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철마야

정부, 외국자본에 '한국 철도 기간망 장악' 길 터줬다!

대지의 마음 2012. 9. 25. 08:48

 

 

 

 

‘WTO 정부조달협정’ 개정의결서 통해 경영권 등 개방
선로·역사·엔지니어링 등 거의 모든 범위 민영화 가능
노조 등 “유럽업체 먹잇감 전락·철도 공공성 훼손될것”

 

 

정부가 국내 철도 기간망 산업을 외국 자본 손에 넘길 수 있는 길을 텄다. 지난 3월 체결한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GPA) 개정의결서를 통해 철도시설의 건설 및 엔지니어링, 철도시설의 운용과 감독 등의 문호가 외국 자본에 개방된 사실이 24일 확인됐다.

 

 

 

<한겨레>가 박원석(무소속)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통상교섭본부의 세계무역기구 정부조달협정 개정의결서 번역 초안을 보면, △일반 철도시설의 건설 및 조달 △일반 철도의 설계 등 엔지니어링 서비스 △일반 철도시설의 감독 및 경영의 조달 계약이 공개 대상에 포함됐다.

 

열차 운행을 통한 여객·화물 운송 서비스 정도를 제외하고 설계·건설·감독을 비롯해 시설 운용·유지 및 보수 등 철도 기간망의 거의 모든 내용을 망라하는 범위다.

 

 

 

정부는 이와 함께 정부조달 공개 대상 기관도 큰 폭으로 늘렸다. 1997년에 맺었던 정부조달협정의 경우, 철도와 관련해선 한국철도공사만 대상으로 포함돼 있었다. 이에 한국철도공사가 사용하는 열차의 객실·부품 위주의 조달 계약에만 외국 자본이 참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번 개정 협정문에는 한국철도시설공단과 서울메트로, 도시철도공사, 인천메트로 등 전국 광역자치단체의 지하철 등 기간 선로 산업 기관이 모두 포함됐다. 또 철도시설 건설과 유지·보수 등을 담당하는 철도시설공단이 정부조달 공개 대상에 포함되면서, 협정문의 주석에도 ‘철도시설의 건설·감독·운용’ 등이 공개 대상으로 명시된 것이다.

 

 

 

철도산업 관계자들은 이 가운데서도 ‘일반 철도시설의 경영·감독’에 주목했다. 길만 뚫어놓으면 자동차가 알아서 달리는 도로교통과 달리, 열차는 분·초 단위로 정밀하게 짜인 관제 계획에 따라 제한된 선로 위를 달리게 된다. 철로를 운용하는 관제권을 확보할 경우, 열차를 이용한 운송사업은 면허만 따면 언제라도 뛰어들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박흥수 철도노조 정책연구팀장은 “국토해양부가 철도 민영화 추진의 일환으로 코레일에 있는 각 지역 역사의 소유권과 관제권을 회수하는 일에 골몰했던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며 “협정문을 보면 코레일을 압박해 관제권과 역사 소유권을 철도시설공단에 넘긴 뒤, 이를 외국 자본에 팔아넘기기 위한 의도라고밖에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협정문은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과 연계돼 파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두 나라는 자유무역협정 체결 당시 철도 분야의 개방 범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규정을 두지 않고 정부조달협정을 준용하도록 해두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한국 철도 기간 산업은 크게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세계 철도산업의 최강자는 유럽의 철도산업체들이다. 미국에선 비행기와 선박을 이용한 물류산업이 발달했지만, 유럽 각국의 교역은 일찍이 철도를 따라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해 300억달러 수준으로 추산되는 세계 철도 시장의 50% 정도는 프랑스 알스톰, 독일 지멘스, 독일과 스웨덴의 합작기업인 아드트란츠 등이 차지하고 있다. 또 유럽의 철도산업체들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한반도로 이어, 일본까지 연결하는 대륙횡단 철도물류산업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한국 철도 기간망이 외국 자본에 열리게 되면 유럽 철도산업체가 파상공세를 펼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김성희 고려대 연구교수(경제학)는 “이번 정부가 무리하게 추진했던 철도산업 민영화가 결국 외국 자본을 향해 있음이 명백해졌다”며 “지하철 9호선 논란을 보듯 공공의 영역에 외국 자본이 들어설 경우 부작용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박원석 의원도 “철도 기간망은 공공성이 가장 강한 교통망이기 때문에 외국 자본의 먹잇감이 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국제협정의 특성상 한번 체결되면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에 국회 비준 과정에 이를 지켜내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조달은 ‘관세무역 일반협정’(가트·GATT)의 예외사항으로 무역 자유화가 이뤄지지 않았던 분야다. 이에 ‘가트 체제’를 확대 계승한 세계무역기구는 정부조달협정 회원국을 대상으로만 정부조달 영역에서도 자유무역이 실시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현재 정부조달협정의 회원국은 한국, 미국, 유럽연합과 유럽연합의 27개 회원국, 일본, 캐나다, 이스라엘 등으로, 통상교섭본부는 지난 3월3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대사급 회의에서 정부조달협정 개정안을 채택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