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위하여

[경향신문]고공농성 100일째 이창근이 '글 스승' 홍세화에게 풀어놓은 굴뚝생활_(2015.3.22)

대지의 마음 2015. 3. 24. 12:09

 

21일 오후 4시쯤 경기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내 70m 높이 굴뚝에서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이 손을 크게 흔들었다. 이날 경기도 전역에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됐지만 또렷하게 이 실장 움직임이 보였다. 그의 손짓은 22일로 100일을 맞는 굴뚝농성을 가까이에서 보려고 막 평택공장에 도착한 홍세화 장발장은행 공동대표를 향하고 있었다.

홍 대표가 화답으로 보내는 손짓에는 반가움과 걱정스러움이 포개져 있었다. 홍 대표는 이 실장의 ‘글 스승’이다. 건강한 활동가인 이 실장이 몇해 전 외부에 발표하는 글을 미리 보고 더 간결한 문체가 될 수 있게 안내해준 사람이 바로 홍 대표다. 이 실장은 믿고 의지하는 홍 대표에게 고공에서 하고 있는 고민과 회사에 대한 심경의 변화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두 사람 간 대화는 아이패드 영상통화를 통해 1시간 넘게 이어졌다.


홍세화 대표(이하 홍) : 얼굴이 많이 그을린 것 같다.

이창근 실장(이하 이) : (선생님에게) 더 어울리는 모자가 있을 텐데… 늘 아쉽다. (웃음)

홍 : 머리도 다 빠지고 해서 모자를 쓰는데 (다른 걸) 찾아볼게. 가발을 쓰든지. (웃음) 나는 높은 데를 올라가보지 못해 그런데 어때? 좀더 겸손해지고 그런 게 있나.

이 : 그건 아니고요. 많이 변하는 것 같다. 처음엔 ‘내가 너무 약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올라오니 너무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여길 못 올라와서 동료들이 많이 죽었나 싶기도 했다. 아무튼 낮은 자세로 임했다. 그래야 공장 안에서 일하는 동료들이 이해해줄 수 있으니 말이다. 공장 동료, 회사 사무 관리직 마음이 바뀌어야 하니까. 집회도 해보고 정치권도 들어왔지만 바뀌지 않았다. 법과 제도가 아니라 동료들 마음을 어떻게 얻을 것인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다. 60일부터 80일 사이엔 세상이 만만하게 보였다. 다 허점 투성이 같고 모순 덩어리 같고 화도 많이 났다. 80일을 넘기니 다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좀 차분해졌다. 그 이유가 그들 탓이 아니라 내 탓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홍 : 앞으로 전망은 어때?

이 : 우선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에서 자본과 경영을 보는 시각이 바뀌었으면 한다. 노동의 시각에서 벗어나 이분들(자본과 경영) 입장에서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해보고 싶다. 7년간 회계조작 문제, 26명 죽음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왜 상대쪽에선 안 들었지? 경영진은 뭘 보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경영진은 수출국가의 환율, 연비, 이산화탄소 배출 절감 등 많은 것을 보더라. 이 많은 것들 중 우리 문제가 작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홍 : 올라가서 보니 공장 전체가 보이고 그런 것 같네.

