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철마야

전라선 탈선 사고 배후 원인 진단을 위해!

대지의 마음 2021. 2. 5. 14:06

지난 2016년 4월 전라선 율촌역 탈선사고 이후 작성했던 글을 옮겨옴.

이제 읽어보니 여러모로 부족한 부분들이 눈에 보이지만, 그럼에도 상당한 고민이 묻어 있음을 느낄 수 있음.

그런 고민들이 더 발전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쯧!!!

 

[2016년 04월 26일]

 

전라선 탈선 사고 배후 원인 진단을 위한

‘원인 규명 현장 토론회(간담회)’를 제안하며!

 

 

 

1.

 

‘일반적으로 단 하나의 원인 때문에 일어나는 사고는 거의 없다고 한다. 몇 개의 배후 요인이 연쇄적으로 이어져, 그것들 중 일부분이라도 잘라버릴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사고에 이르게 된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사건의 연쇄(Chain of event)’라고 부른다.’1 따라서 하나의 추정 원인만 철저히 개선하면 완벽한 재발 방지 대책이 마련될 거라고 여기는 것은 경솔한 생각이며 사고 원인 분석과 대책 마련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고는 당사자가 고의를 가지고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업무를 열심히 한 결과가 기대와는 반대로 나타난 것이라고 본다면, 사고의 단편적인 원인만을 규정해 부각시키는 태도는 오히려 매우 위험하기까지 하다.

 

 

지난 4월 22일 새벽 3시 39분경 발생한 제1517열차의 궤도 이탈 사고는 승객의 직접 피해와 열차 운행 중단에 더해 탑승 기관사가 사망에 이른 충격적인 사고다. 기관사의 사망 소식을 접한 동료들은 비상제동 취급 후 불가항력의 상황에서 엄청난 속도로 분기기를 지나치는 사고 당시가 이입되어 몸이 떨린다. 기차 운전하는 자랑스러운 아빠(엄마)가 출근했지만 돌아오지 않을 수 있음에 가족들은 전화 통화를 재촉한다.

 

 

사고 발생 초기부터 노동조합 홈페이지에는 사고 이면에 잠재되어 왔던 배후 원인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올라오고 있다. 거칠지만 의견의 상당수는 비교적 정확하게 사고 저변의 원인을 찾아내고 있다.

 

 

반면 냉정하고 이성적인 사고 원인 규명 과정에 찬물을 끼얹는 기존의 관행도 반복되고 있다. 사고 발생 몇 시간을 넘기지 않아 밝힌 철도사법경찰의 섣부른 –설령 그것이 정당한 것이라 할지라도- 사고 원인 진단은 일파만파로 여론의 흐름을 흔들어 놓았다. 전라선 무궁화호 탈선의 원인은 ‘과속’이라는 규정 속에 주범인 기관사는 사회적 범죄자에 준한 낙인이 내려졌다. 급기야 검증되지 않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탈선사고가 갈수록 증가 추세에 있다고 한 서울신문의 보도는 국토부의 해명 자료로 근거없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사고 때마다 등장하는 ‘안전불감증’이란 단골 메뉴에 ‘관제사 지시도 무시’하고 ‘기준 속도의 4배 운행’이라는 선정성 높은 기사로 사고의 원인 규명은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일본의 안전전문가 이시바시 아키라는 그의 책 <사고는 왜 반복되는가?>에서 지난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를 접한 당시를 회고하며 절망했던 경험을 솔직하게 토로했다. 사고 직후 대두된 다양한 사고원인 -방화로 인해 쉽게 열차에 불이 붙을 수 있었느냐는 것, 화재에 대비한 설비와 지하철역의 구조 문제, 기관사와 사령실간의 소통 문제, 반대편 열차 기관사의 대응 등- 에 대한 접근과 규명을 방해하는 사고 처리 과정에 크게 절망스러웠다는 것이다.

