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로부터 배운다'부터 배워야 한다!
'안전문화'가 자주 회자되는 요즈음 '사고로부터 배우자'는 격언도 덩달아 강조되는 현실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교훈이 제발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쳤으면 좋겠다는 하소연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었던 사고라도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자는 다짐은 깊고도 통렬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 말은 '누군가에게 얼마나 더 과중한 책임을 물리느냐?'로 둔갑해, 매운 맛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사고는 반복된다는 식으로 소비되고 있다. 사고 당사자에 대한 책임 부과는 당연하게 보이지만 그래서 정작 간과되는 것은 없을까?
철도 현장에도 경영진의 방침으로 천명되어 있는 내용 중 '사고로부터 배우는 학습하는 문화'가 보인다. 경영진의 방침을 대중적으로 공표하는 건 안전 경영에서, 또 좋은 안전문화를 다룰 때도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전제이다. 단, 이 방침을 문서화하는 것에 만족해 형해화되지 않고, 궁극적으로 현장 문화로 자리할 수 있도록 한다면 말이다.
'사고로부터 배운다'는 건 뭘까?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조사위원장으로 참여했던 하타무라 요타로의 견해를 빌린다면 다음과 같다. '사고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구체적인 사고사례 분석에서 시작해 상위개념으로 올라가 추상화·보편화해 지식으로까지 끌어올리는 것, 나중에 그 지식을 그때그때 형편이나 기술 상황 등 각각의 사례에 맞춰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구체적인 사례를 토대로 일반화하는 과정에 중요한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의미 정의는 구체적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현실적 대책 강구의 과정을 포함하는 것이며, 해당 사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발전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 규정의 차원에서 살펴본다면, 하나의 사고를 두고 충분히 지식화(보편화, 추상화)해서 한 기업 내지는 한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것을 게을리하기 때문에, 사고는 반복된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근래 반복되는 스크린도어(PSD) 유지보수 노동자의 죽음이 말해주는 교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앞선 사고에서 일반화된 지식을 추출하는 것도 무기력했고, 도출된 대책을 현실화하는 노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사고는 반복되었다.
그렇다면, 철도공사는 구의역 사고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 건가?
먼저 '열차 운행과 안전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업무는 어떤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충분히 보편화된 논리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것은 외주와 자회사, 직접 고용이라는 말로 표현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의식은 '때론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갈 만큼 중대한 재해에 빠질 수 있는 PSD 보수 업무는 철도 안전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열차 운행과 밀착되어 운영되는 업무는 어떤 방식으로 존재해야 안전한가?' 하는 것들이다. 즉, 안전업무에 대한 재인식과 철도 운영의 통합성이 핵심적 지식이 될 것이다. 사고 이후 대안을 마련하는 토론은 여기에 주목해 진행되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다수의 스크린도어 관련 사고에서 동일하게 발생한 본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매뉴얼을 지켜라'고 하며 '왜 안전수칙을 준수하지 않는가?'하는 타박이 얼마나 알맹이 없는 대책이었는지 꿰뚫어보는 것이다. 본질은 '매뉴얼을 왜 지킬 수 없었는가?, 현장에는 지킬 수 없는 매뉴얼이 또 얼마나 있을까?'와 같은 질문에 보편화된 답을 구하는 노력이다. 즉, 매뉴얼 운영의 적절성을 심도 깊게 성찰해야 결국 사고로부터 일반화된 대안 지식을 현실에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관점은 열차에 치어 사망할 수도 있는 위험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면, 왜 열차 운행을 일시 중지시키거나 운행이 중단된 시간대를 택해 유지보수 업무를 할 수 없는건지 따져야 한다. 이 지식은 미시적인 부분에서는 운행선에 지장을 주는 PSD 보수 작업시에는 기관차의 접근이 불가능하도록 하는 시스템적 보완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 일반화한다면 대부분의 철도 운영 매뉴얼에는 사고 위험을 막기 위해 인적 제한, 규정 등 제도적 보완, 시스템 보완 등 서로 다른 중복 안전장치가 단계적으로 완비되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이 확립되는 것이다. 이와 동일한 사고(思考) 패턴은 전라선 율촌역 사고 대책에서도 대입이 가능하다. 기관사의 과속(어떠한 원인으로 촉발되었건)은 반대선 전 구간 60km/h 제한과 같은 제도적 강제와 더불어 ATP 비장착모드라는 시스템적 최후 방어선을 통해 통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문제는 중첩된 안전장치를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평시에 깨닫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사고가 나지 않은 평시에 깨닫기 위해서는 사고나 실패에 이른 맥락을 자세히 조사하는 것에 더해 실패에 이른 경로와 그렇지 않은 경로, 모두를 파악해 전체상을 그려보는 통찰이 필요하다. 그래야 사고에서 얻은 일반화된 교훈이 PSD 보수 업무를 넘어 다른 업무(또는, 행동)에도 적용되는 과정으로 발전할 수 있다.
