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은 아쉬움

제도_김승희

대지의 마음 2010. 12. 18. 01:40

 

제도

 

 

_김승희

  

 

아이는 하루종일 색칠공부 책을 칠한다.

나비도 있고 꽃도 있고 구름도 있고 강물도 있다.

아이는 금 밖으로 자신의 색칠이 나갈까봐 두려워 한다.

누가 그 두려움을 가르쳤을까?

금 밖으로 나가선 안된다는 것을

그는 어떻게 알았을까?

나비도 꽃도 구름도 강물도

모두 색칠하는 선에 갇혀 있다.

엄마, 엄마, 크레파스가 금 밖으로

나가면 안되지? 그렇지?

아이의 상냥한 눈동자엔 겁이 흐른다.

온순하고 우아한 나의 아이는

책머리의 지시대로 종일 금 안에서만 칠한다.

내가 엄마만 아니라면

나, 이렇게, 말해버리겠어.

금을 뭉개버려라. 랄라. 선 밖으로 북북 칠해라.

나비도 강물도 구름도 꽃도 모두 폭발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것이다. 랄라.

선 밖으로 꿈틀꿈틀 뭉게뭉게 꽃피어나는 것이다.

위반하는 것이다. 범하는 것이다. 랄라

나 그토록 제도를 증오했건만

엄마는 제도다.

나를 묶었던 그것으로 너를 묶다니!

내가 그 여자이고 총독부다.

엄마를 죽여라! 랄라.

 

 

 


비단 아이만이 아니다.

모든 일상을 뒤집어 생각하는 사고에 대해 우린 여전히 거부감을 가지고 산다.

가정에서, 모임에서

노동조합에서도 여전히 기존의 벽을 넘어서는 전복적 상상은 버릇없거나 원칙에 어긋나는 일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거 좀 하면 안될까?' 고민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나 또한 여전히 제도의 틀을 넘어서기에 주저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어쩌면 천천히 상상의 습관도 점차 수그러들고 있다.

 

많은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의 간부들이 만들어놓은 제도의 틀 속에서만 숨쉬고 활동할 수 있다.

노동조합의 간부들은 원칙이라는 걸 넘어서는 조합원들을 '어느 집단이나 그런 사람들이 있어..'라며

그닥 신경쓰지 않고 변두리쯤을 차지하는 사람 정도로 치부한다.

 

노동조합 운영의 현재 틀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닐텐데

그 틀을 넘어서는 재기발랄한 제안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 건 왜 일까?

 

뒤집어 생각하고, 못하는 일을 하면 안될까 상상하는 문화를 조금은 인정하면 안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