 

 

당시 충격을 준 보도의 내용은 사고 일주일 후 신문에 등장한 ‘기관사 등 일곱 명 체포’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그는 “사고가 일어나고 피해자가 나오면, 먼저 범인을 찾아 사고의 결과에 상응하는 처벌을 내리는 사고(思考) 패턴에 위험성마저 느꼈다. 재발 방지를 진정으로 우선한다면 사실 관계를 충분히 조사하여 표면에 나타난 현상뿐만 아니라 배후에 잠재된 유발 요인을 가급적 많이 파악하고, 그것들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다하는 것이 처벌을 위한 수사보다도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2고 밝히며 사고의 배후 요인에 대한 후속 보도가 아예 중단되어 버린 것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이시바시 아키라가 충격적 위험성마저 느꼈다는 기존 관행이 오늘 다시 되풀이되고 있는 것다. 한탕주의식 언론의 보도는 사고를 접한 많은 이들에게 희생양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 평정심을 잃게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결과적으로 기관사가 저지른 실수(과속)를 부정하거나 무마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질문은 ‘당신은 왜 실수를 했나?’가 아니라 ‘당신은 왜 127km로 운전하겠다는 확신이 생겼나?’, ‘왜 기관사의 실수(과속)는 사고에 이를 때까지 어느 한 부분에서도 통제되지 못했나?’이다. 즉, ‘누가 나쁜가?’가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가?’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다.

 

 

원인 규명보다는 책임 추궁에 경도된 언론들과 달리 ‘기관사가 속도를 줄이지 않아 일어난 사고라는 점이 확인되고 있지만 개인의 안전불감증이나 과실을 사건의 원인으로 치부하지 말고 복합적인 원인에 대한 종합적 점검이 필요하다’는 정의당의 브리핑마저 없었다면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사고에 대한 직접적인 경위를 포함한 제반 조사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와 사법기관이 담당하겠지만 무시될 수 없는 몇 가지 배후 요인과 이를 안고 지내왔던 우리 내부의 문제에 주목해보자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2.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야간 차단작업의 경우, 안전 확보는 철도 내부의 통합적 운영이 가장 완벽하게 이루어졌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보통 야간 어둠 속에서 진행되는 차단작업을 위해 작업당사자, 관제사, 역의 로컬 관제, 기관차와 열차 승무원까지 해당 열차와 시간, 구간, 선로 방향, 인접역까지의 운전취급 방식 등에 대해 높은 긴장과 통일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이번 사고를 접한 직후, 전국의 모든 기관사들에게 직관적으로 떠오른 생각은 하나였다. ‘그래, 언젠가는 터질 줄 알았다!’ 지금도 전국의 기관사들은 마찬가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을 것이다. 제동 취급의 막바지에 이르러 하염없이 전방을 주시하고 발끝에 힘만 주고 있었던 승무원들, 그 등줄기에 흥건한 땀이 흘러내리지 않은 이가 얼마나 있나. 운전보안장치의 정상 기능이 확보되지 않아 온전히 승무원의 취급에만 의존하는 복선구간에서의 단선 반대선 운행은 이미 많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짙은 안개 속에서 이루어지는 반대선 단선 운전을 상상해보라!) 보고되지 않고 숨겨진 (비슷한 경우의) 준사고를 언급하며 ‘하인리히 법칙(1:29:300)’도 모르냐고 따지는 지부 간부를 만나고서야 새삼스러운 문제의식을 재차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그토록 많은 승무원들이 경험했다는 준사고(아차사고)는 우리 현장에서 왜 대형사고를 예방할 교훈으로 다루고 참고하지 못했는가? ‘원활한 의사소통과 자유로운 문제제기를 장려하는 보고하는 문화’3가 철도 경영의 핵심 중 핵심임을 강조하고 있지 않았던가? 사고 이면의 배후 요인으로 우선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고(에러)의 경향성을 파악해 선제적 안전관리를 집중해야할 -자칫 대형사고로 커질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는 왜 보고되거나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가? 평소 보고하라는 수많은 공문과 지시가 있었음에도 적극적 참여가 없는 데 어떻게 하란 말이냐는 공사 책임자들의 항변이 귀에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보자. 작은 에러와 준사고는 평소 보고되면 안 되는 금기사항처럼 다루어져 오지 않았던가. 경영평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무사고·무재해 운동의 실적이 무너진다고 아예 하찮게 취급하거나 무시하지는 않았는가? 이렇게 형성된 조직 내 안전 문화는 대형사고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은 어떤 일도 드러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인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중요한 정보의 보고를 차단하면서 공문이나 지시를 통해 안전 저해 요소 취합에 나서는 이율배반이 이번 사고의 이면에 존재함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4 5

 

 

두 번째 배후 원인은 ‘다양한 폐색 방식의 병행 사용과 폐색 구간의 분할과 통합으로 인한 불안정성’, 그리고 ‘그러한 제도 변경의 배경’을 꼽을 수 있다.

