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위하여

[스크랩] 전범기업 미쓰비시와 조선여자근로정신대를 아시나요?

대지의 마음 2013. 8. 5. 08:00

 

전범기업 미쓰비시와 조선여자근로정신대를 아시나요?

 

 

약 70여년전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전시 노동력 조달을 목적으로 동원된 12~15세의 어린 소녀들입니다.  

  

위안부가 일본인에 의한 성적 착취의 대상이었다면 조선여자근로정신대일본인에 의한 노동력 착취의 대상이었습니다. 

 

1945년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왔지만 이들 앞에는 또 다른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일본에 다녀왔다는 이유만으로 일본군 위안부로 오인되어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기 힘들었고, 어렵게 가정을 꾸렸더라도 남편의 학대와 자식들의 냉대를 견뎌내야 했습니다. 

  

그 소녀들이 이제 그 질곡의 세월을 거쳐 80대 중반의 할머니들이 되었습니다.   

 

20075, 한 많은 세월과 오랜 상처를 딛고 용기를 내어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를 상대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투쟁에 나섰지만 나고야 고등재판소에서 기각됨으로써 또 한 번의 상처와 좌절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제 2013년 8월 23일 미쓰비시를 상대로 한 재판이 다시 열립니다.

 

이 재판에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의 힘을 실어주세요.

 

조선여자근로정신대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아픈 역사입니다.

 

 

  

 

 

12~15세의 어린 소녀들로 조직된 이들은 일제가 패전할 때까지 굶주림과 혹독한 감시 속에 하루 8~10시간 동안의 강제 노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다달이 적금을 넣어서 나중에 임금을 지급하겠다.” 거짓말일본이 패전할 무렵에는 조선에 돌아가 있으면 보내주겠다.” 는 거짓말로 변했습니다.

 

 

 

 

 

군수 공장에서의 노동은 혹독했고, 열악한 작업 환경과 강요된 할당량 때문에 손가락이 잘리고 허리를 다치는 등 부상이 많았습니다.  

 

찬 겨울 장갑 하나 없이 맨손으로 철판을 만지고 찬물에 부품을 씻느라 손등은 늘 퉁퉁 붓고 갈라졌습니다.

 

 

 

 

 어린 소녀들에게 혹독한 노동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배고픔이었습니다. 

 

 된장국과 단무지 한쪽이 전부인 밥조차 늘 부족하여 물로 헛배를 채우고 이름 모를 잡초를 뜯어 허기를 달래기가 다반사였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어린 나이에 일본인 교장의 거짓말에 속아서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지옥 같았던 세월을 보낸 후, 돌아온 조국에선 손가락질 받으며 모질고 서러운 한평생을 보낸 어린 소녀가 이제 80대 중반의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늙고 병든 몸을 이끌고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어렵게 일본까지 갔지만 나고야 고등재판소에서의 기각으로 실의를 금치 못하고 주저앉고야 말았습니다.  

 

 

 

 

 

99엔의 치욕을 아십니까? 

 

2012년 이들은 전범기업 미쓰비시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99엔, 한화로 1200원 가량을 받았습니다. 

  

지옥 같았던 노동력 수탈과 정신적 피해의 댓가로 지급된 금액이 70년이 지난 지금 겨우 1200원으로 돌아오다니... 

 

 한편 상대적 강대국인 중국인 피해자 564명에겐 37800만엔(한화 약 54억원)이 지급되었습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짓밟힌 자존심입니다.

 

70년의 한 많았던 세월이 단 돈 1200원으로 환산되자 너무나 화가 난 할머니는 일본 대사관에 그 돈을 던져버리는 것으로 울분을 터뜨립니다. 

 

 

 

 

 

2011215.

국민 10만명 모금운동 10만 희망릴레이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울지 마세요, 할머니. 

 우리는 당신을 영원히 기억할 것 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당신의 서명 한 번이 할머니들에게 희망입니다.

 

기억하지 않은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8월 23일 재판에 대한민국의 힘을 실어주세요.

 

이곳을 통해 당신의 서명을 꼭 부탁드립니다.

 

 

 

 

 

출처 : 청원
글쓴이 : 이승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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