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기관차 형제들에게 드리는 글.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울기관차 승무지부 박흥수 조합원입니다. 이렇게 실명을 걸고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세월호 참사 때문입니다. 켜켜이 쌓인 비상식과 반인간의 문화,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이 썩을 대로 썩어 있는 한국사회의 문제를 그대로 놔두면 다음엔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이 비극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이제는 각자가 할 수 있는 위치에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입니다.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이 결정됐고 앞으로 화물 자회사 추진 등 여러 가지 변화의 물결이 철도를 덮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박근혜 정권 내내 국토부는 물 만난 고기처럼 철도를 난도질해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설혹 나중에 이성과 상식을 가진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되돌릴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철도 노동자들은 쉴 새 없는 고통의 시간을 갖게 될지도 모릅니다.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합니다.
지난 달 3월 28일 국토부는 철도 시설공단에 KTX 기장 양성 센터를 만들겠다며 50억의 예산을 신청하기로 했습니다. 제2의 KTX 기장 양성기관을 만들겠다는 것이고 수서발 KTX 기장은 이 제2 양성기관에서 배출된 인력을 위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수서발 KTX는 향후 코레일과의 어떤 연결고리도 갖지 않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국토부가 코레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들에 대한 말과 행동을 오래동안 봐온 입장에서 볼 때, 국토부는 코레일을 지독히 혐오하고 있습니다.
국토부가 시설공단에 KTX 기장 양성기관을 만든다고 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KTX 기장이 철도공사의 기관사 중에 선발되는 관계로 파업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제2 양성기관은 철도공사와의 단절을 통해 노동쟁의를 하지 않는 순치된 기관사들로 채우겠다는 것입니다. 만약 수서발 KTX 자회사가 국토부와 코레일 경영진의 의도대로 완결된다면 무노조 회사나 유령노조를 통한 무쟁의 사업장으로 탄생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의 문제는 세월호에서 우리가 똑똑히 본 것처럼 ‘안전’이란 것이 완전히 무시되는 것입니다.
공공교통수단은 그 운영주체가 민간이든 공영이든 안전을 최고의 가치로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국토부 관료들은 안전을 노무 관리의 하위 범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무서운 일입니다. 국토부의 발상은 안전불감증 외에 노동에 대한 경시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것이지요. 노동자가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하게 되는 꼭두각시가 된다면 부정이나 위험요소에 대한 내부 감시나 고발은 불가능해지고 그만큼 한국사회는 위험사회가 됩니다.
양성기관을 만드는 또 하나의 이유는 코레일에서 KTX 기장 양성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향후 확대되는 고속열차 운행 수요에 비해 KTX 기장의 공급이 원할치 않아서 제2 양성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국토부는 열차 운전을 단순히 면허를 발급하면 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밑에서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겠습니다. 어쨌든 코레일의 KTX 기장 양성이 더디다면 코레일의 기장 양성시스템을 재점검해 원활한 기장 양성 체제를 갖도록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철도공사의 KTX 기장 양성은 왜 이렇게 더뎌서 국토부에게 이런 능욕을 당하는 걸까요? 바로 무능한 경영진 때문입니다. 철도공사의 기관사 양성체제는 KTX가 운행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고, 이에 따라 회사 차원의 장기적 대안이 마련되어야 했습니다. 여기에는 기관차 사업소의 편제와 인력 구조, 근무체계가 모두 연동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철도공사의 경영진은 KTX를 특화시켰고 이를 통해 노조를 길들이는 방향을 취합니다.
새롭게 주력운행 열차로 등장하고, 신기술과 고속으로 운행되는 차량을 운전하고 싶은 것은 기관사라면 당연한 것입니다. 따라서 고속열차와 일반열차의 운행을 담당하는 기관사 자원은 인력 풀이라는 개념으로 유지되어야 안전에도, 기술 습득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토부의 뻘짓으로 민간에 기관사 면허가 개방되고, 이후 면허취득이라는 고정개념으로 열차운전을 사고하게 되면서 KTX 기장 면허는 기관사들을 분리 관리하는 하나의 기제가 되어 버립니다.