 

 

이번 사고가 일어난 전라선과 같은 복선구간에서의 일시적 단선 운전은 기본적으로 운전취급규정의 단일 조항으로 포괄되지 않는다. 폐색구간의 분할과 합병, 도중 운전취급생략역의 존재, 폐색 방식의 병용 사용이 더해져 상당히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도 부족해 실무적 취급에 대한 지침은 운전취급세칙(현재 관련내용은 규정으로 통합됨)을 살펴야 한다. 이마저도 지침이라는 방식으로 변경 과정을 거쳐 왔다. 복잡한 매뉴얼로 인한 혼란을 줄이기 위해 단순화해야 한다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도대체 이렇듯 복잡한 업무처리 매뉴얼로 변화된 배경은 무엇인가? CTC와 같은 중앙집중제어시스템의 도입이 가장 큰 사유라고 할 수 있지만 폐색 방식의 병행 사용, 구간의 분할과 합병을 위한 제도 변경의 배경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일단 폐색 구간 운영의 변수는 다수의 운전취급생략역, 즉 직원이 근무하지 않는 무인역의 존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련이 있다. 이번 사고 열차인 #1517열차가 만약 율촌역 근무자에게 운전허가증(지도표)를 교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운행선의 (급격한) 변경을 인지하지 못했어도 120km가 넘는 속도로 역에 접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 한 번이라도 사고로 빠질 통로에 대한 차단막이 어디에선가 작동했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다시 생긴다.

 

 

하지만 문제의 배후 요인은 단순하지 않다. 이미 본사의 일부 관리자들도 마찬가지 문제점을 토로했다시피 ‘열차 지연 운행을 최소화하고 더 많은 열차의 운행을 가능하게 하려는 수익 중심의 관점’이야말로 핵심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가 발생했던 성산과 율촌이 폐색구간의 양 끝 지점이 아니고 도중 무인역임에도 불구하고 운행선 변경을 감행하게 했던 기본 원인도 거기에 닿아 있다.

 

 

애초 도중 운전취급생략역에서의 운행선 변경은 고려되지 않았지만 2010년 12월 잠정지시를 통해 폐색 구간을 축소해 추가 열차 투입이 가능하도록 변경되었다. 심지어는 도중 변경을 통해 2번 이상 운행선을 변경 가능하도록 했다.(이른바 ‘ㄷ자 운행’) 사고가 발생한지 3일 만에 제출한 공사의 긴급 지시는 바로 이런 혼란을 없애고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로서 도중 운전취급생략역에서의 운행선 변경 금지와 복선구간 단선 대용폐색식 시행으로 반대선 운전을 할 경우 전 구간을 60km/h로 제한하는 것이다.6

 

 

즉, 폐색 방식을 혼용하거나 구간을 분할해 사용함으로 발생했던 착오 가능성이 표면에 드러난 사고의 원인이라면 그 배후에는 열차 지연을 최소화해 더 많은 열차를 운행하게 할 목적의 수익적 관점이 존재한다. ‘안전불감증’으로 비판 받아야 할 당사자가 사고 당사자인지 다시 묻고 싶어진다.

 

 

기관사의 혼란과 착오를 부르는 세 번째 배후 요소로 운행 선구(전라선)의 통일적이지 못한 시스템의 혼재를 들 수 있다.

 

 

글의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사고는 단일한 하나의 원인으로 발생하지 않으며 사고 당사자도 사고 발생에 대한 고의를 가지고 운전 취급에 임하지 않았다. 사고로 이르는 연쇄적인 배후 요인 중 단 한 곳에서라도 연계성이 차단될 수 있다면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평소의 관념대로라면 아무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거나 당연시 되는 것들도 사고가 되려면 혼란을 주는 위험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안전불감증’을 탓하기보다 평범함 속에서도 안전에 주는 영향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안전감수성’이 조직 내에 넘쳐야 안전이 확보되는 것이다.

