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래치는 펭귄

NLL, '녹취록 존재'보다 중요한 '그게 뭔데?'

대지의 마음 2012. 10. 18. 08:38

 

노무현을 부관참시할 생각말고 NLL 공부부터 해라

 

 

선거만 다가오면 도지는 병이 또 도졌다. 바로 새누리당과 일부 보수언론의 ‘북풍’과 ‘색깔론’이다. 새누리당의 정문헌 의원은 단독회담과 녹취록까지 들먹이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에게 “서해북방한계선(NLL)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보수언론과 새누리당은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는 물론이고 무소속의 안철수 후보에게도 ‘입장이 뭐냐’가 다그치고 있다. ‘죽은’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악용해 야권 후보들을 잡겠다는 치졸하고도 몰상식한 선거 공작이 아닐 수 없다.

단독회담과 녹취록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자, 정문헌 의원은 “중요한 것은 내용”이라며 말을 바꿨다. ‘어디엔가 내가 주장한 내용이 있다면 된거 아니냐’는 적반하장의 태도가 아닐 수 없다.

1급 기밀에 해당되는 정상회담 대화록에 NLL 내용이 담겨 있는지, 있다면 어떤 내용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자리에서 아래와 같이 공개적으로 말했다.

“휴전선은 쌍방이 합의한 선이지만 NLL은 우리 해군이 더 이상 북상을 하지 못하도록 한 작전 금지선에 불과했다. 오늘에 와서 이것을 영토선이라고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국민을 오도하는 것이다.”

그러자 당시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은 ‘영토 주권을 포기한 발언’이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한 것을 두고 이념 공세의 소재로 삼은 것이다. 물론 이는 2007년 대선을 앞둔 정략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2012년 대선이 다가오면서 더 치졸한 형태로 재생되고 있다.

1970년대 미국 정부, “NLL 영토선 아니다”

주장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주장이 사실에 기초하지 않고 허구에 의존해 상대방을 공격할 경우 그것인 폭력이 되고 합리적인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한다. NLL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우선 ‘NLL이 영토선이 아니다’는 것은 이 선을 그은 당사자인 미국의 비밀 해제 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NLL의 근원은 정전협정 체결 한달 후인 1953년 8월 당시 유엔사령관이었던 클라크가 일방적으로 선포한 데에 있다.

그런데 1973년 들어 북한 해군 함정의 NLL 인근 수역 출현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박정희 정권은 NLL의 실효성을 주장했고 이는 미국과의 마찰로 이어졌다. 주한미국 대사관이 미국 정부에게 보낸 1973년 12월 18일자 외교 전문에 따르면 미국 대사관은 한국 외교부에 서해 5도 인근 수역에 대한 한국의 접근권과 통제권을 지지하지만 NLL은 정전협정에 명시되지도 않았고 국제법적으로도 불분명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그러면서 “만약 이 지역(NLL)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면, 한국과 미국은 잘못된 행동을 한 것으로 다른 많은 나라들에게 비춰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했다.

주한미국대사관으로부터 전문을 받은 워싱턴은 5일 후 NLL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 및 지침을 주한미국대사관에 보냈다. 핵심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우리는 NLL을 ‘정전체제’에서 ‘존중된’ 요소로써 유효성을 부여하려는 한국 외교부의 입장에 유보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우리는 북한에게 NLL을 공식적으로 설명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북한이 수용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은 선을 북한에게 부과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극도로 취약한 입장에 있게 될 것이다. 북한에게 NLL을 부과하려는 시도에 우리가 동참할 것이라고 한국 정부가 가정한다면 잘못된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입장은 오로지 NLL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은 정전협정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는 점을 한국 정부는 이해해야 할 것”라고 강조했다.

헨리 키신저, “NLL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불포함”

NLL에 대한 더욱 충격적인(?) 성격 규정은 헨리 키신저가 미 국무장관 시절인 1975년 2월 28일 작성한 외교 전문에 나와 있다. 주한미국대사관과 주한미군 사령부 및 유엔 사령부에 발송된 이 문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미국이 전부터 말해왔듯이, 북방정찰한계선(Northern Patrol Limit line)은 국제법적 지위를 갖고 있지 않다. 북방정찰한계선은 일방적으로 선포된 것으로 북한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더구나 그 선은 일방적으로 국제수역을 분리한 것이기 때문에, 명백히 국제법과 미국 정부의 해양법에 반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 내용은 북한이 주장해온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더구나 키신저는 ‘정찰(Patrol)’이라는 표현을 북방한계선 사이에 넣었는데, 이는 “NLL은 우리 해군이 더 이상 북상을 하지 못하도록 한 작전 금지선에 불과했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과 정확히 맥을 같이 한다.

