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위하여

빼앗길 수 없는 광주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대지의 마음 2013. 5. 17. 06:49

 

<Redian>에서 옮겨옵니다.

'노래'가 '노래 이상'임을 봅니다.

 

 


 

빼앗길 수 없는 광주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가사부터 한 번 읽어보고 시작해보자. 그렇다.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역사에 가장 뚜렷한 족적을 남긴 노래,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의 일부 구절을 소설가 황석영이 개사하고 MBC대학가요제 출신의 김종률이 선율을 붙인 노래, 노동현장과 도청광장에서 아름다운 젊음을 바친 두 영혼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 공테이프로 몰래몰래 복사하여 마침내 드넓은 광장에 백만의 함성을 이끌어낸 감동의 바로 그 노래 말이다.

 

광주로부터 87년을 거쳐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이 노래와 함께 했던 수많은 이들이 흘린 피와 눈물을 떠올린다면, 어쩌면 참으로 서정적이고 차분하기 그지없는 노랫말이다.

 

어찌 이리도 점잖은 노래를 가지고 광주 수천 영령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이며, 학살자들과 그 후예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수 있었겠는가마는 민주화 운동의 주체들은 흥분을 폭발시키는 대신 경건하고 묵직하게 마음을 가다듬으며 오래도록 이 노래를 불러왔고 그만큼 성숙한 민주주의를 쟁취해 왔다.

 

<임을 위한 행진곡>, 경건하고 묵직한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이 광장에서 힘차게 울려 퍼지는 동안 학살자들은 권좌에서 쫓겨났고 사람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얼싸안게 되었다.

 

군부의 총칼에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보냈던 광주의 시민들에게 <임을 위한 행진곡>은 무엇보다도 커다란 위로가 되어 주었다. 그러므로 80년 광주를 기억하고 떠올리는 때, 깊이 패어 있는 남은 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자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갖는 소중함은 굳이 부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소중한 기억의 시간에 훼방을 놓고 쓰라린 상흔에 또다시 재를 뿌리려고 하는 비열한 자들은 슬프게도 우리 주변에 여전히 건재하다.

 

광주의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아픈 상처를 치유하는데 모든 정성을 쏟아야 할 학살자의 후예들이자 이 나라의 집권 세력으로 나선 어떤 권력자들, 선거 때는 반성과 화합을 앵무새처럼 지껄이다가 권력을 쥐고 나면 180도 태도를 바꾸는 낯두꺼운 인간들 말이다.

 

몇 년 전, 전과 14범짜리 대통령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이런 소인배들이 하나둘씩 기어 나오더니, 이번에 새로이 대통령 권좌에 오른 박근혜의 주변에서도 또다시 한 무리가 기어 나오려는 찰나다.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방아타령>이라는, 차라리 웃음밖에는 나오지 않는 전 정부의 행패에 이어, 이번 정부에서는 이 노래가 국가행사에 부적절한 노래라며 광주를 위한 새로운 노래를 상금을 걸고 공모하겠다는 것이다. 막상 사회적 논란이 크게 불거지니까 나몰라라 발뺌하며 물러서는 최소한의 신념도 없는 싸구려 인생들에 의해서 말이다.

 

선명하고 급진적인 해외의 국가(國歌)들

 

다시 말하건대 <임을 위한 행진곡>은 노래의 배경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너무나 차분한 노래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노래들을 보라.

 

“오 주 우리 하느님이여 일어나사 / 여왕의 적들을 흩으시고 / 그들을 패망하게 하소서 / 그들의 책략을 깨뜨리시고 / 악랄한 흉계를 헛되게 하소서”

- 영국 국가(國歌)

 

“폭군에 결연히 맞서서 / 피묻은 전쟁의 깃발을 올려라 / 피묻은 전쟁의 깃발을 올려라 / 무기를 잡으라, 시민들이여 / 그대, 부대의 앞장을 서라 / 진격하자, 진격하자 / 우리 조국의 목마른 들판에 / 적들의 더러운 피가 넘쳐흐르도록”

- 프랑스 국가(國歌)

 

“이탈리아의 피와 폴란드의 피는 / 코사크와 함께 마셨다네 / 그러나 심장은 불타고 있다네 / 우리 함께 뭉치자 / 우린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 우린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 이탈리아 국가(國歌)

 

“무장하라, 무장하라! / 땅과 바다 위에서 / 무장하라, 무장하라! / 조국을 위하여 투쟁하라! / 대포에 맞서 전진! 전진!”

