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탈선 29분간의 교신기록..관제사 "열차가 탈선했다고요?"
(세종=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지난 8일 오전 7시 35분 발생한 서울행 806호 KTX 산천 열차의 탈선 사고 전후 상황이 자세하게 담긴 관제 녹취록이 12일 공개됐다.
녹취록에선 사고 28분 전 강릉역 인근 선로전환기가 고장 났다는 신호가 감지됐지만 경보시스템이 엉뚱한 곳을 지목하는 바람에 역무원들이 헛심만 쓰며 시간을 보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KTX 806호는 관제사들로부터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한 채 강릉역에서 무심히 출발했다 속절없이 사고를 당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이헌승 의원이 코레일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사고 당시 관제 녹취록에는 당일 선로 이상 신호가 감지된 오전 7시 7분부터 806 열차가 탈선된 직후인 7시 36분까지 29분간 상황이 실감 나게 기록돼 있다.
교신은 서울 구로구 철도교통관제센터와 강릉역, 강릉기지, 열차의 4각 체제로 이뤄졌다.
상황이 시작된 것은 그날 오전 7시 7분. 강릉기지 관제사가 "선로전환기 이상 신호를 감지했다"고 말한다.
당시 고장은 강릉역에서 서울로 향하는 방향의 철길에 설치된 선로전환기에서 발생했지만 고장 신호는 인근 강릉차량기지를 오가는 철로에 있는 선로전환기를 가리키고 있었다.
경보시스템과 연결되는 두 선로전환기의 회로가 뒤바뀌어 끼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두 전환기는 30m 정도 떨어져 있다.
그러자 구로 관제사는 깜짝 놀란 듯 "큰일 났네, 이거"라며 "H1636 열차가 강릉에서 8시 13분 출발해야 하는데 이것부터 (차량기지에서) 못 나오고 있고, 그 다음에는 D1691이 있다"고 한다.
'H'는 차량기지에서 나가는 차량을, 'D'는 기지로 들어가는 차량을 뜻하는 기호로 이들 차량은 영동선을 오가는 일반 열차다.
H1636이 운행하려면 차량기지에서 나와 강릉역으로 갔다가 출발해야 하는데 고장 때문에 차량기지에서 나오지 못하게 된 것이다.
바로 이들은 차량기지 쪽 선로전환기에 초기대응팀 등 역무원을 '급파'한다.
구로 관제사는 역무원이 직접 선로전환기를 제어하는 작업을 뜻하는 '수동취급'을 할 준비까지 하라고 당부한다.
이후 7시 17분, 구로 관제사가 화제를 바꿔 강릉역에 "806 열차가 나가는 데는 지장이 없느냐"고 묻는다. 서울행 806 열차는 이미 강릉역에서 출발 대기 중이었다.
강릉역 관제사는 "아 이것은 보낼 수 있다, 신호에서 그렇게 얘기했다"고 답한다.
806 열차가 달려갈 철길의 선로전환기가 고장 난 상태였지만 아무도 이 사실을 알지 못한 것이다.
이후 이들의 관심은 다시 아무 이상 없는 차량기지 쪽 선로전환기로 쏠렸다.
이들은 806 열차가 출발하자마자 수동취급으로 선로전환기를 조작해 H1636 열차부터 차량기지에서 출고시키자는 의논을 한다.
수동취급에 필요한 승인번호를 주고받거나 작업에 필요한 '지도권'과 '지도표' 등을 준비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러다 7시 26분, 강릉역에 대기 중이던 806호 기장이 '출발감속'이라고 외친다.
출발감속은 역에서 이 열차가 출발해도 좋다는 신호등이 떴다는 뜻의 전문용어다.
바로 앞 철길이 어긋나 있지만 이를 알리는 경보가 없으니 출발 신호가 뜬 것이다.
이 열차는 7시 30분 출발했다.