이 : 아까 말씀드린 차원에서 전망을 하면 쌍용차가 이번 계기를 통해 충분히 되살아날 수 있다고 본다. 티볼리 한 대가 잘 팔린다, 아니라는 차원에 국한되는 게 아니다. 우리도 새로운 가치를 내걸고 주장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고민을 하고 있다. 해고자 복직과 26명 희생자 대책뿐 아니라 자동차 산업이 안고 있는 부품협력사 문제, 단가 후려치기 문제 등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우리도 싸운다고 깊이 볼 겨를이 없었는데 이런 부분도 봐야 할 것 같다. 싸우면서 자기 몫을 해야 한다. 노동자 경영 참여 이야기를 하는데 무엇을 위한 참여인지가 중요하다. 만약 핵심 부품 협력사가 경영난을 겪어 부품 수급이 안 된다고 하자. 그러면 쌍용차는 라인을 세울 수밖에 없다. 어떻게 이 경우 노동자가 힘을 모아 줄 거냐. 펀드가 되든 뭐가 되든 노동자가 돈을 모아서 땡겨줄 수 있지 않겠느냐. 참여를 어떤 식으로 하는 게 유익하고 이익인가를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또 노동자 목소리를 어떻게 내고 확장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노조가 이야기하는 것을 사람들이 신경질적으로 반응 안 하도록 할 수 있는가의 문제일 수 있다. 지금은 가르치듯이 이야기한다. ‘당신은 계급을 몰라서 그래’라고 말이다. 하지만 듣는 사람들도 다 안다. 우리가 모른다는 전제 속에서 가르치려고 하니 문제다. 제가 주저리 주저리 말을 늘어놓았는데 이런 정도 문제의식이 있다. 회사 경영진과 안에서 일하는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영상대화가 30분쯤 이어진 뒤 두 사람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두 사람이 함께 땅에 있었다면 맞담배를 피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홍 : 담배는 하루에 몇대 펴?

이 : 한 갑 반 정도 핀다.

홍 : 너무 많이 피네. 잠은 얼마나 자나.

이 : 많이 자면 4시간이다. 잠이 잘 안 온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고공농성 때) 잠을 잘 못 잤단 이야기를 듣고 이해를 못했는데 위에 있다보니 불안감이 있다. 굴뚝이 털리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다. 경계를 계속 하게 된다. 동료들이 공장 밖 멀리 있어 혹시 일이 생기면 바로 와줄 수가 없다. 그래도 불안감을 많이 떨쳤다. 공장 안 동료들을 믿기 때문이다.

홍 : 책은 잘 안 읽히고?

이 : 밑에서 책을 많이 올려주는데 책 제목만 보고 많이 읽진 못한다. 올라올 때 책 두 권을 가지고 왔다. 하나는 선생님이 예전에 추천하신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과 아내가 준 <헤르베르트 시선>이다. 그나마 헝가리 민중시인 아틸라 요제프의 시집은 계속 보는 편이다. 사유가 깊더라.

홍 : 언제 내려올 생각을 하고 있나.

이 : 선생님, 그렇게 물어보시면 제가 답을 하기가…. 아마도 봄이 다 가기 전에는 혹은 여름이 시작되기 전에는 내려가야 되지 않겠나 싶다. 봄과 여름이 닿는 면 사이에.

홍 : 다 힘들겠지만 제일 힘든 것 뭔지 궁금하다.

이 : 별로 없다. 다만 나를 힘들다고 보는 시선 자체가 힘들다. 힘들지 않냐, 이런 말이 힘들다.

홍 : 글을 어떻게 쓰고 있나.

이 : (아이패드와 키보드를 보여주며) 올라올 땐 이 두 개는 꼭 챙겼다. 글을 써야 하니까.

홍 : 책도 많이 못 보는데 글은 잘 써지나.

이 : 힘들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우리를 잘 돌아보게 됐다. 노동자들이 쓰는 말과 글이 말도 안 되게 꺾여 있다. 누군가 이야기를 하면 내용으로 비판을 해야 하는데 어떤 의도를 가졌을 거라고 보고 비판을 한다. 말과 글을 저렇게 하면 사고 자체가 비문이 된다.

홍 : 노동자 일반은 정치성이 너무 비어 있고, 반면 노조엔 정치성이 강하게 걸려 있다. 비대칭성이 심하다. 전체 노동자의 정치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한 과제다.

이 : 큰 기어와 작은 기어가 맞물려 있다고 비유해보자. 작은 기어는 쫓아가야 하니 빨리 돌아야 한다. 노조는 큰 기어라서 천천히 돌아가야 하는데 너무 빠르게 돌고 있다. 구석구석 보면서 가야지 따라오는데 그러질 못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단순히 성찰하자고 할 게 아니라 어떤 말을 고쳐야 하는지 낱낱이 봐야 한다.