이런 상황에 대못을 박은 것은 허준영 전 사장이었습니다. 2009년 파업 이후 기관사의 파업동력을 무력화시키겠다며 수 천 명의 기관사를 양성하겠다고 밝혔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저는 허준영 사장이 기관사 양성을 시키겠다고 밝혔을 때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철도공사 내부의 의견을 들어 철회될 줄 알았던 것이지요. 제정신이 있는 철도 고위직이라면 사장에게 충심을 갖고 직언을 하는 사람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허 사장의 방침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기관사 면허를 일반 사무직을 포함하여 평소에 운전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 남발하게 됩니다. 허준영 사장의 재임 기간은 상당히 중요한 시점이었습니다. 신형 전기기관차의 확대, 누리로와 ITX 등 고정 편성열차 도입, 미래를 대비한 KTX 기장 양성 등 기관사들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었지만 파업 대체인력 양성에 돈과 시간을 쏟아 부으면서 정작 중요한 일을 놓치고 만 거지요. 결과가 이러니 국토부에서 코레일이 KTX 기장 양성능력이 한계가 있다고 해도 찍소리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회사의 방침에 따라 현장에서 견습 승무를 했던 사람들이 어땠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허준영표 기관사 면허를 취득한 사람들이 만약 열차를 운전한다면 우리는 가족에게 열차를 타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현장의 팀장이나 소속장들조차도 위에서 하라니까 하는 거지 이런 게 무슨 효과가 있겠냐고 투덜거릴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투덜거리기만 할 뿐 누구도 용기를 내서 말하지 않더군요.
현재는 더 심각합니다. KTX 기장 면허를 팀장을 거쳐야만 취득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런 안이 참신한 노조 대응책으로 여겨지는 그룹의 사고가 어처구니없습니다.
이제 면허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국토부가 철도안전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하겠다면서 철도안전법에 기관사 면허 항목을 넣고 일반인에게 기관사 면허취득을 개방했습니다. 물론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는 일입니다. 과거에는 기관사 면허를 가졌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했습니까? 충분한 철도 경력, 특히 다년간의 부기관사 승무 경험을 토대로 한 열차운전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기관사 면허는 면허만 가지고 있지 실제 운전은 불가능합니다. 세상에 어떤 면허가 실제 승무경험이 없이 시뮬레이터 기능 시험으로 발급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기관사 면허는 입문과정을 인정해주는 여타의 다른 면허와는 다른 개념으로 정립되어야 합니다. 가까운 일본 철도의 기관사 양성과정이나 유럽의 기관사 양성 시스템도 철도 내부 인력을 기준으로 합니다. 국토부는 취업난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에게 기관사 면허를 남발하는 희망고문을 시키고 대신 엄청난 비용을 개인에게 전가시키는 제도를 마련한 것이지요. 여기에 어디 안전에 대한 개념이 있습니까?
기관사 면허는 특성에 따른 철도 운영기관이 자신들의 인력 운용방침에 맞게 신규 인력을 채용하고 이들이 철도인으로써 기술과 경험을 연마한 후 열차 운전에 나설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따라서 현재 세분화되어 있는 철도 운전면허제도는 진정한 열차 운전 기술인력을 양성하는 체제로 바뀌어야 합니다. 또한 지하철공사나 경전철 회사는 각기 기관이 특성에 맞는 양성체제를 확립해야 합니다.
한국 간선 철도망을 책임지고 있는 철도공사의 기관사 면허제도는 열차 특성별 면허제도를 취하고 있는데 이것은 인력 운용면에서도 기술확보 면에서도 굉장히 비효율적이고 낙후된 제도입니다. 왜냐하면 기관사의 항시적 운전 능력 확보를 위한 교육시스템이 필요한 마당에 철도 면허취득 기간에만 반짝 몰두하게 만드는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철도공사의 기관사 등용은 수도권 광역철도를 제외하고는 디젤 면허를 기반으로 해서 운영되었습니다. 이것은 디젤기관차가 일반철도의 주력 기관차였기 때문입니다.