더구나 키신저는 “한국 국방부가 영해라는 잘못된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며, “미국 정부는 물론이고 유엔사령부도 이 사건(북한 함정의 NLL 월선)이 한국 영해나 한국의 배타적 어업수역에서 발생했다는 한국의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가장 주목을 끄는 부분은 NLL 사수가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밝힌 것이다. 그는 “어떠한 경우에도 한국 국방부가 이 문제를 한국의 어업수역의 보호 문제로 다루는 것은 이 사안을 정당화하기 이미 어려운 처지에 있는 유엔사령부와 미국 정부의 입장을 더욱 악화시킨다”며, “우리는 정전협정과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의거한 유엔사의 합법적인 기능, 혹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미국 정부의 합법적인 기능에 한국의 어업권 주장을 위한 무력 강제집행(armed enforcement)이 포함된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특히 미국이 정전 지역을 벗어난 국제 수역으로 간주하는 지역에서는 그러하다”고 강조했다.

키신저는 “주한미국대사관과 주한미군 및 유엔사령부는 이러한 점들을 한국 정부에게 분명히 해둬야 한다”고 지침을 하달하면서, “우리는 이 사건을 국제법과 미국의 기존 입장과 불일치하는 용어로 공개적으로 규정하고 정당화하는 것이 한국과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믿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가 말한 “불일치하는 용어”란 영토선이나 해상분계선과 같은 표현을 일컫는다.

새누리당의 앞선 정권들의 경우에는?

남북기본합의서에는 현재의 관할 구역을 존중하되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정당의 노태우 정부 때 합의한 내용이다.

“NLL은 우리가 어선의 월북을 막기 위해 임의로 설정한 한계선으로 북한에서 이를 넘어와도 정전협정과는 무관하다.” 1996년 7월 16일 야당의 천용택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서해에서 북한 경비정이 5㎞나 넘어왔는데 국방부의 대응이 미흡한 경위가 무엇이냐”고 물은 것에 대한 이양호 국방방관의 답변이었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의 김영삼 정부 때 있었던 일이다.

여전히 새누리당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박정희 정권은 NLL의 합법성을 미국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노태우 정권도 NLL을 협의의 대상으로 남겨두었고, 김영삼 정권은 아예 “임의로 설정한 한계선”이라고 밝혔다. 새누리당이 NLL을 영토선이라고 주장하려면 이러한 자신의 과거부터 사죄해야 한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이미 고인이 된 노무현 대통령을 또 다시 욕되게 하고 대선을 또 다시 마녀사냥으로 몰고 가려고 한다. 가히 난치병 중에 난치병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이 난치병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국민들의 선택 밖에 없다.

[원문] http://blog.ohmynews.com/wooksik/483158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21015115300§ion=05

 

CIA, NLL 갈등 풀 수 있는 '중간선' 검토했었다

[정욱식의 '오, 평화'] 미국 비밀문서를 통해 본 NLL의 진실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의 국회 발언과 새누리당의 국정조사 요구로 촉발된 북방한계선(NLL) 문제가 대선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합리적인 문제 해결을 둘러싼 정책 대결이 있어야 할 자리를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색깔 공세가 차지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한다.

NLL 문제에 대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대책과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NLL의 근원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미국의 비밀 해제 문서를 추적해본 결과 NLL은 시작부터가 의문투성이다. NLL은 정전협정 체결 한달여 후인 1953년 8월 30일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것이라는 인식이 통념처럼 받아들여져왔다.

그런데 정작 NLL를 선포한 당사자인 미국에서 이러한 통념을 뒤집는 문서가 나왔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서재정 교수가 발굴해 <프레시안>에도 일부 내용을 소개한 바 있는 1974년 1월 1일자 중앙정보국(CIA)의 문서가 바로 그것이다.(☞바로가기)

CIA, "NLL은 1965년에 설치"

이 문서에는 NLL의 성격과 근원을 다시 따져봐야 할 세 가지 내용이 담겨 있다. 첫째는 "1960년 이전에 NLL이 설치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어떠한 문서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남한은 1953년 정전 이후 북한이 NLL를 인정해왔다고 주장"하지만, "북한이 공식적으로 NLL를 인정했다고 볼 수 있는 어떠한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CIA의 결론이었다. 이러한 당시 미국 정부의 입장은 "우리는 북한에게 NLL을 공식적으로 설명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1973년 12월 23일자 미국 국무부/국방부의 외교전문에서도 거듭 확인된다.