하지만 여전히 관제사들은 7시 34분까지 계속 차량기지 쪽 선로전환기의 수동조작을 어떻게 할지에만 몰두했다.
이윽고 7시 35분. 806호 기장이 관제사들을 두 차례 불렀다.
806 열차가 시속 105㎞로 속도를 내다 서울방향 선로전환기 인근에서 탈선해 아비규환이 된 후였다. 철로에서 튕겨 나온 열차는 차량기지 쪽 선로전환기에서 고장을 확인하던 강릉역 역무팀장 윤모씨를 덮쳐 윤씨가 부상을 입기도 했다.
기장은 "분기선에 가다가 열차가 탈선했다"는 충격적인 교신을 한다.
그제야 구로 관제센터와 강릉역에서는 열차가 탈선된 사실을 알게 됐다.
강릉역 관제사는 믿기지 않는 듯 "806 열차, 열차 탈선했다고 했습니까"라며 되묻는다.
강릉기지 관제사도 사태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806 열차가 올라가다가 탈선했다고 합니다. 기지에서 뭐… 진로를 만진 모양입니다"라고 말했다.
차량기지 통행을 어떻게든 뚫으려고 애쓰고 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서울 방향 철로에서 탈선이 일어났다는 소식에 적잖이 당황하는 장면이다.
이헌승 의원은 "사고 28분 전에 고장 신호가 감지돼 조금만 더 현장에서 판단을 잘 했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지만 아무도 열차를 중지시키지 못했다"며 "이에 대해 국토부가 제대로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탈선 KTX 승무원 "안전활동 의무 아닌데 구조하느라 흙범벅"
강릉발 서울행 케이티엑스(KTX) 806호 열차 탈선 사고가 난 지 나흘만인 12일, 열차에 탑승한 유일한 승무원인 김아무개(29)씨가 처음으로 언론에 입을 열었다. 코레일의 자회사인 코레일관광개발 소속인 김씨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위급 상황에 대처할 매뉴얼이 없었다”고 호소했다. 김씨의 말과 김씨가 겪은 상황을 종합해 사고 당시를 재구성해봤다.
지난 8일 오전 7시35분께. 케이티엑스(KTX) 승무원 김아무개(29)씨는 열차에 오르자마자 첫 업무인 특실 승객들 서비스를 마쳤다. 간단한 스낵과 생수를 나눠주는 일이었다. 열차 뒤쪽인 8호차까지 ‘순회’한 뒤 1호차로 돌아가려던 순간, 열차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 왜 이러지. 급정거를 하나’라고 생각하는 찰나, 열차가 갑자기 덜컹덜컹하면서 양옆으로 심하게 흔들렸다. 찰나가 지났을까, 열차는 왼쪽으로 고꾸라지듯 확 휘었다. 강릉에서 서울로 가는 케이티엑스 806호 산천 열차가 탈선한 순간이다.
앉아있던 승객들과 달리 3호차에 서 있던 김씨는 열차 탈선의 충격을 온몸으로 받았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김씨는 3호차 승강문 쪽으로 빠르게 튕겨 나갔다. 문에 부딪혀 어깨와 허리, 다리 쪽에서 극심한 통증이 왔다. 그러나 몸을 챙길 여유는 없었다. “사실 저도 넘어지고 열차가 기울었으니까 무섭긴 했지만 제 안위를 챙길 겨를은 없었어요. 기어서라도 고객들에게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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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몸은 승강문 쪽으로 튕겨져 나갔다
사고 직후 객실 안 풍경은 ‘아수라장’이었다. 복도에는 음료들이 쏟아지거나 엎어져 있었고, 승객들은 의자와 벽을 짚고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김씨는 몸을 추스를 새도 없이 일어나 3호차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열차팀장의 지시를 받아 안내방송을 했다. “뒤쪽 호차로 순회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안내방송을 했어요.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탈선으로 앞쪽이 절단돼서 그런지 안내방송이 모든 고객에게 들리지는 않은 것 같더라고요.“
이후에는 뒤쪽으로 이동하면서 승객들을 대피시켰다. “일단 3호차 고객님들한테는 바로 나가면 열차팀장이 있으니까 대피에 도움받을 수 있다 설명해 드리고 직원이 없는 뒤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어요. 아무래도 직원이 열차팀장과 저 둘 뿐이다 보니 승객을 대피시키는 데 어려움이 있었죠.”