 

 

사고 기관사가 평소 운행했던 전라선은 반대선 운행을 하더라도 ATP 시스템(Level-1)이 정상적으로 작동해 속도와 거리에 의한 연속제어가 가능한 양방향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 단, 이러한 양방향 시스템은 전라선 전체 구간이 아님에 혼란과 착오의 가능성은 숨어 있다. 익산에서 여수엑스포로 이어지는 전라선 구간 중 익산~순천 구간은 양방향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지만 사고가 일어난 순천~여수엑스포 구간은 그렇지 않다.

 

 

‘ATP 시스템 STM 모드의 공사구간 취급을 한 상황에서 헛갈리는 게 말이 되나?’ 하고 의문을 달 여지도 있다. 그렇지만 시끄러운 소음이 훨씬 더 차고 넘쳐도 단일한 사고로 편향된 시각은 쉽게 깨우쳐지기 어려운 상황도 종종 있다.7그리고 그렇게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이 사고가 되는 것이다. 이건 기관사의 자질과는 하등의 관련이 없는 것이다. 그런 실수를 예방해야 하지만 자칫 벌어질 수 있는 에러 가능성에도 대비해 이중삼중으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마지막 배후 요인으로 꼭 따져보고 싶은 문제가 ‘정시 운행 압박과 이로 인한 문화적 영향’이다.

 

 

다시 사고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위에서 서술한 모든 배후 요인에 의한 실수에도 불구하고 사고 기관사가 이례적인 상황에서 열차는 늦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라는 생각으로 (보다 안전한 방법을 선택하기 위해) 역 접근을 앞두고 충분히 속도를 늦추는 취급을 했다면 어떨까?

 

 

기관사가 아닌 직원들(또는, 시민들)이 들으면 이 무슨 황당한 말이냐고 놀랠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문제 지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노사를 막론하고 기관사들은 고개를 끄덕할 것이다. 이 문제는 우리 내부의 안전문화(안전철학)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그 해법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은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개인적 견해로는 ‘정시운행 압박과 문화적 영향’에서 탈출하는 시점이 철도 안전의 획기적인 전기로 기록될 것이라 확언한다.

 

 

비단 기관사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열차에 대한 총괄적 제어를 책임지는 관제사는 어떤가. 연속적으로 꼬리를 무는 열차들이 조작판 위에서 깜빡거리는 데 무신경할 수 있겠는가. 열차승무원은 또 어떨까? 잠시 잠깐의 정차에도 바쁜 발걸음을 재촉하는 시민들에게 폭언을 듣기 일상이고 따가운 눈초리를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실수를 연발하기도 할 것이다. 긴박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유지보수 현장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정시 운행 압박과 그로 인한 문화적 영향의 실체이다. 단순하게 그런 문제가 있다는 차원을 넘어서서 현장 직원들의 사고 대응 문화 전체를 좌우하는 안전과 직결된 사안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배후 요인의 원인은 어디서 기인하는가? 10분·20분·40분 지연 보상제도와 열차 정시운행이 공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전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열차 정시 운행이 모든 경우에 우선한다. 즉, 수익 중심의 공기업 평가 기준이 안전을 등한시하게 만드는 근본적 배후 원인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정책과 제도의 영향으로 상시화된 불안전 요소를 안고 열차는 달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열차가 지연되어도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고 있다. 어떻게 하란 말인가?’ 며칠 전 만난 관리자의 의문이다. 그 관리자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관사들에게 부담을 주는 문화는 존재한다고 수긍한다. 이 복잡한 메커니즘의 고리는 어디서 끊을 수 있을까? 몇 개의 지시나 몇 개월간의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조직 안전 문화와 개인 안전문화, 안전철학의 대전환을 의도한 장기간에 걸친 노력이 수반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안전상 문제를 느껴 정차하거나 안전한 취급을 위해 지연되거나, 이로 인해 어떠한 불이익이 남더라도 당사자가 아닌 철도 경영진이 책임질 것이다. 언제라도 편하게 취급하고 위험하면 열차를 정차해 여유있게 주변을 점검하라. 시민들로부터 쏟아지는 민원이 들어와도 경영진이 감당할 것이다.』와 같은 경영진의 책임감 있는 의사 표시가 현장에 확인되어야 한다. 노사 대표자가 공동으로 입장을 공표하는 것도 좋다. 이럴 때 비로소 기관사들은 안전 수칙에 따라 ‘가장 안전한 방법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경영진을 신뢰하는 안전 조직 문화의 단초가 만들어질 것이다. 운전규정에 적시된 허용속도 범위에서 최대한 회복 운전을 하여야 한다는 규정도 과감히 삭제해야 한다. 이 문구 하나가 주는 안전 위협 요인을 느낄 수 있어야 철도 안전은 확보가 가능하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주의 국영 항공사 콴타스 항공은 1951년 이래 안전 운항을 지속해 왔다고 국제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들의 안전 정책을 담은 안전문화 슬로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철도의 정시성을 자랑하기 이전에 우리는 안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1)Safety before schedule(일정보다 안전이 우선)  -1936년 이래 이어져온 정책으로, 정시성보다도 안전제일을 강조한다.
2)Better late than never(못하는 것보다 늦는 것이 나음)  -다소의 지연은 영구히 착륙하지 못하는 것보다 낫다.   시간에 쫓기지 말고 확실하게 정비해서 출발시켜라....(이하 생략)...8

