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나무의 전설

마리옹 꼬띠아르의 '러스트 앤 본'

대지의 마음 2013. 5. 3. 07:32

 

 

 

1. 평일 광주극장에서 아내와 '러스트 앤 본'을 봅니다.

 

2. 아침 일찍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주고 시내 카페에서 1시간 30분을 기다렸다 조조 상영을 만나기 위해 광주극장으로 향합니다.

 

3. 아직까진 오늘 만날 영화의 제대로 된 제목도 모릅니다.

 

4. 간혹 들르는 광주극장은 어느 영화관보다 편한 곳입니다.

담요 1장씩을 들고 3층으로 향합니다.

 

5.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삼삼오오 '러스트 앤 본'을 만나러 온 관객들이 보입니다.

 

 

 

 

6. 프랑스 영화입니다. 칸영화제에 출품되어 호평을 받고 수상을 하였다고도 합니다.

 

7. 영화가 시작됩니다. 남자 주인공 마티아스 쇼에나에츠(극중 알랭)이 머리에 아들을 이고 거리에서 쏜살같이 지나치는 차에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테제베 안에서도 배고픈 아이와 함께 남이 먹다 남은 간식을 주워모아 먹습니다. 가슴이 짠합니다. 현실을 현실답게 그려놓은 영화는 늘 이렇게 가슴이 내려앉습니다. 영화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의 문제입니다.

 

8. 남자주인공 알랭이 여주인공 마리옹 꼬띠아르(극중 스테파니)와 댄스클럽에서 만납니다. 스테파니 역시 시니컬한 표정을 지어보이지만 정신적 상처가 심하게 전해져 옵니다. 클럽에서 모르는 남자에게 코피가 터지게 맞고 알랭의 보호를 받습니다.

 

9. 고래 조련사인 스테파니, 고래 쇼가 나오자 며칠 전에 보았던 다큐 생각이 나 '인간이란 어디나 똑 같구나!'하고 한숨을 쉽니다.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한 돌고래의 딱한 처지는 이 영화와 별 상관이 없습니다.

 

10. 돌고래 범고래쇼 중 벌어진 예기치 않은 사고로 스테파니가 병원에 누워 있습니다. 오랜 시간 치료를 받고 이제 막 깨어난 스테파니의 시선을 따라 카메라가 천천히 돌아갑니다. '어, 다리가 없잖아!'하고 아내에게 말하는 순간, 이불을 걷어올린 주인공이 울부짖습니다. 내 몸의 일부분이 순식간에 사려저버린 현실 앞에 절망하는 주인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다리를 만져 봅니다.

 

 

 

11. 영화 줄거리가 계속 머리 속에서 맴돌지만 더 이상의 스포일러는 되지 않기로 합니다.(ㅠ.ㅜ.)

 

12. 삼류 인생이라고 해야 합니다. 하지만 삼류 인생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하류층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게 어쩌면 남자 주인공이 돈을 벌기 위해 몰입하는 '격투기'입니다. 태연스럽게 돈을 걸고 피튀기는 폭력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장 저급한 하류 인생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13. 하지만, 스테파니는 여기에서도 자신감있게 맞서는 모습을 보이며 다리 잃고 절망에 빠졌던 스스로를 극복합니다. 정신적 상처를 가지고 두 다리를 잃어버렸던 스테파니가 남자 주인공을 통해 비로소 자기 인생을 찾게 된 겁니다.

 

14. 남자 주인공 알랭의 아이가 친척집에서 만난 강아지에게 전해주는 사랑도 소외된 정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러운 강아지집에 들어가서 강아지와 함께 놀다가 아빠에게 혼나고. 결국 떠나가는 강아지를 슬퍼하며 눈물로 소리치다가 아빠에게 들려 소파에 던져집니다. 보는 내 가슴이 철렁내려앉을 정도입니다.

 

15. 스테파니와 돌고래범고래가 교감하는 장면은 정말 명장면입니다. 자연과 정서적으로 하나가 되는 인간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습니다.(비록 그 공간이 인공적 공간이 아니면 좋겠지만..)

 

16. 오래간만에 만난 아빠와 아들이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썰매 놀이를 합니다. 10분만 더 놀자고 말하던 아빠가 소변이 급했던지 가장자리에서 소변을 봅니다. '어, 아이가...!' 조그만 호수 구멍에 아이가 빠져버립니다. 영화를 바라보던 관객들 모두가 안타까운 외침을 쏟아냅니다. 뒷좌석에서도 눈물을 흘립니다. 옆에 앉은 아내도 울기 시작합니다. 격투기를 위해 훈련중인 아빠는 절규하며 아이를 꺼내기 위해 맨 손으로 두꺼운 얼음을 깨기 시작합니다.

 

17. 두꺼운 얼음이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하더니 결국 박살이 납니다. 아이를 꺼내들고 병원으로 달리는 아빠! 힘든 인생을 살아가는 아빠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이가 생사를 헤매고 있습니다. 아빠의 사랑이 온전히 전해져 옵니다.

 

18. 병원 수술대 위에 아이를 올려두고 밖에서 기다리던 아빠에게 스테파니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어느 누구도 의지할 데가 없었다고 호소하며 격한 눈물을 흘립니다. 비로소 아빠에게도 인생을 함께할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언제이던가 나도 그와 비슷한 답답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19. 얼음을 깨다 손뼈가 상한 아빠에게 격투기는 늘 찌릿찌릿한 통증이 동반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젠 새롭게 태어난 스테파니와 역시 새롭게 태어난 아들이 함께 있으니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20. 영화는 아주 좋습니다. 남녀 주인공 모두의 연기도 굉장히 좋습니다. 추천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21. 아내가 여주인공 마리옹 꼬띠아르는 '미드나잇 인 파리'에 나왔다고 전해줍니다. '엉, 그래~!, 근데 왜 기억이 안 나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몇 달 전에 보았던 영화입니다. 거기에 나왔다니 기억이 전혀 나질 않습니다.

 

22.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 얻은 여주인공 마리옹 꼬띠아르의 인터뷰 내용을 보고서 비로소 '미드나잇 인 파리'에 등장했음을 기억해 냅니다.

 

23. 앞으로도 광주극장 조조 영화를 즐겨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