홍 : 글을 많이 써둬야겠네. (웃음) 글은 이미 갖고 있는 걸 쓰는 게 아니라 쓰면서 정리를 하니 과정이니까.

이 : 글 쓰다가 생각하지 못한 문장이 나오면 정말 기쁘다. (홍 대표, 큰 소리리로 웃음) 내가 이런 문장을 썼어? 이럴 때 있잖아. 심봤다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아직 제가 어린 것 같다.

홍 : 머리는 못 깎아도 면도는 하나 보네?

이 : 제가 올라올 때 두 가지 카테고리의 키워드를 생각했다. 패기와 연성이다. 서브는 간지(일본어로 ‘느낌이’란 뜻의 단어를 멋, 맵시의 뜻으로 쓰는 속어)와 개그감이다.

홍 : 좋네. (웃음)

이 : 언제 대화해야 할지 모르니 면도는 한다. 대화하자는데 목욕탕 가서 수염 깎고 올 순 없잖아. 1초라도 빨리 새로운 시작이 이뤄져야 한다. 농성 길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교섭이 틀을 확실히 잡아야 하고. 교섭은 김득중 지부장, 김규한 위원장, 회사 간 이뤄지는 것이다. 저는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뿐이다. 이 역할이 끝나면 내려갈 거다.

이 : 선생님 건강은 어떠시나.

홍 : 괜찮다. 2월에 독감이 한 번 걸리긴 했는데….

이 : 제가 느끼기엔 건강이 많이 좋아지신 것 같다. 홍세화에겐 프랑스에서 이 나라에 들어온 뒤부터 의무가 있다. 장수의 의무다. 중의법인데 오래 사셔야 할 장수(長壽)의 의무다. 다른 하나는 장수(將帥)의 의무다.

홍 : 고맙다. (웃음)

이 : 저에겐 웃겨줄 의무가 있다.

홍 : 화면으로라도 얼굴 보니 좋네. 글 잘 쓰시고.

이 : 여러 가지로 많은 분들이 제 글 스승이다. 어머니가 우선 스승이다. 우리 집은 가난했다. 쌀이 없으니 어머니가 소량의 밀가루를 반죽하시는 걸 본 적이 있다. 밤새도록 홍두깨질을 하신다. 인간이 넓힐 수 있는 가장 넓은 범위로 말이다. 그러면서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저거 반죽할 때 어떤 생각을 하실까. 조금씩 더 넓히면 먹일 수 있는 자식 수가 늘어날 거란 생각을 하셨을 것 같다. 쌍용차 7년을 100가지 단어면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저도 100가지를 늘렸다 붙였다 했다. 해고일기 보면 비문도 있고 비약도 있는데 고치지 말라고 했다. 내가 던진 무기는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이다. 곱게 늘려야 했는데 너무 급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어머니의 홍두깨질이 여튼 가장 큰 스승이다. 홍세화 선생님도 계신다. 제 글을 뽑아서 프린드해서 첨삭했던 분은 선생님이 유일하다. 그게 큰 힘이었다. 홍세화란 사람이 나를 인정해주는 것, 그게 기분 좋았다. 지금 쓰는 게 부족하지만 이 분이 나를 믿어준다고 생각하니 든든했다. 계기는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까막눈이셨다. 제가 글자를 못 가르쳐 드려 죄송하다. (눈물) 선생님이 늘 뒤에 계신다는 알기 때문에 많이 까불고 했다. 하여간 최선 다할 것이다. 하늘이든 부처든 누가 돕겠지. 그런 믿음이 있고 희망, 낙관을 품고 있다. 포기하지 않겠다.

 

손을 흔들어 이 실장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 홍 대표는 현장에 있던 복기성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에게 이렇게 물었다. “티볼리가 요즘 진짜 많이 팔리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