이 디젤 면허가 사실상의 기관사 면허였고, 모든 부기관사의 꿈이었죠. 기관사 면허를 따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었는지 우리 모두가 잘 알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관사 면허를 처음 딸 때 충분한 훈련과 경험이 바탕이 되고 힘든 교육과 시험 통과 기능을 갖게 되면 이 후는 형식적 면허 시험이 아닌 실질적 교육을 통한 신차 적응을 하는 것입니다. 디젤 기관차가 운행되다가 PP동차가 도입되었을 때 PP동차 면허를 따로 만들지 않고 신차 교육을 통해서 운행했던 방식이 맞는 것입니다.
만약 한국의 주력열차가 디젤기관차가 아니라 선진국 대부분의 나라처럼 전기기관차나 동차였으면 기관사 면허는 전기면허였을 것입니다. 지금 전기기관차 면허는 1종과 2종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1종 면허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2종을 따야 하고, 2종 면허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1종을 따야 합니다. 그러면 이미 상당기간 열차를 운전해온 사람들에게 이렇게 면허를 구분해서 발급할 정도로 차별성이 있는 것일까요? 운전면허를 단순히 신차에 대한 기능 이해로 보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열차 운전이란게 어떻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길을 알아야 합니다. 선로, 신호, 각 역의 특징, 구배에 대한 완벽히 이해하고 있는 선로와 그렇지 않은 선로를 달릴 때의 운전 경험을 다들 해보셨을 거라고 봅니다. 동력차에 대한 이해와 운전 선구에 대한 경험이 실제로 기관사의 능력인 것이지요. 이것은 어쩌면 철도가 상하통합적 완결체라는 특성에 기인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ATP 기능이 발전한다 해도 선구에 대한 전문적 이해를 한 기관사와 동력차 기능만 제한적으로 알고 있는 기관사의 능력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렇습니다. 기관사 인력은 풀제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일반열차와 고속열차에 대한 운전 기술에 대한 광범위한 교육이 시행되었어야 하고 이에 따른 인력배치가 이뤄져야 코레일 경영진이 말하는 효율적인 인력관리와 전환배치도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ITX 차량이 대거 도입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는 면허취득자가 부족합니다. 다시 말하면 수십 년을 운전한 베테랑 기관사들이 존재함에도 면허취득을 못해 운전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ITX 운전 인력 배치는 ITX 도입에 따른 필요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재개발원의 교육능력 즉 수용 능력에 의해 제한받는다는 것이지요. 전국적으로 따지면 사업소별로 회당 1~3명의 기관사들이 교육을 받고 또 면허 시험에 응시해야 하고 낮은 합격률에 재시험까지 보게 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ITX 면허는 전기차 2종 면허입니다. 갓 대학을 졸업하고 일반인 면허과정에 응시해서 2종 전기 면허를 딴 취업준비생과 수 십 년간 열차를 운전하고도 면허시험에 낙방해서 재시험을 준비하는 현직 기관사를 비교해보면 코레일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인력운용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코레일의 문제만도 아닙니다. 면허가 세분화될수록 자기 기관의 생명력이 유지되는 면허발급기관이 있기 때문이지요. 면허발급기관의 목표가 능력 있는 기관사를 배출하기 위한 자격시험제도일까요? 아니면 더 많은 수험생과 더 많은 면허 종목을 통한 수익창출일까요?
현재의 면허제도의 취지에 따르면 증기기관차 시대에 입환용 디젤기관차가 들어오면 입환용 디젤 면허를 만들어야 하고 중형 디젤이 수입되면 중형 디젤 면허, 그리고 나중에는 대형 디젤면허 이런 걸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예 전기기관차 면허자체가 없었을 시절 8000호대 전기기관차는 어떻게 몰았나 궁금합니다.