 

 

이 밖에도 직접적 원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잠재적 배후 요인은 많다. 순천에서 교대한 사고 승무원들은 승무원 교대와 맞물려 쪽지로 전달받은 반대선 운행에 대한 운전취급 세부 사항에 대해 차분하게 숙지할 여유가 있었을까? 이것은 교대 지정역에서 급하게 교대하는 문화에 대해 꼼꼼하게 점검해보아야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또, 순천역 발차 이후 사고 지점까지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승차 후 내부 정리와 업무 적응기가 겹쳐 운전 정보의 교환과 상호 확인이 제대로 되었을지도 의문이다. 이 부분도 배후 요인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평소 일하면서 비슷한 체험을 경험한 현장 직원들이 원인 규명의 주체가 된다면 폭넓은 원인을 발굴하고 사고 이후 대책도 제대로 세울 수 있다.

 

 

 

3.

 

철도사고에 대한 배후 요인 접근은 현장 직원이라면 직감적으로 느끼는 부분에서 시작해 사건의 연계성을 하나하나 추적해 가는 전문적인 영역까지 포괄되어야 한다. 문제는 현장 직원들의 직감적인 느낌과 주장을 비전문가적 견해로 치부하는 사고 조사 풍토에 있다. 제도와 문화적 한계를 근본 원인에서 제외하고 개인의 책임만을 추궁하는 조사 풍토에 있다. 원인 규명이 근본 대책 마련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였다.

 

 

사고 이후 노동조합의 대응 중 하나로 각 지부별로 ‘원인 규명 토론회(간담회)’ 개최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유이다. 격식 없이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본인의 입장에서 추측되는 사고 원인에 대해 토론하고, 조직 안전 문화에 대해 점검해보는 것이다. 현장의 노동자들이 사고 원인 규명의 주체로 서는 것이다. 재발 방지와 철도 안전 확보를 위한 마음을 모으자는 것이다.

 

 

토론(간담회)을 통해 모아진 배후 원인 분석과 대책을 정리해 과제로 분류하면 노동조합의 요구안을 정리할 수 있다. 원인 규명을 위한 과정에서부터 조합은 철도 안전 확보를 위한 중추적인 주체로서 위상을 확보해 갈 수 있다.

 

 

‘원인 규명 현장 토론회’는 첫 실험인 만큼 내용과 형식, 참여 수준 등에서 부족함이 많을 것이다. 전문적인 사고 조사와 원인 규명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잠재된 배후 요인은 위에 서술하였다시피 존재해왔고 그러한 문제를 방치하지 않았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개연성이 높다. 현장에서 경험한 야간 차단 작업시의 에피소드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비슷한 경험의 공유, 각자의 조건에서 바라보는 사고 원인 진단과 대책 제시 등이면 사고 원인과 대책 마련의 주체로서 철도노동자가 자리할 수 있다. 스스로의 안전 의식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다. 철도 안전을 보는 철도노동자의 의식에 대전환이 일어날 것이다. 공기업 노동자로서의 자기 자긍심도 배가될 것이다.

 

(끝)

 

 

________________________

1 <‘휴먼팩터 분석, 사고는 왜 반복되는가?’(한언출판사, 이시바시 아키라 지음)>에서 인용하였으며, 이 글의 많은 내용 또한 참고하였다.

