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인 음악에 대해 언론과 팬들은 다소 꺼리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음악은 음악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술성 중심의 사고도 일종의 도그마일 수 있다. 음악으로 정치와 사회를 말하는 게 뭐 죄인가. 첨바왐바는 ‘정치성과 음악의 융합’을 지향한다. 그래서 사회비평의 메시지를 흥겨운 댄스리듬과 코러스에 실어 나른다. 그들은 새 앨범 <WYSIWYG>를 통해 다시 한번 주장한다. “먼저 음악을 즐기라구. 그리곤 이 왜곡된 세상에 대해 생각해봐!” 지난 1997년 말 노동계급의 음주 찬가인 첨바왐바의 ‘Tubthumping’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을 때로 돌아 가보자. ‘난 쓰러져. 그러나 난 다시 일어나지. 날 억누르진 못해!’ 술을 마시자는 것과 더불어 생에 대한 민초들의 오뚝이 정신이 담긴 간만의 사회적 메시지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참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특히 그때 우리는 막 IMF 관리체제로 들어간 시절이었다. 완벽한 타이밍에 힘입어 이 곡은 한동안 국내 전파를 독점했다. 이른바 ‘IMF팝송’이었다. 설령 그 내용을 모르더라도 지장은 없었다. 흥겨운 댄스리듬과 코러스로도 그만이었다. 이 곡이 그런 음악의 근원적 재미를 보유하지 못했더라면 아마 세계적 히트는 기록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처럼 팝계는 ‘음악과 정치’의 어울림을 목격했다. ‘뉴스위크’는 “좋은 음악 그리고 설교 아닌 노래로 하는 정치? 이 로맨스가 사랑을 맛보기 시작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60년대 말 일련의 정치적 메시지 송을 발표한 그룹 CCR의 리더 존 포거티는 이렇게 주장한 바 있다. “우리 음악은 특수한 목적을 갖고 있다. 먼저 사람들로 하여금 뛰어올라 춤추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선 그들에게 우리 가사를 더듬어보게 하는 것이다.” 첨바왐바도 같다. 멤버 앨리스 너터는 말한다. “우린 정치화되지 않은 대중들에게 다가가기를 원한다. 우리 노래가 가족결혼식에 연주되기를 바란다. ‘무정부주의자들’로서 우리는 대중문화의 중심 안에 위치하고싶다.” 그들은 사람들이 무거운 내용 알기 전에 먼저 가슴으로, 발로 음악을 받아들이는 것을 기본적 요건으로 본다. “엔터테인먼트는 당연한 것이다.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그냥 즐기기만 한다 해도 개의치 않는다.” 여기에는 이 과정을 거치면 음악수요자들은 자연스레 곡의 메시지 속으로 들어가게 되리라는 믿음이 깔려있다. # 한배에 탄 댄스음악과 정치 ‘댄스음악을 하는 정치적 메신저’ 첨바왐바가 2년만에 새 앨범 <WYSIWYG>를 발표했다. 먼저 앨범의 요상스런 제목은 ‘What You See Is What You Get’의 앞 글자들을 딴 것이다. ‘당신이 본 것이 당신이 얻는 것이다’라는 것인데, 이게 뭔가? 우리 음악과 정치성에 과장은 없으니 보는 대로 느끼는 대로 믿으라는 것, 얻으라는 것이다. 제목에 이미 주의(主義)에 대한 신념과 자긍심이 배어있으며 지금까지 견지해온 노선에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음을 드러내고 있다. 정말 가차없이 그들은 자신들의 레이더망에 걸린 자본주의사회의 질곡과 모순을 해부해왔다. 지금까지 한숨도 쉬지 않고 집 없는 사람들, 노동계급, 성차별 그리고 하층계급을 도외시하는 대기업위주 경제정책에 대한 노래를 부르면서 체제의 전복을 부르짖었다. 