열차 안에 직원은 두 명뿐이었지만, 다행히도 군인들이 열차에 타고 있었다. 김씨는 당시 도움을 준 군인들에 거듭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마침 그 열차가 공군분들이 휴가 나오는 열차여서, 각 호차마다 군인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저는 뒤쪽 호차로 이동해 방치되어 있을 고객들을 챙겨야 해서 군인분들에게 노약자랑 부상자를 우선 대피시켜주실 수 있느냐고 부탁했어요. 군인분들이 흔쾌히 알겠다고 하시더라고요.” 휴가를 가던 공군 제18전투비행단 소속 군인들은 ‘안전요원’이 되어 2명에 불과한 케이티엑스 열차 안 직원들의 빈자리를 메웠다.
몸도 온전치 않은 상태인 데다 열차가 크게 기울었기 때문에 한 걸음 내딛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김씨는 꾸역꾸역 뒤로 나아갔다. “벽이나 봉을 잡지 않으면 조금도 걷기 힘든 수준이었어요. 뒤쪽으로 최대한 빨리 가려고 했는데 걷는 것도, 객실 문을 열기도 쉽지 않았죠.” 김씨는 통로에서 객실 문을 향할 때 거의 바닥으로 미끄러지듯 하면서 이동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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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은 안전업무에서 배제됐다
탈선 사고가 난 이후 승객 구조에 케이티엑스 열차 승무원들이 ‘보이지 않았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하지만 사고 당시를 돌아보면, 그들은 ‘보이기’에는 숫자가 너무 적었고, 더군다나 승무원은 체계화된 안전 교육을 받을 기회도 없었다. 이날 다친 몸을 이끌고 구조활동에 나선 김씨는 사실 안전업무 담당이 아니다. 김씨와 같은 케이티엑스 승무원들은 코레일이 아닌 코레일의 자회사 코레일관광개발 소속 직원들이다. 코레일은 승무원들을 자회사 소속으로 분리하기 위해 본사 직원의 ‘안전업무’와 자회사 승무원의 ‘승객서비스’ 업무를 인위적으로 구분해 놓았다. 사고 열차 안 2명의 직원 중에서도 안전업무 담당은 열차팀장 1명뿐이었다.
그래서 안전업무를 담당하는 코레일 소속 열차팀장은 승객서비스를 담당하는 자회사 소속 승무원들에게 안전업무에 대해 ‘지시’할 수 없다. 다만 ‘협조’는 구할 수 있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열차팀장들에게는 ‘지시가 아닌 협조를 구하는 투로 말하라’는 지침이 내려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런 구조 때문에 김씨는 안전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안전업무를 맡은 본사 직원과 함께 안전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고, 안전 교육을 받더라도 체계화된 매뉴얼을 습득할 기회도 없었다. 올 초에 비상 사다리를 설치하는 법에 대해 배웠고, 분기에 한 번씩 동영상 강의를 들을 뿐이다. “저희는 안전업무 담당이 아니기 때문에 코레일 직원들이 받는 디테일한 안전업무에 대해서는 솔직히 교육을 받지 않았어요. 같은 회사 소속이고 함께 교육을 받고 훈련을 받았으면 보다 원활하게 구조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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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가 아니어도 처벌은 받는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안전업무의 담당이 아니라 제대로 된 안전 교육을 받지 않는 승무원들이 위급 상황 시 제대로 안전업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법으로 처벌받는다. 철도안전법을 보면, 열차 사고 시 승객을 대피시키는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승무원은 처벌받을 수 있다. 2015년 7월 개정된 ‘철도안전법’ 제40조2항은 ‘여객승무원이 철도사고 등의 현장을 이탈하지 말고 국토부령으로 정한 안전업무를 수행’하도록 강제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개정된 법률이다. 세월호 참사 때도 선장부터 선박 안전관리의 핵심 보직인 갑판부 선원까지 전체 승무원의 절반 이상이 1년~6개월의 계약직이었는데, 한국 사회는 이런 문제를 개선하지 않은 채 승무원에 대한 의무만 강화하고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했다. “안전업무에 대한 의무는 없는데 책임은 있고, 협조는 해야 하고, 협조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 모순된 게 있죠.”
