술연구원장과 박흥수 기관사가 동행했다. 나 원장은 1996년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 선임연구원으로 2004년 처음 개통한 고속철도(KTX) 탄생에 기여했고, 이후 대북철도사업 연구에 매진해 아셈(ASEM) 철의 실크로드 심포지엄 사무국장,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수석전문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등을 지냈다. 박 기관사는 24년차 현직 기관사다. 2015년 6월18일부터 20일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이르는 대장정을 다녀온 뒤 <한겨레21>에 ‘유라시아 기차 횡단기’를 연재했다. 철도라는 수단을 통해 발전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역사를 다룬 책 <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계>, 철도 민영화 계획에 대한 철도 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책 <철도의 눈물>을 썼다.





■ 철도, 수탈의 수단


삼척부터 동해를 거쳐 강릉까진 선로가 놓여 있다. 동해~강릉 구간은 서울 청량리역에서 강릉행 무궁화호를 타면 지나는 구간이다.(현재는 공사 때문에 정동진역까지만 운행) 동해선 남한 쪽 구간의 종착역은 사실상 강릉역이다. 강릉~제진 구간도 선로가 없기 때문이다. 이 구간 역시 국토교통부가 2016년 6월에 발표한 3차 철도망 구축계획(2016~2025)에 포함돼 있긴 하다.


삼표시멘트의 전신은 1957년 설립한 동양시멘트다. 2015년 삼표그룹에 인수됐다. 동양시멘트의 전신은 일본 오노다시멘트 삼척공장이다. 지금은 태평양시멘트로 사명을 바꾼 오노다시멘트는 1944년 삼척공장에서 생산한 시멘트를 동해시 묵호항을 통해 수송하기 위해 동해~삼척 구간 철도(삼척선)를 깔고 삼척역을 세웠다. 삼척~영덕 구간 공사가 완료되면 동해선으로 편입될 삼척선 역시 한국 대부분의 철도가 그러하듯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자원 수탈 과정에서 생겨났다.


“한반도 철도는 일본의 대륙 진출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한반도의 종관철도인 경부철도와 경의철도는 일본의 군국주의 침략에 철도를 적극 이용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의지가 잘 들어맞은 사업이었다.”(<일본 제국주의 정책과 한반도 철도건설의 역사> 이수석, 2005)


박흥수 “일본에 한국의 철도는 단순한 식민지 철도가 아니었습니다.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한 발판이었죠. 일본은 1875년 군함 운요호를 조선에 보내 마찰을 일으킨 뒤 이듬해 강화도조약을 체결했어요. 자신들이 미국에 당한 과정 그대로, 빌미를 만들고 압도적 무력으로 압박하는 방식이죠. 대륙 진출의 꿈에 부풀어 있던 일본은 경인선, 경부선, 경의선 부설권을 차례로 차지하고 조선 백성들을 동원해 공사를 강행합니다.


철로의 양쪽 레일 사이 거리를 궤간이라고 하는데, 일본 철도의 궤간은 1067㎜예요. 이걸 협궤라고 하는데, 일제가 경부선 등을 건설할 때 한바탕 논쟁이 붙었어요. 일본 철도의 궤간인 협궤로 건설하자는 주장과 철도 선진국인 유럽의 궤간인 1435㎜―이걸 표준궤라고 해요―로 하자는 주장이 맞붙었죠. 협궤는 궤도 폭이 작으니까 그에 따라서 차량의 크기나 무게도 작아져요. 공사비가 적게 들고 공사도 더 빠르게 할 수가 있는 거죠.


그런데 결국 조선 철도는 일본식 협궤가 아닌 표준궤로 건설됐어요. 왜 그랬을까요? 중국과 유럽이 표준궤를 썼기 때문이에요. 철도를 통해 대륙으로 나가려고 한 거죠. 같은 일본의 식민지였던 대만의 타이베이와 가오슝을 잇는 철도는 별다른 논란 없이 협궤를 쓴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나희승 “각 나라들이 궤간을 결정하는 과정도 재미있어요.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표준궤를 쓰는 다른 서유럽 국가와 달리 1668㎜ 초광궤로 철로를 놓았는데, ‘나폴레옹 트라우마’ 때문이었어요. 프랑스가 1848년에 철도를 개통하고 스페인은 10년 뒤에 개통했는데, 다시 프랑스가 쳐들어올까봐, 그래서 철도를 통해 군수물자를 수송하게 될까봐 표준궤인 프랑스보다 훨씬 넓은 철도를 놓았던 거죠. 물론 그 이후엔 후회했죠. 서로 호환이 되지 않으니까 국경을 넘을 때마다 궤간을 조정해야 했어요. 너무 멀리 봐도 문제지만, 너무 눈앞만 내다봐도 문제였던 거죠.”


