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쏙 l 6·4 민심-화제의 인물들
광주 북구 녹색당 필순씨 락선기
박필순(39·사진) 녹색당 광주시당 준비위원장은 광주시 북구의원에 도전했다가 낙선했다. 시당준비위원장이 기초의회에 출마한 것은 이례적이다. “풀뿌리 정치를 지향해온 정당인 만큼 동네에서 생활정치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광주전남녹색연합 사무처장을 지낸 그는 주민들과 함께 마을 뒷산의 자그마한 논(일명 ‘개구리논’)에서 농사를 짓고, 북부순환도로 저지에 힘을 쏟아온 환경운동가다.
‘여성 후보야?’
선거운동 내내 들었던 말이 “본인이세요?”였다. 처음엔 ‘박필순’이라고 하니깐 여성 후보인 줄 알았다는 분들이 많았다. 주변의 권유를 받고 출마를 망설이다가 5월7일 예비후보 등록을 했다. 그동안 동네에서 마을 일을 하면서 이런저런 활동을 해왔지만, 구의원 후보로서의 나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이었다. 선거라고는 한번도 치러보지 않은 ‘초짜’들로 선거캠프를 꾸렸다. 녹색당원이면서 시민단체 활동을 해본 친구들이지만, 선거운동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 어디서부터 무엇부터 해야 할지 잘 몰랐다.
하지만 15일 북구의원 후보로 등록하고 출마선언을 하면서부터 눈빛들이 달라졌다. 그 진면목은 녹색선거캠프(사무소) 개소식에서 드러났다. 기초의원 후보에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큰 선거사무실을 구했다. 선거캠프를 진짜 캠핑장으로 만들자는 아이디어 때문이었다. 딱딱한 사무실이 아니라, 녹색당다운 캠프를 꾸렸다. 당원들이 텐트, 테이블, 그릇 등 캠핑장비를 들고 왔다. 화분들을 하나둘씩 모아 한쪽에 정원을 만들었다. 후보의 자리를 따로 두지 않고, ‘평등 테이블’을 함께 사용했다. 아이들은 텐트에서 블록게임을 하고, 테이프로 만든 사방치기를 하면서 신나게 놀았다.
“여자 아니었어요?” 인지도 낮고
후보캠프도 선거 초짜들이었지만
사무실에 캠핑장 만들어 ‘즐겨보자’
녹색신호등 횡단보도 후다닥 홍보
수레 유세는 선거운동의 ‘백미’
왕팬 된 마을주민들 “필순씨” 응원
13일엔 지지자들 초청 ‘락선파티’
5월17일, 선거캠프 개소식은 ‘마을일꾼 서약잔치’로 치렀다. “당락과 상관없이 마을일꾼으로 살아간다”고 서약했다. 그리고 후보도, 운동원들도, 주민들도 ‘즐거운 락선(樂選)운동’을 하자고 했다. 선거운동 중 ‘횡단보도 이동형 피켓’ 홍보는 압권이었다. 8명이 ‘행복하려면 녹색당/ 4번 녹색당 박필순’이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있다가 녹색 신호등이 켜지면 들어 올렸다. 나와 운동원들이 들고 다니던 ‘녹색의 바람개비’도 인기였다. 선거운동 최고의 대박은 ‘이동수레 라디오 방송국’이었다. 선거방송 차량을 포기하고 손으로 끌고 다니는 무동력 홍보 수레를 제작했다.
그리고 주민들과의 대화 내용을 확성기를 통해 라디오 방송 하듯이 알렸다. 선거운동원들에겐 한글로 써서 작품으로 만든 상의와 자외선을 피할 수 있는 ‘예쁜 녹색우산’을 제공했다.
동네 이웃들의 응원은 힘을 솟게 했다. 동네 한 가게 아주머니는 저의 ‘왕팬’이 되어, 자신이 파는 메추리알 옆에 일일이 제 명함을 꽂아 두셨다. “나는 맘에 든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해부러~.” 매일 10분씩 하나님 말씀으로 설교를 하시던 옷가게 사장님, “아따 사람 좋네” 하면서 수박 한 덩이를 주시던 과일가게 어르신, “필순씨, 마을을 부탁해~” 하며 공개적으로 지지했던 통신사 대리점 청년 종업원, 따뜻한 물과 어묵을 건네던 분식집 사장님….
나는 도로에서 바람개비를 들고 멈춰선 차량 문을 노크해 명함을 건넸다. 그리고 주민들을 만나 동네에 맞는 정책을 이야기하고 의견을 경청했다. ‘필순씨의 녹색선거운동’은 작은 기적을 이뤘다. 젊은 당원들과 열성적인 주민들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4일 투표를 마치고 저녁부터 당원, 친한 동네 분들과 선거캠프에 모여 개표방송을 봤다. 새벽 3시께 결과가 나왔다. 15.7%를 득표해 5명의 후보 가운데 3위를 차지했다. 역시 현실의 벽은 높았다. 짧은 선거운동 기간에 많은 주민들에게 ‘나’를 알리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기호 2번의 위력도 컸다. 하지만 희망을 보았다.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3086명의 지지자가 생겼고 녹색당을 알렸다. 공원에 가면 아이들이 지금도 “박필순!” 하며 외쳐준다. 많은 주민들도 “결과는 아쉽지만, 재미있는 선거운동 때문에 행복했다”고 격려해주셨다. 녹색의 씨앗을 뿌린 셈이다.
그리고 선거캠프는 끝나지 않았다. 다음주 금요일(13일) 저녁에 지지자들을 초청해 ‘락선 파티’를 열 계획이다. 선거운동 이야기와 함께 ‘라디오 방송’ 게스트들의 축하공연, 아이들이 제안한 팬사인회를 하기로 했다. 앞으로도 광주시 북구 일곡·삼각동의 마을일꾼으로, 녹색당원으로 신나게 살아갈 것이다. 떨어졌지만, 즐거운 선거를 치른 락선자(樂選者)로 기억되고 싶다.
박필순 녹색당 광주시당 준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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