기울어진 열차 안을 곡예 하듯 이동하고, 구조활동을 하며 돌아다니느라 구두가 흙투성이가 된 김씨는 승객을 모두 대피시킨 뒤에도 병원에 가지 못했다. 사고 열차 승객들을 태우고 진부역을 향하는 버스 안에서 “큰 사고가 나서 죄송하다”고 울면서 사과했고, 서울역으로 향하는 대체 열차에도 올라 사고 열차 승객들을 찾아다니면서 한 명 한 명의 안부를 확인하고 사과했다. “저는 열차를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고객들이 더 놀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일이 다니면서 아프신 곳이 있다면 치료받으시고 코레일 쪽에 배상받으시라고 안내해드리는 게 맞는 것 같았어요.”
김씨는 사고 당시 충격으로 다친 어깨를 고정하려 부목을 댔고, 허리와 다리 관절 쪽에 이상이 발견돼 병원에 입원해 치료 중이다. 김씨는 사고 당시를 계속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침착하게 대응해줬던 승객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꼭 전하고 싶어 인터뷰에 응했다고 말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사고 후에 그때 열차에 타셨던 고객이 오히려 제가 괜찮은지 물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날 열차에 타셨던 고객들이 무사하셔서 감사한 마음이에요. 큰 사고였음에도 침착하게 직원들의 말에 따라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7월 경부선 KTX 사고도 '케이블 탓'.."전 노선 조사해야"
[앵커]
KTX 강릉선 탈선 사고는 선로전환기 케이블을 엉뚱한 곳에 꽂아놓으면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시공부터 잘못됐는데 사고가 난 뒤에야 이를 알아차렸죠. 그런데 지난 7월에 발생한 KTX 경부선 열차지연 사고 역시 같은 원인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저희 취재진이 확인했습니다. 그러니까 강릉선만이 아니라 KTX 전 노선으로 조사 대상을 확대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기자]
지난 7월 29일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KTX와 SRT 89개 열차가 줄줄이 지연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경부선 평택 인근의 선로전환기 신호장치에 문제가 생기면서입니다.
JTBC가 입수한 당시 사고 조사보고서입니다.
코레일 측은 신호 장애 원인으로 시공 불량을 들었습니다.
선로전환기 신호를 전달하는 기존 선이 손상돼 문제가 생겼는데, 이런 경우를 대비해 예비선을 연결해둡니다.
하지만 예비선이 엉뚱한 곳에 연결돼 있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코레일 내부 직원 : 주선을 쥐가 갉아먹었어요. 그래서 예비를 돌렸는데 선이 다른 데 꽂혀 있던 것이에요. (그때 전부) 점검만 했더라도 강릉 사고는 미리 방지했을 수도 있었다는 판단이 들어요. 사람이 없어서 지금까지 점검을, 전 구간을 다 못 했던 것이에요.]
KTX 강릉선 탈선 사고도 선로전환기 회선이 엉뚱하게 연결돼 일어났습니다.
현재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은 강릉선 선로전환기 236개에 대해 전수 조사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하지만 부실 시공과 허술한 관리가 강릉선만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만큼 조사 대상을 KTX 전 노선으로 확대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영상디자인 :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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