경부선과 경의선, 경원선이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건설됐다면 일제강점기 동해선은 동해안 일대 어항과 탄광을 개발해 석탄이나 목재, 해산물을 수송할 목적으로 건설됐다.


동해선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부산에서 출발해 동해안을 따라 올라가는 7번 국도가 떠오른다. 철로 역시 7번 국도처럼 동해 혜산선을 따라 북으로 가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닿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엄밀한 의미의 동해선은 ‘동해안과 나란히 있는 기찻길’이 아니다.


조선총독부는 1925년에 ‘조선 철도 12년 계획’을 세웠는데, 동해선은 도문선·혜산선·만포선·경전선과 함께 새로 건설될 5개의 지선에 포함됐다. 이 계획을 따른다면 동해선은 함경남도 원산에서 강원도 양양, 경북 포항과 울산을 거쳐 부산에 닿는 노선이었다. 1928년 원산 아래 안변역에서 공사를 시작해 1937년 강원도 양양까지 철로가 깔렸다. 현재 남한 최북단역인 제진역(당시엔 저진) 남쪽으로 거진역, 간성역, 속초역, 낙산사역 등이 있었다.


소화 15년(1940년)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발행한 ‘조선 열차시각표’를 보면, 오전 4시40분 원산역을 출발한 열차가 안변, 고저, 고성 등을 거쳐 양양에 도착하는 시각이 11시8분이다. 192.6㎞를 가는 데 약 6시간28분이 걸렸고 8시간 이상 걸리는 열차도 있었다.


동해북부선(안변~양양)과 비슷한 시기 동해남부선(부산~울산)도 개통했다. 그러곤 삼척선을 제외하고 더는 선로가 늘어나지 않았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해 전시체제가 되면서 군사적 가치가 낮은 동해선의 건설은 뒷전으로 밀렸다. 노반공사만 진행되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공사는 중단됐다. 그렇게 동해선은 동해북부선과 동해남부선만 존재하는 특이한 형태의 노선이 되었다. 동해북부선은 한국전쟁 뒤 1953년 7월 운행이 재개되었으나 1963년 이후 점차적으로 폐지됐다.


■ “철도는 통합의 아이콘”


“계절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많아요. 주로 50대 이상 여성들이 많고요. 케이티엑스(고속철도) 뚫린 뒤 강릉역에 사람이 많아졌어요. (강릉이) 다른 도시가 된 듯합니다.”


정동진역~삼척역을 오가는 관광열차의 기관사 이강섭씨가 말했다. 관광열차는 평균 시속 40㎞ 안팎으로 느긋하게 동해안을 따라 달렸다. 넓은 백사장이 보이는 시야가 뻥 뚫린 구간에선 시속 20㎞까지 속도가 떨어졌다.



“동해선 통해 유럽으로 가는 길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결돼야
속도와 비용에서 시너지 발생
러시아 정부도 ‘유치’ 적극적”

“철도는 국가운영과 결합된 수단
EU도 철도를 통해 통합 완성
100년 전 수탈의 도구에서
평화·번영의 지름길 될 것”


“풍경이 좋은 곳은 서행구간이라 더 천천히 가야 합니다. 최고속도 시속 100㎞인 구간을 천천히 가면서 또 운행시간은 맞춰야 하니까 일반열차 운전하는 것보다 힘들어요.” 하지만 이날만은 이 기관사의 표정이 밝아 보였다. 누구보다 그의 마음을 잘 아는 박흥수 기관사가 거들었다. “혼자서 운전하면 사실 많이 외롭거든요. 누군가 옆에 있으니 반가운 겁니다. 저도 그렇거든요.”


이 기관사는 코레일 동해기관차승무사무소 소속이다. 동해승무사무소 소속 기관사들은 남으로는 삼척, 북으로는 강릉, 내륙 쪽으로는 경북 영주나 충북 제천까지 열차를 운행한다. 청량리에서 출발한 강릉행(정동진행) 무궁화호를 예로 든다면, 동해승무사무소 기관사들이 충북 제천에서 제천기관차승무사무소 소속 기관사와 교대를 하고 강릉역까지 운행하는 식이다. “우리 철도에서 가장 오지인 곳이 동해(승무사무소)”(이강섭 기관사)라지만, 앞으로 동해선 열차가 강릉을 지나 북으로 향할 때 운전대를 잡게 될 이들이기도 하다. 이 기관사는 “그 길만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나희승 “지금 (속도가) 시속 40㎞ 정도 나오는데, 이 정도면 북한에선 아주 양호한 노선에서 나오는 속도예요. 북한 동쪽 철도 노선 대부분이 시속 20㎞ 정도라고 보면 됩니다. 기관차도 노후화했고 무엇보다 선로의 보수유지가 잘 안 됐어요. 경의선은 그나마 나은데도 시속 40~50㎞밖에 안 나와요.”