영국 리즈 출신으로 펑크가 시들고 뉴 웨이브 시대가 열릴 때쯤인 지난 1982년 남녀 혼성밴드로 결성되었다. 얼마 전까지 해리 해머, 보프 휄리, 던스탄 브루스, 폴 그레코, 댄버트 노바콘(이상 남자) 주드 애버트, 루 와츠, 앨리스 너터(이상 여자) 등의 라인업에서 베이스주자 폴 그레코가 탈퇴하여 녹음 엔지니어였던 닐 퍼거슨이 후임으로 들어오는 소폭변동이 있었지만 ‘8인의 전사’ 시스템은 그대로 유지되고있다. 악기는 기타, 베이스, 드럼, 보컬을 기본으로 타악기들과 트럼펫이 더해져 록밴드치고는 대형편성이다. 좌파적, 무정부주의적 펑크 스피릿이 주유(注油)한 ‘바꿔!’를 슬로건으로 내건 그들이 1985년 내놓은 첫 싱글부터가 타이틀이 ‘Revolution(혁명)’이었다. 더욱이 레코드는 자신들이 돈을 보태 설립한 인디 음반사 애짓-프롭(Agit-prop)에서 출시했다. 애짓-프롭이란 다름 아닌 선전운동(agitational propaganda)을 뜻한다. 이듬해 발표한 첫 앨범은 <Pictures Of Starving Children Sell Records(굶주린 아동들의 사진으로 앨범을 판다)>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바로 전해에 거행됐던 아프리카 기아난민 돕기 자선공연 ‘라이브 에이드’ 속에 숨어있는 장삿속을 질타하는 내용이었다. 87년에는 <Never Mind The Ballots: Here`s The Rest Of Your Life(투표 집어쳐, 여기 네 여생이 있어!)>로 그해 우파 보수당이 승리한 총선을 난도질했다. 제목은 섹스 피스톨스의 기념비작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에서 빌어왔다. 펑크가 그들의 뿌리임을 말해주는 대목. 이후에도 <English Rebel Songs(영국 반란자들의 노래)>, 권위에 덤벼든 <Slap!(찰싹)>, 검열에 대해 비판한 <Shhh(쉿!)>, 팝 문화를 손가락질한 <Showbusiness> 등을 내놓아 쉴새없이 음악으로 자본주의시스템에 저항해왔다. 음악적으로는 펑크 록에 이어 아카펠라 포크, 카바레풍 음악 등으로 많은 실험을 거듭했지만 90년대 들어서는 테크노성향의 댄스색깔이 짙어졌다. 현란한 댄스리듬의 ‘Tubthumping’은 결성 15년만에 첨바왐바를 무일푼 아나키스트에서 당당한 시사초점 그룹으로 끌어올린 지각 성공작이었다. 성공을 맛봤건 아니건 새 앨범을 보면 생래적 무정부주의자들답게 그들의 주의주장은 한치도 달라진 게 없다. ‘베르사체와 프라다는 나한테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 넌 친구를 돈으로 사지만 난 공짜로 널 증오해!’- ‘She`s got all the friends’중에서 부유하게 자라난 사교계 여성들의 허세를 마구 비꼰다. 그럴 듯한 학력을 바탕으로 간혹 사회를 비판하지만 그 여자들이 뭔 말을 할 게 있느냐는 것이다. 이것도 그들 눈에는 자본주의 구조적 모순에 기초한 부조리현상이다. 그럼 첨바왐바는 인터넷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을까? ‘Pass it along’과 ‘WWW Dot’에 그들의 관점이 드러나 있다. ‘집을 떠나지마. 여기 마지막으로 쉴 공간이 있어. 너의 천국은 안전한 문으로 철저히 보호되지. 세상을 막아버려. 세상은 점점 악화되고 있어. 너 자신을 구해. 집을 떠나지마.오늘은 어디로 가려고 하나. 당신이 절대로 나를 데리고 가서 여기가 바로 새로운 세상이라고 말할 곳은 없어.’- ‘Pass it along’ 중에서 도시의 빈곤, 무주택, 복지혜택 축소의 상황에서도 투자는 사회상황을 개선하는데 보다는 개인안전을 위한 곳으로 집중되고 컴퓨터세상은 한층 바깥세상과의 단절을 촉진한다. 첨바왐바는 “빌 게이츠 소프트웨어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게 아니다. 그에 의해 우린 사회로부터 소외를 제공받고 있다. 