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함께하고 있는 직장 독서모임 '글방'.
매달 1권의 책을 추천하고, 읽고, 토론하는 모임.
3년째 들어가는 순천 생활 때문에
모임에는 참석하지 못하지만 매달 책만큼은 꼬박꼬박 배달되어왔다.
해고 기간에는 회비도 받지 않고,
당연히 그러해야한다며 책은 배달되었다.
배달되어온 책 중 어떤 책은 손때를 묻히지만,
어떤 책은 나중에 봐야지 하고 잊혀지는 책도 많았다.
이번 달에 내게 전해져온 책이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잠깐 떠들어보고 무슨 내용일까 하다가
그냥 하루 중 반나절을 꼬박 시간 들여서 다 읽어버렸다.
간만에 기분 좋게 읽은(아니, 아주 쉽게) 책이었다.
낙장불입 시인, 버들치 시인, 최도사, 고알피엠 여사, 꽁지, 강남좌파, 시창작반 비너스, 섬진강변 옷가게 여사장
수경 스님, 도법 스님, 그리고 실상사와 지리산
자발적 가난이 가져다주는 행복을 선택한 그들은 누군가에겐(아니, 대다수에게)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다.
같은 인생 사는데,
늘 소유하고 갈망하는 삶, 그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일상화된 삶만을 알고 지내는 우리들.
문득 문득 왜 우리는, 나는 그런 삶 속으로 들어가지 못할까? 생각이 들고
그들을 통해 마치 내가 지리산 자락의 품에 있는 것과 같은 착각도 느꼈다.
모처럼 평안한 마음의 주말을 보냈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은 안치환의 노래로 들은 적이 있었다.
책을 보면서 '낙장불입'이니 '버들치'니 하는 시인의 본명은 누굴까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책 마지막에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라는 시의 작가가
'낙장불입'이라는 분의 시라는 글을 읽고...
아니 그럼 이원규씨가?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시 이원규 / 곡 안치환 / 노래 안치환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 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 노을을 품으려거든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시려 거든
불일 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 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 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 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유투브 Icmblake 님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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