한국교통연구원이 2014년 12월 펴낸 <통일 준비 한반도 교통인프라 구축전략기획 연구>를 보면 평양~신의주 구간의 평균 속도는 시속 44㎞, 최고속도는 시속 56㎞다. 평양~신의주 구간은 국제노선으로 집중관리를 하는 구간이다. 북한의 철도연장은 5298㎞로 3917㎞인 남한보다 길다.


나희승 “부산을 출발해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유럽으로 향하는 기차여행을 상상만 해도 설레긴 하는데요, 사실 동해선의 핵심은 물류예요. 김일성 주석이 사망 전에 유훈으로 남겼어요. ‘동해 쪽으로 철도를 연결하면 연간 10억달러의 운송료, 물류통과비를 걷을 수 있다’고. 김정은 국무위원장 고향도 원산이잖아요. 이쪽(동해안)에 대한 애정이 있어요. 이번 판문점 선언에도 경의선보다 동해선이 먼저 등장하잖아요. 동해선에 대한 북한의 관심이 반영된 것 같아요. 남북사업을 할 땐 경제성도 고려해야 하지만 북한이 그 사업을 하려는 의지도 중요해요. 그런 면에서 동해선 연결은 제격이죠.”


박흥수 “무엇보다 철도는 통합의 아이콘입니다. 유럽 통합의 기초를 다진 건 1952년 출범한 석탄철강공동체였습니다. 이후 금융에선 유로화를 통해, 물리적 장치로는 철도를 통해 유럽연합(EU)이 완성됐어요. 자가용 비행기, 자가용 선박은 있어도 자가용 열차는 없잖아요. 철도는 국가운영시스템이 결합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어요. 그만큼 철로를 따라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커뮤니티를 생성하기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거죠. 과거에는 철도가 식민지 수탈의 수단이었다면 이젠 남북 평화와 번영의 수단이 될 수 있는 겁니다.”


나희승 “유럽으로 가는 대륙횡단철도는 우리가 잘 아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가 가장 바깥쪽에 있고 안쪽으로, 하얼빈을 지나는 만주횡단철도(TMR), 베이징과 몽골 울란바토르를 지나는 몽골횡단철도(TMGR), 중국 중부에서 카자흐스탄을 관통하는 중국횡단철도(TCR) 등이 있어요. 한반도를 관통하는 열차가 유럽과 닿기에 가장 좋은 노선은 그들 중 가장 긴 시베리아횡단철도예요. 거리는 다른 노선보다 1000~2000㎞ 정도 더 길지만 통과하는 국가가 가장 적기 때문이에요.


철도는 국경을 지날 때마다 통관 과정을 거쳐야 해요. 중국 내에선 성을 통과할 때에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요. 그 과정에서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오직 한 나라만 통과하는 러시아횡단철도가 그런 면에서 더 유리하다는 거죠. 무엇보다 러시아가 적극적이에요. 현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여객열차는 시속 80~100㎞로 달려서 7일이 걸려요. 화물열차는 시속 40㎞로 다니는데, 몽골횡단철도나 중국횡단철도는 그 정도 속도가 나오지 않아요. 러시아횡단철도는 향후 ‘7-데이(day)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는데, 물류도 여객처럼 7일 만에 가겠다는 거죠. 그러면 선박을 이용한 운송보다 4배 빨라질 수 있어요.”


관광열차는 정동진역에서 멈췄다. 1962년 개업한 뒤 폐역이 고려되다 1995년 드라마 <모래시계>의 배경으로 나와 ‘국민 해돋이 명당’으로 부상한 정동진역엔 여전히 젊은 연인부터 손주 손을 붙잡은 할머니까지 여행객들로 가득했다. 1997년 승강장 구조를 변경한 덕분에 새로 생긴 해수욕장으로 바로 연결되는 ‘3번 승강장’도, 연기자 고현정씨가 결혼한 뒤 이름을 바꿨다는 ‘모래시계 소나무’도 여전했다. 이날의 해 뜨는 시각은 5시23분이었다.

 

서울 청량리역과 강릉역을 오가는 영동선의 정동진역~강릉역 구간은 케이티엑스 선로 공사를 위해 2014년 9월부터 올해까지 운행이 중단된 상태다.


‘끊어진 선을 상상으로라도 이어보겠다’는 원대한 계획에 맞춰 강릉역으로 차를 몰았다. 나희승 원장이 과거 강릉역 뒤쪽에서 선로의 끝을 본 기억을 되살렸기 때문이다. 강릉시 포남동 강릉경찰서 뒤쪽 골목에 이르니 불쑥 튀어오른 잘 다져놓은 땅이 150m 정도 이어져 있었다. 궤도나 차단기 따위는 없었지만 궤도를 부설하기 위한 토대인 ‘노반’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반대편 쪽을 바라보니 정확하게 강릉역에 깔린 레일과 일직선상에 있었다. 지나가는 주민에게 물으니 “2년 전쯤 한창 강릉역 공사할 때 같이 철거됐다”고 했다.


