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참사8주년 기획①] 시속 300km, 달리는 시한폭탄 KTX
고희철 기자 khc@vop.co.kr 입력 2011-02-17 18:24:23 / 수정 2011-02-18 15:14:03
서울에서 부산까지 중간 정차 없이 달리면 2시간 8분만에 도착하는 KTX. 그러나 최근 탈선 사고가 일어나면서 무분별한 외주화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우려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11일 오후 1시 5분경 부산발 광명행 KTX 224호 열차가 광명역 전방 500m 지점 일직터널에서 선로를 이탈해 멈췄다. 앞의 네 량은 선로로 제대로 들어섰으나 뒤의 여섯 량은 선로를 이탈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이번 사고는 2004년 KTX 개통 이후 첫 탈선 사고로 기록됐다. 사고 뒤 열차의 세 량이 ‘대통령 전용열차’로 밝혀지면서 더욱 큰 충격을 줬다.
사고를 조사하고 있는 국토해양부와 철도공사는 외주업체 직원이 선로전환기의 컨트롤박스에서 낡은 케이블을 교체하면서 너트를 제대로 조이지 않은 것이 원인이라고 지난 14일 잠정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문제의 너트가 분실되고 외주사인 K업체가 억울해 하고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사고 원인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외주화 지속 확대...일부 차량은 정비까지 외부업체가 맡아
외주화란 회사 업무 일부를 다른 업체에 위탁하는 것으로, 외주화가 상당히 진행된 KTX에서는 업무의 상당 부분을 철도공사 직원이 아니라 민간업체 직원이 맡고 있다.
KTX 탈선 사고 후 철도노조와 시민단체, 정치권 등은 “사고의 원인을 단순한 기계 오작동이나 개인의 착오로 떠넘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사고의 근본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은 지난 16일 “이번 사고의 근본원인은 철도공사를 민영화하여 효율성, 경영이익만을 추구하려는 정부방침에 있다”며 “철도현장에서는 인원감축과 외주화로 유지보수, 정비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목소리가 매우 높다”고 논평했다.
탈선한 KTX ⓒ뉴시스
철도공사는 2004년 KTX 개통 당시부터 선로 유지∙보수∙정비 업무를 외주화해 철도공사 직원이 아닌 민간업체 직원에게 맡겼다. 개통 이후에도 외주화는 계속 확대돼 일부 차량은 내부 정비를 외주업체가 맡고 있다고 철도노조 관계자는 밝혔다.
여기에다 최근 철도공사는 업무와 철도공사의 직원을 함께 인수토록 하는 이른바 ‘조건부 외주’ 방식을 통해 인력 축소와 외주화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외주화, 기술력 보장 어렵고 작업자간 소통 끊어
철도 관계자들이 지적하는 외주화가 철도 안전에 끼치는 악영향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외주화가 되면 철도공사와 외주업체의 계약기간이 짧기 때문에 정비 업무에 반드시 필요한 안정적인 기술력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외주업체 직원들은 임금이 낮고 근로조건이 열악한 데다 고용마저 불안한 상태에서 일하고 있다. 이로 인해 잦은 이직이 발생해 KTX 정비 업무에 필요한 안정적인 기술력을 축적하기가 쉽지 않다. 외주화로 인해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 열악해지고, 열악한 근로조건은 정비 업무의 질을 저하시켜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최근까지 KTX 차량 정비 업무를 했던 권정현 철도노조 조사국장은 “선로 유지∙보수 기술력은 단기간에 습득되지 않는데, 외주화로 인해 업체와 사람이 수시로 바뀐다”고 말했다.
철도노조의 한 간부는 “주로 퇴직한 철도공사 임원들이 외주 업체 임직원 자리를 차지한다”며 “이들은 중간착취로 자기 배만 불릴 뿐, 외주업체 직원의 근로조건 개선이나 국민 안전에 대한 책임감은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두 번째, 외주화는 작업자 사이의 소통을 원활치 못하게 해 안전 문제를 신속히 파악하고 해결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특히 공사 직원과 외주 직원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점은 비상시에 큰 문제가 야기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초고속의 대규모 운송수단인 KTX는 정비와 차량 운전, 관제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돼야만 안전하고 정확한 운행이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는 선로 정비는 외주 업체가 담당하고 있어 운전이나 관제 영역과 단절된 상태다.
권정현 국장은 “법적으로 공사에서 외주 직원을 직접 지휘∙감독할 수 없고 업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직원 간에 소속이 다르고 외주업체의 경우 보고단계가 더 많다 보니 소통이 늦어지거나 누락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KTX 탈선 사고로 선로전환기 정비에서 문제점이 드러났지만, 철도공사와 계약을 맺어야 하는 외주업체는 작업 과정의 문제를 누락시키려 들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
“외주화 중단하고, 철도공사가 정비업무 직접 관리해야”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무분별한 외주화 정책을 중단하고 주요 업무를 철도공사가 직접 담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국회 국토해양위 소속인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무리한 외주화 확대는 대형사고를 부를 수 있다”며 “안전과 직결된 정비∙보수 업무의 경우는 철도공사에서 직접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정현 국장 역시 “철도공사가 안전보다는 상업성을 중시하는 경영정책을 중단해야 한다”며 “사고가 터져야 중요성이 대두되는데 정비 업무는 반드시 철도공사에서 직접 책임져야 할 중요한 임무”라고 말했다.
-민중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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