거시적으로 접근한다면 긴급한 PSD 유지보수 작업을 진행할 경우 역 외방에 전동차가 정차해 작업 마무리를 기다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답을 줄 수 있는 지식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것은 열차가 정시에 운행되지 못하고 조금만 늦어도 용납되지 않는 '안전문화'와 직결되는 문제이고 사회적 공감대 형성의 필요성까지 확장된다. 보여주기식 행사로 대다수의 직원들에게 피로감만 부르는 전사적 안전문화 캠페인이 개선해야 할 방향도 여기서 비롯되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사고 이후 메트로 사장 직무대행이 '안전에 영향을 주는 이유로 열차가 지연되는 것에 대해서는 경영진이 책임지겠다'고 밝힌 점은 매우 높게 평가할 수 있다.
사고로부터 배우는 과정은 경영진 또는 전문가 일방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 경영진이나 전문가 몇몇이 수행한 사고에 대한 분석과 대책을 상명하달하는 방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뼈저리게 확인하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사고로 부터 배우는 학습하는 문화'는 경영진과 현장 노동자가 신뢰 속에서 소통하는 문화가 선행되어야 비로소 본래의 취지대로 풍부한 컨텐츠를 확보해 공감대를 넓힐 수 있다. 미국의 휴스턴(Huston)은 좋은 안전문화를 위해서는 안전을 중시하는 조직문화가 뒷받침하여야 하고, 편파적이지 않은 공정문화(Just culture)는 효과적 보고문화(Reporting culture)를 가능하게 하고, 효과적인 보고문화가 비로소 학습문화(Learnign culture)를 이끈다고 했다. 신뢰와 소통의 조직문화가 마침내 사고에 민감하고 효과적인 배움이 선순환하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다시 '사고로부터 배운다'부터 배우자!
그러나, 안타깝게도 코레일이 사고 이후 내부에 전파한 안전확보긴급명령 제8호는 -긴급한 사고 상황 전파와 경각심을 일으키는 것이 기본 취지임을 감안하더라도-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안전수칙을 지키지 못한 사고'라 협소하게 단정하고 '규정과 매뉴얼 준수'를 대책으로 담은 제8호 포고(?)는 차마 인간으로서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섬뜩함마저 전해져 온다. 시민들의 분노와 추모 열기에 놀라 서울메트로 사장이 구의역 사고의 근본 원인이 당사자가 아닌 시스템에 있다고 사죄하는 기자회견을 연 이후였으니 말이다. '사고로부터 배운다는 것'의 의미부터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한 요즘이다.
(2016년 6월)
'가혹하고 이기적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터널>, 손석희 말이 맞았다... 가슴을 후벼판다.[김종성_오마이뉴스] (0) | 2016.08.12 |
---|---|
[후기]제임스 리즌의 안전문화와 스위스 철도 (0) | 2016.08.03 |
기초질서는 누가 지켜야 하나_곽상신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 (0) | 2016.06.21 |
[경향]기관사의 죽음은 왜 해결되지 않는가.(2016.06.11) (0) | 2016.06.13 |
서울시 '구의역사고' 시민토론회 관련 기사 모음. (0) | 2016.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