 

2 ‘휴먼팩터 분석, 사고는 왜 반복되는가?’(한언출판사, 이시바시 아키라 지음)>

 

3 철도 안전보건경영방침에는 ①원활한 의사소통과 자유로운 문제제기를 장려하는 보고하는 문화, ②정해진 법령 및 규정과 절차, 매뉴얼을 준수하는 지키는 문화, ③안전의 확보를 위해 조직과 직책을 넘어 일치하는 협력하는 문화, ④사고사례로부터 배우는 학습하는 문화를 4대 안전문화로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현재 노사공동위원회 안전분과에서 진행 중인 연구는 위와 같은 4대 안전문화의 현황을 진단하고, 실제 정착되기 어려운 조건을 발굴 개선하기 위한 과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4 한국안전학회 부회장인 한성대 박두용교수는 노동조합 실무팀(노사공동위)과의 면담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적이 있다. “현대제철의 경우에는 현장 직원과의 면담을 통해 실제 보고되는 것 외에 36배에 이르는 사고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보고되지 않은 내부의 잠재적 사고를 잘 파악해야 근본 문제를 파악하고 해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취지로 무재해운동이나 무사고운동과 같은 제도는 선진국에서는 폐기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CEO가 무재해를 밝히는 순간, 현장은 사고에 있어서는 ’있어도 없는 것‘이 되는 현실이 되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경우 ’처벌조항‘을 없애고 ’적정재해율‘ 개념을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경미한 사고에 대한 ’적정재해율‘을 두고 반드시 그렇게 보고하도록 해 사고의 경향성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5 정부가 추진 중인 성과주의연봉제 시스템 도입이 철도 안전에 미칠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JR 동일본은 여전히 성과주의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고 있다.’<지자체 투자출연기관 노사민정 안전거버넌스 연구 최종보고서_노광표 외>고 한다.

 

6 반대선 전 구간 60km/h 운행은 지난 2003년 2월 발생한 신태인~김제간 사고 이후 일정 기간 경험한 적이 있다. 당시 유지보수업체는 차단 작업시간 이전에 공사에 투입되었으며 열차와 충돌해 7명이 숨져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다. 이후 60km/h 운행은 전체 구간에서 작업 구간으로 범위가 축소된 뒤, 이마저도 작업 성격에 따라 필요한 경우 서행하는 체계로 변화되었다. 이 또한 열차 지연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복선구간의 단선취급은 그만큼 불안전 요소가 산재해 있다. 커다란 사고는 전례가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사고에도 이른바 ‘계보’가 있다고 한다. 근본적 위험을 인식하고 대응 방안을 다각적으로 구성하지 않으면 비슷한 사고는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고 그 피해는 우리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

 

7 기관사 1인이 운행하는 경우의 지적확인을 살펴보자. 붉은 정지 신호를 확인한 기관사는 정차 후 출발을 위해 지적확인을 한다. 곧게 뻗은 손으로 ‘출발 진행’이라고 외쳤다. 물론 기관사의 인식은 틀린 것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 경도된 인식은 이후 스스로의 자각을 통해 바로잡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즉, 정지 신호를 보고 진행 신호로 착각한 기관사는 마지막까지 ‘출발 진행’이라는 자기 확신의 지적확인만을 반복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 때 오류를 바로잡는 것은 환호응답이 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전혀 다른 인식의 범위에 속해 있는 타자와의 교류가 안전을 확보해 주는 것이고 그 과정이 환호응답이다. 이마저 불가능한 1인승무의 경우엔 ATP와 같은 운전보안장치, 후부에 승차한 열차승무원과의 소통이 보완하는 것이다.

 

8 ‘휴먼팩터 분석, 사고는 왜 반복되는가?’(한언출판사, 이시바시 아키라 지음)>, 기타 조직의 안전문화로는 ③조종실 내의 친숙한 분위기와 긴장감의 공존, ④직종간의 커뮤니케이션 양호, ⑤노사 관계 양호, ⑥안전 정보를 언제나 입수 가능함. ⑦기장의 권한 확립과 책임의 수행, ⑧정부의 양해 하에서 안전 보고 제도를 면책성, 익명성 등에 의해 운영함 등이다. 모든 조항이 깊이 검토하고 성찰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