면허시험도 웃기기 짝이 없습니다. 시험평가관 중 타기관 사람이 배치되는 경우는 아이러니하죠. 같은 기관에서 감독관이 오면 부정이 개입하고 합격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말이 일리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공적인 대학입학이나 취업 같은 상대적 경쟁이라면 같은 기관의 감독자는 부정의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철도 기관사 면허는 성격이 다릅니다. 시뮬레이터로 운행하는 구간은 경부선인데 시험응시생은 이 노선을 수백 번 다닌 사람이고 타기관에서 오는 평가관은 한 번도 운행해보지 않은 사람입니다.
노선이 문제가 아니라 응급처치 등 면허기종에 맞는 기능 평가를 하는 것이라고 강변할 수도 있습니다. 3주에 이르는 교육과정을 이수했는데도 기능이 부족하면 이 부족한 면을 집중적으로 향상시킬 교육훈련이 필요합니다. 기관사 면허 제도의 핵심은 초기 진입은 엄격하게, 향후 도입되는 신 차량은 반복적인 교육훈련을 통한 운행자격 부여가 되어야 합니다.
현재 1종과 2종으로 나눠진 전기차 면허는 사실 기관사들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면허발급기관을 위한 제도입니다. 코레일에 현명한 간부가 있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KTX 면허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일반 열차 운전 경력 10년 이상의 기관사 중 무작위로 추첨하여 10명을 교육시키고, 현행 선발제도에 의해 10명을 뽑아서 교육 후에 면허시험을 보거나 향후 운행에 투입하게 되면 두 그룹에 커다란 차이가 날까요? 만약 심각한 차이가 난다면 한국철도의 기관사 운용은 커다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일반열차나 고속열차 모두 기관사는 열차안전의 최후의 보루입니다. 때문에 이들의 능력에는 급격한 차이가 나지 않게 유지하는 게 제대로 된 회사이지요. 한국철도 기관사의 평균 능력은 철도 운전을 완벽하게 책임질 수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KTX 면허는 보다 광범위하게 보유하게끔 하고 이 중에서 고속열차 운전을 담당하게 되면 해당 소속에서 더 전문적인 교육과 견습을 통해 업무를 수행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면허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업소의 인력 배치와 업무의 순환을 통한 노동강도의 조절 등 다양한 순기능을 담보할 수 있습니다. 코레일 경영진이 그토록 원하는 효율적인 인력운용을 할 수 있는 길이지요.
제가 소속된 서울기관차 사업소에서는 고속철도가 운행되기 전 최고의 운전조는 새마을 조였습니다. PP동차를 주력으로 모는 새마을 조는 서울기관차에서 가장 베테랑들이 소속된 조였고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새마을이 아니라 무궁화호와 당시 운행되었던 통일호를 운전하는 기관사들도 이따금씩 배당되는 PP동차를 보조기관사나 부기관사로 승무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PP동차의 운전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신조 차량과 구형차량에 대해 경험을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적으로 신조차량 운전을 맡게 되었을 때 업무능력과 안전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PP동차 운전의 기능적인 면은 얼마나 쉬운 일인지 기관사 여러분들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서울지역 소속이니 서울지역을 기초로 부연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현재 서울본부 운전은 서울고속, 서울기관차, 용산기관차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굳이 나눌 필요가 없습니다. 원래 용산기관차가 분리되었던 것은 동차 사무소로서의 특성 때문이었지만 현재 동차 사무소의 기능이 없어진 마당에 굳이 분리된 사업소로 나뉘어 있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서울승무센터로 통합해서 서울 기점 경부, 호남, 장항선의 고속과 일반 열차를 기능과 특성에 맞게 승무하면 됩니다. 장점도 있습니다.