집에 머물고, 신경증에 결리고, 물건을 사들이게 된다”는 해설을 붙이고 있다(첨바왐바는 앨범의 수록곡마다 노랫말에 대한 긴 배경해설을 곁들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테마는 자본과 기술사회의 ‘소외현상’이다. # 소외와 억압에 대한 아나키스트들의 반격 ‘WWW Dot’야 말 그대로 최근 열풍이 불고있는 닷컴에 대한 노래인데, 첨바왐바의 주장은 “모든 것에 대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자본주의의 언명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은 여전히 무료 정보와 소프트웨어로 향하는 필수적 공간”이라는 것이다. 루퍼트 머독이나 빌 게이츠 등이 보여주듯 인터넷이 거대자본에 의한 투자시장이 되어 앞으로 정보의 공유화가 깨질지 모른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사실이 그렇지, 돈 다 내고 인터넷을 사용하게 된다면 돈 없는 사용자가 어찌 정보나 콘텐츠를 이용하겠는가). 비지스의 곡 ‘New York mining disaster 1941’을 골라 아카펠라식으로 리메이크한 것도 2년 전 영국 항만노동자들의 파업을 보고 이 곡에 같은 앵글이 담겨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원곡이 좋기도 하지만 메시지를 중시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음악은 정말 갖가지 스타일이 백화점 식으로 진열되어있다. 재즈, 클래식의 요소에 팝, 스카, 테크노, 컨트리 그리고 펑크적인 요소들이 합종연횡으로 펼쳐져 그들만의 독특함이 우러난다. 그들 의도대로 메시지 전에 충분히 음악을 즐기도록 구성되어있다. 첫 싱글 ‘She`s got all the friends’의 경우 ‘Tubthumping’과 분위기가 흡사해 대중들이 소화하기가 용이해 보인다. 전체적으로는 컨셉트 앨범 스타일이다(총 47분에 22곡). 문제가 있다면 지난 히트앨범과 유사한 느낌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롤링스톤’은 새로움이 결여된 ‘Tubthumping’의 재탕이라면서 ‘그룹 라이트 세드 프레드(Right Said Fred)는 그래도 우아하게 언제 그만둘지는 알았다’고 혹독한 비평을 가했다. 본인들은 현재의 이슈를 정면으로 다루는 등 전작과는 달리 갔다고 강변하지만 변화가 만족스러운 편은 아니다. 솔직히 음악도 성인 팝으로 흘러 자극이 부족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오로지 나 자신만을 외치고 개성에만 봉사하는 이 ‘잔인한 감각시대’에 이렇듯 세상보기와 정치성에 헌신하는 그룹이 버티고있다는 것은 음악계와 팬들에게는 축복이다. 탈(脫)이념의 다수대중에겐 별난 존재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이러한 ‘견제세력’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음악이 존재해야 문화의 다양성 운운하게 되는 것이다. “영국에서 특히 언론들은 압도적으로 우릴 증오했다. 그러나 이젠 우릴 ‘문화의 준거점’으로 삼는다. ‘이 그룹이 가짜 첨바왐바는 아냐. 이건 괜찮아’하는 식 말이다. 언론은 이제서야 우릴 단지 무정부적 과격파라고 인정한다.” 그들이 신보로 새 패턴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어쩌면 그들의 진가는 바로 불변과 고수에 있을지 모른다. 첨바왐바에게만은 새로움은 독이다. |
2000/04 임진모(jjinmoo@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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