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교육, 그 허상과 실상
_박두용(한성대 기계시스템공학과 교수/ 한국안전학회 부회장)
‘안전불감증’ ‘안전교육’ ‘안전문화’
위 세가지는 우리나라에서 대형참사나 안전사고가 벌어졌다 하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3종 세트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근로자 과실이나 작업자 부주의, 또는 운전자 부주의다. 사고의 종류나 재난의 유형 같은 것은 상관없다.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 무엇이고 근원적 원인이 무엇인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작업자 부주의로 인해 사고가 났고, 이것이 바로 안전불감증이고, 그러니까 안전교육을 시켜야 하고, 그래서 안전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기-승-전-안전교육이요, 기-승-전-안전문화다.
정말 그럴까?
일단 세월호 참사부터 따져보자. 누구를 대상으로 무슨 교육을 시키겠다는 것인가? 선실 내에서 기다리라고 해서 차분하게 기다린 학생들에게 도대체 무슨 교육을 시키겠다는 것인가? 또는 무슨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것인가? 안내방송 따위는 믿지 말라고 가르칠 것인가? 배가 일정 이상 기울거나 이상현상이 나타나면 각자 판단해서 탈출하라고 가르칠 것인가?
구조적 위험은 개인이 조심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사고나 재난은 크게 자연재해와 인적 사고로 나눈다. 최근 우리나라도 자연재해로부터 결코 안심할 수 없지만 주로 문제가 되는 안전사고나 대형참사는 대부분 인적사고다. 최근 들어 위험은 점점 대형화, 고도화, 집적화, 복합화되고 있다. 건물은 위로 점점 더 높이 올라가고, 땅 밑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있다. 교통수단은 점점 더 빨라지고 시설물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위험사회로 진입한 지는 오래되었고 이제는 초위험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의 위험을 구조화된 위험이라고 한다.
구조화된 위험사회에서는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배를 타기 전에 그 배가 안전한지 안전하지 않은지 개인이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그 다리가 안전검사를 제대로 받았는지 여부를 개인이 하나하나 확인하고 건널 수도 없고 열차를 타기 전에 그 열차가 안전한지 확인하고 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 이상 애꿎은 국민 탓 좀 그만하기 바란다.
조심해야 할 자는 바로 위험생산자
현대사회에서 위험(risk)은 대부분 누군가 돈을 벌려고 하는 과정에서 생산된다. 다시 말하면 현대사회에서 위험은 경제활동 과정에서 생산되고 유통된다. 따라서 위험의 생산자(risk creator)와 유통자(risk distributor)가 위험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사고나 재난은 피할 수 없다.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고 가습기 살균제 사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누구를 대상으로 안전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하고 있는가? 바로 우리 국민, 근로자, 학생 아니었던가? 행여라도 위험의 생산자에게 교육을 시켜야 하지 않느냐고 하지 마라. 위험의 생산자에게 교육시킬 필요는 없다. 위험의 생산자는 반드시 그 위험을 알고 그 위험을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을 뿐이다. 현실적으로 위험의 생산자만큼 그 위험을 잘 아는 자들도 없다.
안전교육은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독약
안전교육은 참으로 그럴싸해 보이지만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프레임이라는 점에서 독약과도 같다. 대표적인 것이 근로자 교육이다. 우리나라는 산재사망률이 OECD 국가에서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하는 산재왕국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제31조는 안전보건교육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근로자 교육이란 것이 있다. 사업주는 해당 사업장의 근로자에 대하여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정기적으로 안전·보건에 관한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엔 당연할 것 같은 이 조항이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다. 이상하지 않은가? 이상할 것 없다. 사업장이 안전하지 않고 작업조건이 불안전한데 근로자에게 백날 조심하라고 교육한들 그 사업장이 안전해지겠는가?
그럼 선진국에서 근로자 교육을 하지 않는가? 아니다. 한다. 우리나라보다 더 잘한다. 왜냐하면 사업장의 안전책임은 사업주에게 있기 때문이다.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교육을 시키든 알려주든 못하게 하든 그건 알아서 할 일이지만, 근로자에게 적절한 정보를 주지 않았거나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 근로자에 대한 법정교육이라는 형식적 규제를 없앤 것은 “자, 안전교육 했지? 이제 안전은 바로 당신들 책임이야. 알아서 조심들 해서 작업하도록 해!”라고 피해자에게 안전책임을 전가하는 기존의 프레임을 바꿔버린 것이다.
그럼 안전교육은 필요 없는가?
그렇진 않다. 사실 교육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을까? 문제는 필요한 교육을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사람에게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히 선진국 학교의 안전교육과 일반 안전교육을 간략히 살펴보자. 일본 안전교육의 핵심은 지진, 화재, 태풍에 대한 대처와 대피훈련이다. 지진과 함께 화재가 늘 일어나는 위협요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자연재해 특성이 비슷한 영국의 학교교육은 교통안전과 실험실 및 직업안전교육이 대부분이다. 영국에는 일본과 같은 지진이나 태풍 대비훈련이 거의 없다. 참고로 영국의 지진위험은 우리나라와 유사하거나 약간 높다. 독일도 마찬가지로 학교에서의 안전교육이 자전거 안전교육과 교통안전교육, 그리고 실험실이나 직업 안전교육이 대부분이다.
선진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교육 중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바로 안전권리에 관한 교육이다. 내가 어떤 안전권리가 있고 그 권리를 침해받았을 때 어떻게 구제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교육을 받는다. 대표적인 것이 노동안전보건에 관한 권리다. 그러므로 안전 선진국에서는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비정규 하청노동자로 일하면서도 불안전한 작업장에서 위험에 내몰리는 일이 없다. 필요한 것은 안전교육이 아니라 안전권리다.
(출처 : 재난을 묻다_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재난참사기억프로젝트팀 지음,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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