고속열차 조는 기존의 KTX 기장들 위주로 운영하면 됩니다. 일반 열차 담당 기관사들은 일반 열차를 주력으로 운행하며 이중 KTX 면허를 갖고있는 사람들은 일부 고속열차를 고속기장의 지도 아래 승무를 하게되면 자연스럽게 고속열차 운전 기능을 습득하게 됩니다. 이런 것은 인력 풀제로 운영되는 것의 효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정년을 앞둔 고속기장들을 다시 경 사업으로 순환 배치할 수 있는 길도 열립니다. 프랑스에서는 50이 넘으면 고속열차를 운전하지 않으려 합니다. 왜 그럴까요? 외국의 철도 환경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를 통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최연혜 사장이 숙원하는 효율화도 달성될 수 있습니다. 엄청난 고액연봉을 받고 있는 1급 직의 소속장들을 비롯한 고위직을 확 줄여서 철도공사의 경영개선에 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철도공사의 고위직 문제는 국토부의 지적사항이기도 했으므로 사장은 적극적으로 인력문제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운전 쪽의 고위직을 줄이는 문제에 대해서 말했더니, 그렇게 고위직을 줄이면 운수나 다른 파트에 비해 운전인의 파워나 입지가 줄어드니 안 된다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쥐가 고양이 생각하는 격입니다. 운전직 고위직군에 있는 분들이 기관사들을 얼마나 위할까요? 운전직이 본부장이나 부사장하면 기관사들 살림살이 나아질까요?
저는 이번 강제전출을 보면서 기관차 사업소장들에게 대 실망을 했습니다. 사실은 그들도 압니다. 강제전출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 서울기관차에서 청량리기관차로 발령받은 3명의 기관사 중에는 정직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력이 부족해서 효율화를 시킨다는 명목으로 전출을 시키는데 정작 업무가 정지된 사람을 보냈습니다. 정직자야 그 기간이 끝나고 곧 복귀한다 하더라도 더 황당한 것은 청량리에서 주력으로 운전하는 전기기관차 면허가 없는 기관사를 발령 냈습니다. 기관사로 승무를 할 수 없지요. 정말 대단한 효율화입니다. 다른 기관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생소한 노선, 한번도 운전해 보지 않은 8000호대 구형 전기기관차가 배속된 소속에서 이들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또 얼마나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 회사가 교육을 시켜야 합니까?
이런 불합리한 문제에 대해 단 한 사람의 소속장도 의견을 제시한 사람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제 짧은 생각 같아서는 정년도 얼마 남지 않은 분들도 계시는데 뭐가 무서워서 직언을 못할까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철도를 진정으로 위한다면 이런 불합리함에 대해 양심의 목소리를 낼 용기정도는 갖고 있어야 하지 않는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평생을 윗사람 눈치 보며 머리 조아리면서 사는데 숙달된 분들은 어쩔 수 없구나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관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주기적으로 행해지는 교육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기관사과 입소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이 별로 없습니다. 인재개발원은 언제나 만원입니다. 가뜩이나 세분화된 면허제도에 타 직렬도 교육이 필요합니다. 또 일반인 면허 교육 등으로 눈코 뜰새 없지요. 허준영 사장 시절 서울본부 분원 교육을 5일간 받은 적이 있는데 어떤 날은 강사 몇 명이 급한 일로 출장 갔다며 대리로 들어온 강사들이 주변 돌아가는 얘기로 때우고 끝난 적도 있습니다.
사이버 교육은? 그 실효성이 어떤지는 기관사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지난 3월 동부본부에서 오래 만에 전기차 보수 교육을 받았습니다. 별 기대도 안하고 갔는데 3일간 알차게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시뮬레이터를 통한 각종 고장 처치 등의 교육은 감히 신차로 현장에서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시뮬레이터는 이런데 써야지요. 강사들도 성심껏 교육을 했습니다. 전기차를 운행하고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미처 신경쓰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교육을 통해 새로운 여러 가지를 배우고 훈련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기회가 더 자주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가물에 콩 나듯 한다는 게 문제지요.
