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대
- 고정희
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 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씨뿌리는 이십대도
가꾸는 삼십대도 아주 빠르게 흘러
거두는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면
가야 할 길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안다
선택할 끈이 길지 않다는 것도 안다
방황하던 시절이나
지루하던 고비도 눈물겹게 그러안고
인생의 지도를 마감해야 한다
쭉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대,
사십대 들녘에 들어서면
땅바닥에 침을 퉤, 뱉어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사십대'라는 확인을 받는 것 같아 옮겨왔다. 돌아보면 이십대와 삼십대는 확연하게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여전히 다가올 장래를 그리워했고, 때론 먼 훗날을 그리는 꿈도 있어 변하기 일쑤였다. '나이 서른에 우린~'하던 노랫가사처럼 조만간 닥치지 않을 만큼 멀게 느껴지고, 그 사이에 무언가 내겐 새로운 변화같은게 있을 거란 희망 속에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십대와 사십대는 느슨한 고무줄처럼 흘러왔다. 아니 흐르는 시간을 느끼는 감각이 여러모로 무디어졌을테다. 이미 넘고 있는 현실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꿈이고 보면(예전 꿈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더라도..) 새로움에 대한 기다림은 더 이상 나를 들뜨게 하지 않을테고 자연스럽게 시간에 대한 감각도 중요치 않을 것이다.
난 알맹이가 여전히 사십대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위로하며 살아서일까? '사십대'라는 사실에 놀라고 돌아볼 날들이 더 많아졌다는 충고에 괜한 외로움이 생기는 것은...
'낯설은 아쉬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도_김승희 (0) | 2010.12.18 |
---|---|
소주 한 잔 했다고 하는 얘기가 아닐세_백창우 (0) | 2010.11.30 |
슈퍼스타 K2, 가장 황홀한, 그러나 끔찍한 판타지 (0) | 2010.10.28 |
사평역에서_박종화 낭송, 김현성 노래 (0) | 2010.10.23 |
[스크랩] 그 쇳물 쓰지 마라 (0) | 2010.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