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는 주중에 늘 마주치던 똑같은 대화 상대와 직업적인 근심을 되씹는 행위가 아니다. 나는 동료들과 함께 외국에 나갈 때면 도쿄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풍경은 감상 않고 마치 여전히 파리나 스트라스부르에 있기라도 한 듯 학내 문제를 논하고 싶지 않아 차라리 혼자 있을 만한 곳을 찾아 달아나곤 한다. 마찬가지로 동상이 세워진 어느 장군의 전기나 뒤돌아서면 바로 잊어버릴 어떤 조형물의 존재 이유에 대해 끝도 없이 지루한 설명을 듣는 일도 영 탐탁지 않다. 예컨대 도심을 걷는 사람은 관광지나 기념물들을 찾은 관광객과는 사뭇 다르다. 지나치는 길에 힐끗 시선을 던진다거나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습관적으로 흡족하게 바라보는 일은 있어도 그 장소들을 마주칠 때마다 마음속을 훓고 지나가는 감정이나 느낌은 최소한이고 일시적일 때가 더 많다.
루소는 1762년에 말제르브에서 평생 살면서 느꼈던 최고의 순간은 젊은 시절보다는 오히려 은퇴 후 자신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고독한 산책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정원 안쪽으로 가서 태양을 감상한다. 잡다한 일들로 아침나절이 지나고 나면 서둘러 점심을 하고 오후에 또 누가 찾아올 새라 방문객들을 피해 달아난다. "그러나 일단 어느 곳을 넘어서고 나면 어찌나 심장은 두근대고 기쁨으로 초조하던지 이제 살았구나 싶은 생각에 숨을 내쉬며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드디어 오늘 남은 시간은 내가 나 자신의 주인이구나!' 그러고는 차분한 발걸음으로 숲속 야생의 어딘가를 찾아 나갔다." 혼자 자연 풍경을 가로지르노라면 한 치의 모자람 없이 완전히 차분하게 풍경에 젖어든다.
_[느리게 걷는 즐거움](다비드 르 브로통 지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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