기관사들이 받는 교육도 새롭게 변화해야 합니다. 기관사과 교육이 면허시험 응시를 위한 수험과정으로 변질된지 오래지만 면허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실제 열차 운전을 책임지는 기관사로서 가질 책임과 소양도 배워야 합니다. 기관사를 비롯한 승무 담당 직원들은 교육과정에 심폐소생술과 심장자동재세동기 작동법, 열차 비상 탈출 훈련 같은 과정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합니다. 기관사는 비상시 끝까지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관사 교육과목도 대폭 개편되어야 합니다. 제가 여러 나라의 기관사 교육 과정에 대해 살펴봤지만 두꺼운 책 한권 분량의 전기 결선도에 형광펜 그리면서 하는 교육을 시키는 나라는 없습니다. 그런게 실제 상황에서 어떤 도움이 될까요? 전기 시간은 아주 간략한 도면으로 전기설비나 장치의 이해를 돕는 것에 국한됩니다. 어떤 회로가 여자되면 어떤 회로가 무여자 되고 이러면 어디가 연동돼서 어떻게 된다라고 하고 이런 게 시험에 나오는 것이 진정으로 현장의 기관사들에게 도움이 될까요?
게다가 모듈형 전기기관차나 고정편성 열차들이 등장하고 컴퓨터 CCU로 제어되는 동력차에서요. 기관사 시험뿐만 아니라 사업소에서 1년에 두 번 보는 시문의 기술 분야에도 이제 사라져가는 디젤 기관차 전기장치 영어 약자 가득 적은 보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60년대의 교육방식이 대대로 계승된 결과인데 이건 전통이 아니라 구태에 가까운 것이지요.
교육이 중구난방으로 되다보니 일정한 주기성도 반복성도 없습니다. 특히 현장에서의 교육도 중요한데 소집교육이 제 역할을 하지도 못합니다. 교육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반복성과 실제상황 재현이 꼭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관사들의 교번에 주기적으로 배치되어야 합니다. 제 생각에는 최소 두 달에 한 번은 승무사업 교번에 일근이나 박다이아를 지정해 교육을 배치해야하고 안되면 분기별로 한 번은 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교육의 실효성뿐만 아니라 강사의 전문성도 높아집니다.
그렇다면 현장 교육 내용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말로만 들었던 이상 상황을 재현하고 해결하는 것입니다. 객차와 화차의 완해불량 해결, 중간 객차 제동관이나 주공기관 파열시 비상 연결과 객차 제동장치 변환, 중련 전기기관차의 운전실 전환, 무화회송조치 등 말로는 쉽게 할 수 있어도 실제 상황에서 당황할 수 있는 것들을 몸에 완전히 익히도록 한 사람 한 사람이 직접 해봐야 합니다.
기관사들이 전기기관차 운행 중 가장 스트레스 받는 것은 역시 절연구간입니다. 이 절연구간에 조치 사항에는 단로기를 이용한 탈출방법도 있습니다. 문서가 아닌 실제 훈련을 해본 기관사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절연구간에 대해서는 할 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상당수의 절연구간들을 어쩌면 그렇게 절묘하게 설치했는지 운전 중 식은 땀 나게 하는 곳이 얼마나 많습니까? 시설 설계시 운영자의 의견이 반영되었다면 이렇게 되었을지 의문입니다.
이왕 글이 길어진 김에 ATP 이야기도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봄바르디아 ATP도 문제가 있지만 지금은 그나마 많이 적응 되었기에 그놈의 안살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우리가 쓰는 방식은 레벨1입니다. 레벨2의 기능과 방식은 다음 기회가 있다면 말씀 드리겠습니다. 레벨1은 DTG(Distance to Go)라고 불리는 차상거리 연상기능 방식입니다. 고정폐색 원리에 의해 점유된 고정폐색의 끝지점 까지 이동 권한이 부여되는 것입니다. 신호정보는 LEU(Lineside Equipment Unit)라는 장치를 통하여 열차를 불연속 제어 합니다.