- 포르투갈 국가(國歌)

 

이상은 유럽 여러 나라들 공식 국가(國歌)의 일부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이면 어김없이 우리 안방에 울려 퍼지는 노래들이며, 또한 해당 국가의 전국민이 애창하는 노래들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과 비교해보면 얼마나 과격하고 급진적인 것들이 많은가. 한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가 말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피하는 왜곡된 취향의 일단에 대해 짐작 가는 바가 없지는 않지만 사실 그것은 취향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영혼 없는 인생들의 질 낮은 신념과 태도를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기념곡, 고난과 영광을 함께 해온 노래

 

한편, 기념곡의 기본은 부르던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고난과 영광의 순간을 오래도록 기리고자 한다면 그때, 거기, 그들이 가장 열렬하게 애창했던 노래를 기념곡으로 삼는 것이 상식적이고 적절한 태도다. 앞서 열거한 해외의 노래들도 그렇지만 한국의 애국가 역시 그런 경우의 매우 전형적인 사례이다.

 

안익태가 작곡하였고, 부끄러움도 없이 가문과 명예와 인생을 걸고 서로 자신이 작사했다고 주장하는 4절짜리 그 애국가 말이다.

 

작사, 작곡자 모두 친일의 길을 걸었고 심지어 작곡자는 나치 부역자의 경력까지 안고 있다. 게다가 악곡의 선율은 불가리아 민요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그런 이유에서인지 4절에 가서는 누가 먼저 그랬는지 모르는 채 민망한 돌림노래로 마무리되는 이상한 구조의 노래.

 

심지어 최근까지도 저작권료를 몰래 수취해 온 굴욕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노래. 무엇보다도 한국의 공식적인 ‘국가’로 제정된 적이 없는 노래가 바로 애국가 아닌가.

 

애국가, 부족하지만 그래도 우리의 노래

 

하지만 오랜 세월동안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애창해왔고, 이 나라를 살아가는 한 구성원으로서 저마다의 긍정적인 다짐들을 이끌어내는 노래로 쓰이고 있으니 적잖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국가(國歌)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며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노래로 소개되는 것이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애국가는 한 나라를 대표하고 기념하기에 부적절한 점이 많지만, 그보다도 오랜 역사의 굴곡 속에, 수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응축된 가치 하나만으로도 그 모든 단점을 극복하고 지금껏 애창되는 것 아니겠나.

 

그러므로 어떤 신문 논설에서도 말해진 바와 같이, 광주항쟁 기념 노래를 정부가 새롭게 제정한다고 해서 도대체 누가 그 노래를 진심을 담아 부르겠는가. 역사에서 유리된 관제 이벤트를 통해 만들어진 그 어떤 노래가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겠는가. 진심은커녕 강압이 없다면 그걸 단 한번이라도 부르기나 하겠는가.

 

박근혜 정부와 국가보훈처가 진정으로 고인들과 그 후손들을 섬기고 분열된 우리 사회의 소통과 화합을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면 괜한 분란만 일으키는 이 쓸데없는 소동을 하루라도 빨리 거둬들여야 한다.

 

아무런 명분도 실익도 없는 이런 소동을 당장 중단시키고 광주의 유족들과 관계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신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당연히 5.18 행사의 중심으로 되돌아 와야 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 진짜배기 한류

 

뜬금없는 이야기 하나만 첨언하자. 정부 관계자 여러분들, 한류라고 하면 다들 좋아할 줄로 알고 있다.

 

그런데 노래 분야에서의 원조 한류는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겠다. 진작부터 세계 여러 나라의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널리 애창되어 왔으니까 말이다.

 

한류라면 전력을 다해 홍보하고 해외 각국으로의 전파를 위해 전폭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 대상 아니었던가. 해외로 퍼져나간 우리의 노래 중에 어느 노래가 이보다 멋지게 국위 선양을 해왔단 말인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야말로 쭉정이가 아닌 알곡 한류다. 공직자 여러분들의 전폭적 지지를 기대한다.

 

 

[태국판]

 

[중국판]

 

[대만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