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은 아쉬움

나무 위에 내리는 비, 아름다운 말들

대지의 마음 2020. 9. 15. 11:15

강판권 님의 책 '나무열전_나무에 숨겨진 비밀, 역사와 한자'에서

나무와 비가 어우러진 멋진 말들을 몇 개 옮겨왔습니다.

 

_사진은 공개된 자료를 옮겨왔습니다.

 

 

 

 

 

매화는 추운 날씨를 이기면서 꽃을 피워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매화는 일찍 피기에 조매(早梅), 추운 날씨에 피어서 동매(冬梅), 눈 속에 피기에 설중매(雪中梅)라 합니다.

 

매실은 여름철에 익습니다.

이 기간은 우리나라든 중국 남쪽이든 비가 오랫동안 내리는 장마기간입니다.

장마가 매실이 익을 무렵 시작하므로 장마를 매우(梅雨) 혹은 매림(梅霖)이라 합니다.

 

매실이 익으면 누렇게 변합니다.

누렇게 변한 매실을 황매라고 하고, 이 때가 장마철인지라 장마를 황매우(黃梅雨)라 합니다.

그러니 매실은 비를 맞으면서 익어가는 셈입니다.

 

......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가 김홍도는 매화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하루는 누가 그에게 매화나무를 팔려고 왔지만, 김홍도는 돈이 없어 살 수 없었습니다.

마침 어떤 사람이 김홍도에게 그림을 청하고 그 사례비로 3천 냥을 주자,

김홍도는 2천 냥으로 매화나무를 사고 8백 냥으로 술을 사서 친구들과 함께 마셨습니다.

그래서 이를 '매화음(梅花飮)'이라 합니다.

 

 

 

 

 

 

중국 당나라 시인 두목의 시 '청명'은 이렇습니다.

 

  청명 날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길가는 행인 너무 힘들어

  목동을 붙잡고 술집이 어디냐고 물어보았더니

  손들어 멀리 살구꽃 핀 마을을 가리키네

 

살구꽃이 만발한 술집에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 비를 만나면 운치가 더할 것입니다.

이 때 내리는 비를 '행화우(杏花雨)'라 합니다.

 

 

 

 

해남 강진의 윤선도 고택 녹우당에는 고령의 회화나무가 아직 잘 자라고 있습니다.

여름에 이 나무에서 '녹우(綠雨)'가 내렸습니다.

 

(초록빛 도는 나무와 어우러진 비의 모습을 녹우(綠雨)라 이름짓다니... 놀랍습니다.)

 

 

 

느릅나무 열매는 다른 어떤 나무의 열매보다 가볍습니다.

나무가 열매를 가볍게 만드는 것은 바람을 이용해서 멀리 번식하려는 의도입니다.

느릅나무 열매는 솜처럼 가볍습니다.

열매를 생기려면 꽃이 펴야 합니다.

느릅나무는 늦봄에 꽃이 핍니다.

이때 내리는 비를 '유협우(楡莢雨)'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곡우(穀雨) 전에 따는 차, 즉 '우전차'가 아주 좋습니다.

차나무가 꽃 피는 늦가을 혹은 겨울에 다갈색의 다기에 우전차를 마신다면 세상에 무엇이 부러울까요.

 

 

 

 

 

벽오동꽃은 여름에 핍니다.

그래서인지 음력 7월을 오월(梧月)이라 합니다.

이즈음 방에 누워서 벽오동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다면 무척 운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초여름에 내리는 비가 오동우(梧桐雨)입니다.

 

 


 

 

달력과 시계가 없던 시절에는 기후와 식물로 시간과 계절을 알았습니다.

나뭇잎도 세월의 흐름을 이해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옛 사람들은 잎이 떨어지면 가을인 줄 알았습니다.

 

오동일엽(梧桐一葉)은 오동잎 하나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가을이 왔음을 안다는 말입니다.

잎이 떨어지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잎 떨어지는 것을 통해 세상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사물의 변화를, 생명체의 변화를 읽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