둘째는 "NLL은 1965년 1월 14일 한국의 해군사령관(COMNAVFORKOREA, 당시 한국 해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보유한 유엔사령부의 해군구성군사령관을 의미함)에 의해 설치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NLL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12년 늦게 그어졌다는 것이어서 주목을 끄는 부분이다. 동시에 CIA는 NLL과는 다른 이름의 선이 "1961년 해군사령관에 의해 설치되었다"고 적었는데, 이는 헨리 키신저가 말한 "북방정찰한계선(Northern Patrol Limit line)"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셋째는 "NLL의 유일한 목적은 유엔사령부 함정이 특별한 허가 없이는 NLL의 북쪽을 항해하는 것을 금지함으로써 사고를 피하는데 있었다"고 명시한 것이다. 그러면서 NLL을 사실상의 해상 경계선으로 간주하는 남한의 입장은 "국제법적으로도 어떠한 근거가 없고 NLL 길이의 일부는 영해에 관한 최소한의 조항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NLL은 해군구성군사령관의 명령과 작전통제하에 있는 군사력에만 구속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NLL이 북한이 넘어와서는 안 되는 선으로 설정된 것이 아니라 남한이나 유엔군이 넘어가서는 안 되는 선으로 설정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거듭 확인해준다. "북한이 NLL를 넘어와도 정전협정과는 무관하다"는 김영삼 정부 시절 이양호 국방장관의 발언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더구나 CIA는 "북방한계선이 적어도 두 군데에서 북한 주권하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수역을 가로지른다"고 지적했다.

CIA가 말한 두 군데란 백령도 동북쪽과 연평도 북쪽을 의미한다. 남한은 이들 섬 이북으로 3마일의 영해선을 주장했지만, "이는 (북한의 주권이 완전한-원문 그대로 인용) 북한의 내해(內海) 안에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해주항에 자유로운 접근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백령도와 연평도 이북)은 특히 민감한 지역"이라며 "확실히 잠재적인 충돌 지역"이라고 덧붙였다.

CIA가 검토한 중간선

미국의 비밀 해제 문서들에 따르면 남-북-미 간에 서해 해상경계선을 둘러싼 갈등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시점은 1973년 하반기부터였다. 북한은 그해 10월 하순부터 서해 5도 인근 수역에 함정을 보내기 시작했고, 12월 1일 열린 군사정전위원회(MAC)에서는 "서해 5도 인근 수역은 자신의 영해에 해당된다고 주장"하면서 "이들 섬을 지나거나 들어가기 위해서는 북한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유엔사령부는 NLL이 영해선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지만 "서해 5도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권"은 보장되어야 한다고 입장을 전달했다고 CIA 문서는 기록했다.

북한이 서해 5도 인접수역에 대한 영해권을 주장하고 나선 시점과 배경도 주목된다. 이와 관련해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리처드 솔로몬이 헨리 키신저에 보낸 1973년 12월 3일자 극비 문서에는 주목할 내용이 담겨 있다. 당시 데탕트에 접어든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유엔 총회 결의안을 상정·채택을 주도하면서 "유엔사와 주한미군의 미래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미국 NSC는 "한국에게 매우 우호적인 내용"이라며 이러한 내용 채택에 동의한 중국의 태도에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미국 NSC는 "서해 5도에 대한 북한의 도발적 행동"의 원인을 바로 여기에서 찾았다. "북한 정부는 미해결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중국 정부와 다소 독립적인 행동을 취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는데, 여기서 미해결 문제란 바로 서해 해상분계선 설정이었다.

CIA가 서해상의 남북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중간선"을 검토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CIA가 검토한 중간선은 "사실상의 주권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국제법과 관습에 부합하고, 북한의 해안과 유엔의 군사적 통제하에 있는 서해 도서들의 사이의 등거리에 기초하고 있다." 특히 CIA는 "중간선을 사용해 영해 분쟁을 해결하면 남한의 서해 5도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고 공해로부터 북한의 해주항의 접근도 증대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그 의의를 부여했다.

CIA의 예언을 입증하기로 하듯, 1999년 서해교전 발생 이후 NLL은 '한반도의 화약고'로 불리고 있다. 또한 최근 논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국내 정치적으로도 '뜨거운 감자'이다. 이에 따라 남북한이 상호 만족할 수 있는 방법으로 NLL 문제를 풀려고 할 경우 국내에서 초당적인 협력과 국민적 합의를 어떻게 구할 것이냐는 숙제가 남는다. 반면 남측이 NLL을 사실상의 '영토선'으로 간주하면서 사수 의지를 밝힐수록 한반도 평화는 요원해진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대한민국의 문제 해결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이자 차기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위에서 소개한 것처럼, 딜레마를 풀 수 있는 단초는 NLL을 그은 당사자인 미국의 비밀 해제 문서들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