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은 성폭력 사건을 어떻게 대처했나
“우리가 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패했다” 조직 쇄신 다짐...‘피해자의 일상 회복’ 최우선 과제로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가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으로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왼쪽부터 류호정 의원, 강 원내대표, 심상정 의원. 2021.01.26ⓒ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정의당이 지난 25일 김종철 대표의 성추행 사건과 직위 해제 사실을 알렸다. 가해자의 사회적 위치와 관계없이 ‘무관용 원칙’에 입각한 사건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번 사건을 대처하는 정의당의 태도는 정치권에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정의당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원칙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며 공당으로서의 신뢰와 정체성을 회복해 나가겠다고 공언했다. 피해자가 일상으로 회복하는 데 모든 당력을 집중하겠다고도 약속했다. 후속 절차를 밟는 당의 시스템은 피해자의 의사를 우선으로 가동 중이다.
정치권 ‘꼬리자르기’ 악습 끊은 대응
이번 사건 해결의 시작점에는 정의당 젠더인권본부를 맡고 있는 배복주 부대표가 있다. 배 부대표는 지난 18일 장혜영 의원으로부터 처음 피해 사실을 접수한 인물이다. 그는 일주일간 철저한 비공개로 사건을 조사했고 수차례 피해자와 가해자 면담을 진행했다. 25일 배 부대표가 당 대표단 회의에 사건을 최초 보고하기까지 누구도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
배 부대표는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 장애여성공감 대표,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 등을 지내 현장 경험이 두텁다. 그는 침착하고 신속하게 사건을 다룬 것으로 평가된다. 가해자로부터 명백한 가해 사실 인정과 피해자에 대한 분명한 사과, 해결방안에 대한 이행을 약속하는 협의를 끌어냈다. 피해자가 원치 않는 불필요한 추측과 논란도 차단했다.
배 부대표는 26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2차 피해에 대한 우려로 모든 조사 과정을 비공개했다고 밝혔다. 그는 “조사 도중 사건의 내용이 유출됐을 때 피해자 입장이 왜곡돼 온전하게 전달되지 못하게 될 상황을 피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거친 모든 과정의 전반엔 피해자의 의사가 중심이 됐다.
정의당 대표단과 의원단은 배 부대표로부터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당규에 따라 김 대표의 직위를 즉시 해제했다. 정의당은 “다른 누구도 아닌 당 대표의 성추행 사건이라는 심각성”에 비춰 충분히 토론했고, 신속한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김종철 전 대표는 사건 발생 직후 사퇴 의사를 밝힌 상태였지만, 당은 당 차원의 직위 해제를 결정했다. 당내에서는 장 의원을 향해 깊은 위로와 연대의 뜻을 보내는 주요 인사들의 공개 발언도 이어졌다.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위해서다.
이후 당 징계 절차에 따라 독립기구인 중앙당기위원회(당기위)에 김 전 대표를 제소했고, 김 전 대표의 제명 여부 등 징계 수위는 당기위의 결정에 따른다는 방침이다. 대표단과 의원단으로 구성된 ‘비상대책회의’를 설치해 매일 정기적인 회의도 진행한다.
#미투, “민주당은 왜 정의당처럼 하지 못했는가
국민의힘은 왜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는가”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수도 없는 인사가 성범죄에 연루됐다. 그때마다 가해자가 속한 정당들은 침묵하거나 은폐하기 급급했다. 물의를 빚은 인사를 꼬리자르기식으로 내치며 미봉책으로 사건을 무마하는 모습도 으레 보였다. 김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을 ‘남 일 보듯’ 비평하는 거대양당의 태도에 역으로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민중의소리와 통화에서 “한국정당정치에 있어서 성폭력 사건을 정당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해 (정의당이) 모범사례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며 “지금까지 거대정당들이 보여준 모습들과 비교해서는 상당히 바람직한 태도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권 대표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김 전 대표의 사건을 타자화하는 데 대해 “자신들의 (성범죄)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도 안 하면서 상대 당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뻔뻔한 것”이라며 “그런 정치적인 공세가 사실상 정당의 구조를 성평등하게 만드는 데 방해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권김현영 여성학 연구자는 민중의소리와 서면 인터뷰에서 “피해자인 장 의원이 미투(MeToo, 나도 고발한다)를 한 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힘을 믿어서 가능한 것”이라며 “성폭력은 어디에서나 벌어진다. 그런데도 유난히 안 나온다면 ‘나올 수 없는 구조’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 의심”이라고 꼬집었다.
권김 연구자는 “이 문제는 정의당의 문제가 아니라 왜 민주당에서는 정의당처럼 하지 못했느냐는 문제이고 왜 국민의힘에서는 아예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있는지, 조직문화의 문제는 없는지를 모두 다 살펴봐야 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패했다”
쇄신 다짐한 정의당, 공동체 통한 해결 당부한 장혜영
물론 정의당의 사후 대처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정치권 안팎에서 잇따른다.
이에 정의당에서는 당내 성평등 문화·교육 전반에 대한 점검과 또 다른 피해 사례는 없었는지 전수조사하는 방안들이 후속 조치의 일환으로 검토되고 있다. 특히 ‘성평등 사회’라는 진보적 가치를 표방하면서도 정작 당내 성차별과 성폭력을 용인·묵인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조직문화를 돌아보고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대두된다.
장혜영 의원은 피해 사실을 알린 입장문에서 “가장 중요한 건 ‘피해자다움’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사실은 바로 ‘가해자다움’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 의원은 “성폭력을 저지르는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토록 그럴듯한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남성들조차 왜 번번이 눈앞의 여성을 자신과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것에 이토록 처참히 실패하는가, 성폭력을 저지르는 남성들은 대체 어떻게 해야 여성들이 자신과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마땅한 존재라는 점을 학습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이 질문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제시했다.
강은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당 의원총회를 열고 “정의당의 부단한 노력에도 조직문화를 바꾸지 못했다. 밑바닥부터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강 원내대표는 “가해자가 어떤 직위와 위치에 있음에 상관하지 않고 무관용 원칙에 따라 사건을 해결해 나가겠다는 정의당의 원칙은 변함없이 지켜나갈 것”이라며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지만, 처리에서만큼은 어떠한 유보와 타협 없이 원칙에 입각해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임 대표인 심상정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당의 대표가 가해자란 사실은 당의 모든 것을 바닥에서부터 재점검해야 할 일이다. 저부터 놓치고 있던 것은 없었는지 더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밝혔다. 이정미 전 대표도 글을 올려 “이제 당이 책임질 시간”이라고 언급했다.
류호정 의원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 전화 인터뷰에서 “저희가 성평등 수칙도 있고 매뉴얼도 있고 교육도 부지런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패했다. 때문에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고 했다.
류 의원은 “적어도 (장 의원의) 그 기대와 신뢰만큼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그래야 저희 당이 피해를 경험했거나, 경험하고 있거나, 앞으로 경험하게 될 모든 분들을 보호하고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의당은 성폭력 사건을 어떻게 대처했나 - 민중의소리 (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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