이를 위해 두 개의 발리스가 설치되는데 두 개의 발리스 중 기관차로부터 멀리 있는게 고정발리스입니다. 이것이 폐색구간의 길이, 선로구배, 곡선반경, 분기기, 정거장 위치 등을 전송하죠. 가까이 있는게 가변 발리스로 선행열차의 위치와 속도 같이 운행 중 지속적으로 변환하는 데이터를 전송합니다. 최소 시격은 이론적으로 120초, 최고설계속도는 500km/h입니다. 최초의 적용사례는 2001년 3월 개통된 불가리아의 Sofia-Burgus의 약250km 구간입니다.
이 ATP는 유럽의 경우 ERTMS(European Rail Traffic Management System)이라는 표준을 도입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표준을 도입한 이유는 다 아시겠지만 유럽 국가간 상이한 신호체계를 통일해 직결운전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ATP는 지상ATP와 차상ATP로 나누어 지상을 Eurobalise로 통일하고 차상을 EuroCAB에서 담당하는데 각 국별 상이한 ATP체제를 위의 두 지상장치와 차상장치의 표준에 합치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세계시장에서 ATP의 지상장치 점유율은 봄바르디어가 27%, 알스톰이 21%로 1,2위를 차지합니다. 차상장치에서는 알스톰이 32%, 봄바르디어가 29%의 점유율을 갖고 있죠. 차상장치에서 알스톰이 수위를 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프랑스 국영철도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나라에 차량을 납품하는 알스톰이 지들이 만드는 차상장치를 장착하는건 당연한 것이죠. 위의 점유율에서 보듯이 봄바르디어는 ATP계에서 검증된 회사입니다. 물론 우리가 골치를 썩고 있는 안살도가 기술수준이 낮은 회사는 아닙니다. 안살도도 양부분 세계3위의 거대 기업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왜 비극이 시작된 걸까요? 한국철도의 ATP 지상장치는 봄바르디어로 설치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차상장치도 더 적확한 호환성을 위해 봄바르디어로 장착하는게 상식입니다. 그런데 다들 알다시피 신형전기기관차의 8255호 까지는 봄바르디어의 차상장치가 장착되었는데 8256호 부터는 안살도가 장착되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상호 호환성에 문제가 있어 8256호는 상당기간 레벨1 모드로 운영되지 못하고 변칙기능인 STM모드로 운행되다가 최근에 와서야 레벨1 운행을 하게 된 것입니다. 중간에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는 유능하신 경영진분들이 잘 아시리라 생각되므로 이점이 궁금하신 분은 업무포탈에 질문을 하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최적화 되었다는 안살도의 소프트웨어가 근본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첨단장치로 들여놓은 것이 한국철도의 시스템과 궁합이 맞지 않는 것입니다. 현재 수색기지에서 출발하는 안살도 차량은 시발역인 서울역이나 용산역까지 ATP를 꺽고 운행합니다. 문제는 신촌-서울역간의 회송구간에 40키로 서행구간이 있는데 이곳은 절연 구간 바로 앞입니다. 서행 40키로를 지키면 유독 안살도 차량은 속도가 저하되어 절연구간에 빠질 위험이 커지게 됩니다.