■ “한반도는 풍요로울 수밖에 없는 운명”


다음날 아침 일찍 제진역으로 향했다.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사천리 제진역은 민간인통제구역이라 사전에 허가받지 않은 사람은 들어갈 수 없다.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이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라 더 썰렁했다. 역사 안 매표소 위에 걸린 열차시간표와 여객운임표는 텅 비어 있었다.

2007년 5월 북쪽 금강산역을 출발한 북한 열차가 한차례 다녀갔지만 남쪽 열차는 북한 땅을 한번도 밟아보지 못했다.


“시험운행에 대비한 선로 점검을 하기 위해 쓰였던 새마을호 열차가 2008년 6월까지 제진역에 머물면서 일주일에 한번 정도 남방한계선까지 다녀온 게 전부였어요. 우리 열차는 한번도 북에 가보지 못했어요.”


시설 관리와 안내를 맡은 통일부 황성호 사무관은 “10년 넘게 쓰이질 않으니까 더 빨리 낡아지는 것 같다”며 “선로든 역사든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라고 말을 이었다. 궤도는 녹슬어 있었고 휘거나 불쑥 솟아오른 곳도 있었다.


박흥수 “선로 녹슨 건 한번만 문질러주면 됩니다. 지반 내려앉거나 올라온 부분도 다져주면 큰 문제 없어요.”


나희승 “철도의 현대화 지표로 크게 복선화율(오고 가는 열차가 따로 다닐 수 있도록 선로를 두가닥 이상 깔아놓은 비율), 전철화율(열차 동력원이 전기인 비율)을 꼽는데, 북한 철도는 97% 가까이가 단선입니다. 복선화율이 60%에 이르는 남한과 차이가 크죠. 반면 전철화율은 80%에 이르러요. 이게 참 재밌는 지표인데, 과거 김일성 주석이 살아 있을 때 ‘자력갱생’ ‘자급자족’을 강조했잖아요. 북한은 ‘주철종도’ ‘주탄종유’예요. 철도가 도로보다 주된 교통수단이고 석탄이 기름보다 주된 에너지원이에요. 석탄으로 화력발전을 할 수 있고 수력도 풍부했거든요. 차라리 전기로 가자고 해서 전철화율을 높였던 거예요. 1970~80년대에 이미 북한의 전철화율이 80%였는데, 이는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었어요.”


박흥수 “그렇게 깔린 전철이 그 이후로 보수가 잘 안 됐죠. 전철화를 하긴 했는데 전력 사정이 나빠지니까 기차가 다닐 수 없는 거예요. 밤에 남북을 찍은 위성사진 보면 북한 쪽 대부분이 까맣잖아요. 그런 상황인데 철도에 전기를 쓸 수가 없는 거죠.”


나희승 “북한 쪽 동해선 노선들이 대부분 일제강점기 때 건설됐는데, 이후 한국전쟁 때 금강산에서 원산에 이르는 지역이 가장 많은 폭격을 받았어요. 이후 제대로 복구가 안 됐을 것으로 판단해요. 북한 지역 중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이기도 하고요. 개보수하는 데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긴 할 거예요.


세계지도를 보면 유라시아 대륙은 역삼각형입니다. 태평양은 동그라미인데요, 그 동그라미와 역삼각형의 접점이 한반도예요. 해양과 대륙의 통로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에요. 그런 탓에 늘 강대국의 침략에 시달렸지만, 사실 기가 막힌 곳에 있는 땅이에요. 풍요롭게 살 수밖에 없어요. 100년 전엔 뭘 몰라서 외세에 당하기만 했지만, 이제 우리가 누릴 때가 온 거예요.”


훈훈한 덕담이 오고 갈 때쯤 황성호 사무관이 “요즘 기자들이 자주 찾는 곳”이라며 제진역 남쪽 끝 철로가 끊긴 지점을 가리켰다. 남한 최북단역이지만 선로는 남쪽을 향해 끊어져 있었다. 중단점을 표시한 침목 건너로 넘어가 북쪽을 바라봤다. 등 뒤에서 달려온 열차가 북한을 향해, 유라시아 대륙을 향해 내달리는 모습을 상상했다. 통일은 여전히 먼 미래의 일이겠지만 끊어진 철로를 잇는 일은 가까운 미래의 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두 철도 ‘덕후’의 덕담이 더 듣고 싶어졌다.


삼척 강릉 고성/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 참고
<일제시기 한국 철도망의 확산과 지역구조의 변동> 김종혁, 2017
<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계> 박흥수, 2015
<동아시아 철도네트워크의 역사와 정치경제학Ⅰ> 조진구 편,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