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은 아쉬움

나무의 내력_박남희

대지의 마음 2020. 5. 26. 06:40

나무의 내력(來歷) - 박남희

 

 

 

신神은 흙을 창조하고 그 위에 나무를 창조하였다

나무는 흙 속에 뿌리를 박고 흙이 전해주는 육체의 소리를 들었다

흙은 나무에게 나무가 알지 못하는 나무의 내력을 이야기해주었다

 

본래 나무는 종鐘이었다

밖으로 나오려는 울음을 감추기 위해

무수한 고통의 이파리들을 푸드덕거리던 종이었다

 

그러다가 종은 제 안의 울음을 견디지 못하고

역사책이 되었다 그 때부터 나무는

흘러가는 모든 것들을 몸 안에 가두고

시간의 물관부 사이에

나란히 배열시키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책 속의 역사는 수시로 요동했다

그리하여 나무는

모든 흔들리는 것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흔들리는 모든 것들을

이 땅의 중심에 붙잡아 놓기 위해

흙 속에 뿌리를 내렸다

 

나무의 뿌리는 본질적으로 불온했다

뿌리는 흙 밖으로 제 몸을 뻗어

흙이 들려주었던 제 안의 이야기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오가는 메아리는

그렇게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