서행구간이 생긴 초기 수많은 회송열차들이 승인 후 퇴행을 반복했습니다. 어떻게 서행구간 하나 통과 못하는 시스템을 갖고 열차를 운행합니까? 하도 문제가 발생하니 부사장 특별지시로 STM 모드나 ATP 차단운행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부사장의 특별지시가 상용 운전보안장치를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라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절연구간 앞에서 저속 서행이 있을 때마다 부사장님의 은총을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안살도는 절연구간 앞에서 상당한 거리를 두고 MCB를 차단시키는데 전기기관차는 특성상 가급적이면 MCB 차단 운행거리가 짧은 게 좋습니다. MCB차단이 길수록 기기적으로 에러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집니다. 전기기관차의 특성을 무시한 안살도의 절연구간 통과 방식은 하드웨어의 문제인지 소프트웨어의 문제인지 규명할 필요가 있으며 대책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사실 ATP의 문제는 더 심각한 데 있습니다. 이것은 봄바르디어도 어느 정도 해당됩니다. 열차의 속도 지시 이후에 황색 라인이 현시되면 기관사는 본능적으로 ATP화면만을 보며 감속조치를 하게됩니다. 상당시간 전방주시를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특히 정지정위로 정차역이 바뀐 상황에서 급하게 속도가 안 떨어지고 25KM/H 제한을 받을 때는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승강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에 대해 인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어떤 열차는 20키로만 넘어도 제동이 걸려 정차위치 훨씬 앞에 강제 정차를 하게 됩니다. 만약 맨 후부가 승강장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아주 안좋은 상황이 됩니다.
요즘 전기차 승무 기관사들은 이력이 붙어서 아예 슬슬 기어 들어와 위와 같은 문제를 피하고 있습니다. 폐색구간의 시격을 줄여 열차 운행시간을 단축시켜 준다는 ATP의 한국적 현실인 셈입니다. 신형 전기기관차가 겪고 있는 이런 문제는 사실 차량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유럽에서 ATP가 적용되면서 열차 최고속도가 높아지는데도 운행간격을 좁힐 수 있는 것은 열차의 제동 성능이 그것을 뒷받침 해주기 때문입니다.
철도는 운영부분과 시설이 상호 조화롭게 발전하는 특성이 있는데 유럽에서의 열차 성능 향상이 ATP란 신호체계를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일례로 누리로의 ATP는 전기기관차가 겪는 문제를 갖지 않습니다. 높은 제동성능으로 인한 감속도로 충분히 ATP의 지시속도를 열차가 구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철도공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최소한 안살도의 소프트웨어가 봄다르디어와 동일한 성능을 구현하도록 제조사에 요구하던지, 불가능하다면 봄바르디어 차상장치로 통일시켜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ATP가 요구하는 감속도를 구현할 수 있는 제동력이 있는 열차인 ITX같은 열차들로 모두 교체해야 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방식은 철도공사의 예산 체계상 불가능해 보이므로 당장은 안살도 ATP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장에서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열심히 가감간을 잡고 달리시는 기관사분들께 언제나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 2-3년 동안은 철도에 많은 변화가 올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철도를 사랑한다면 국토부나 코레일 경영진이 “우리가 잘 알아서 할테니, 너희는 조용히 기다리며 우리의 지시를 따라라!”하는 말에 속으면 안 됩니다. 세월호 침몰로 아이를 잃은 어느 학부모의 말처럼 후회하지 말고 봉사를 하든 데모를 하든 해야 합니다.
다른 지부, 타직종 핑계될 것 없습니다. 지난해 12월 장기간의 파업으로 몸도 마음도 지쳐 있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먼저 실천해야만 합니다. 철도 노동자 모두 한 마음으로 철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차량의 안전한 정비, 전기·신호의 노력, 수송원의 유도, 열차승무원들과의 호흡이 맞지 않으면 우리가 운전하는 열차는 한 발짝도 못나갑니다. 우리 전체 철도 노동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철도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미래가 되었으면 합니다.
쓰다 보니 글이 엄청 길어졌습니다. 수 백 명의 어린 죽음 앞에서 목격한 한국사회의 현실을 보면서 이제는 더 이상 체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로 뿔뿔이 흩어져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존 레논의 이매진에 나오는 가사 한 구절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꿈꾼다고 하지만, 난 혼자가 아닙니다. 나는 희망합니다. 언젠가 당신이 우리와 함께 할 것을.”
전국의 기관사 여러분, 그리고 철도 노동자 여러분!! 안전운행 하시고 몸과 마음이 늘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수색벌에서 기관사 박흥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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