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그 두 번째로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인터뷰는 10월 5일 오후 1시 30분 서초역 근처 어느 카페에서 정성희 새로하나 집행위원(소통과혁신연구소 소장)이 진행했다.
박근혜의 역주행, 야권 모두 혁신 단결하지 않은 탓
정성희 소장 : 지금 정치상황은 어떻습니까?
박석운 대표 :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국민들의 요구와 정서에 역행하는 보수 꼴통짓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광란의 역주행을 할 수 있는 결정적 조건은 크게 보아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정치판과 제도언론이 엉망으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정치판의 제일 큰 문제는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없느니만 못하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는 것입니다. 세월호 특별법 관련 세 차례의 야합이 현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지요. 그런데도 새정치민주연합의 이런 상황이 개선이 잘 안되고 있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입니다. 내부 사정을 들어보면, 국민의 이해를 대변해 야성 있게 대응하자는 의견을 가진 의원들도 있지만, 상당수 의원들이 '선거 때 되면 우리 안 찍고 어디 가겠느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는 진보정치세력의 지리멸렬 입니다. 진보정당 원 투 쓰리 포에다 정치단체 몇 개로 나뉘어져 갈등하고 분산된 상태에서 노동자 민중의 절박한 요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지요. 얼마 되지 않는 힘을 모두 결집해 선택과 집중을 해도 길이 열릴까 말까 한데, 제각각 각개 약진해 각개격파 당하는 상황입니다.
이와 같이, 야권이 모두 혁신, 단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국민들의 간절한 열망을 대변하고 박근혜정부의 반민생 반민주 반평화 반통일 역주행을 저지할 추동력이 생기지 않는 것이지요. 세월호 집회에서 터져 나오는 '박근혜 정부를 규탄한다, 새정연도 규탄한다'라는 구호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여야 모두 국민들로부터 규탄을 당하면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만 부담을 덜게 되지요. 보수여당과 자유주의 제1야당이 함께 국민들의 비판의 대상이 될 때 반사이익이라도 얻게 마련인 진보정치세력은 관심과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 미미한 존재로 전락했습니다. 한마디로 진보정당들이 게토화 되어 있는 양상입니다.
그 다음에 언론상황도 심각합니다. 기왕의 조중동의 왜곡편파보도에 그나마 언론환경의 균형을 잡아오던 공영방송이 완전히 망가지고 있어요. KBS는 길환영 사장의 퇴진 이후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서 차악 정도의 상태가 되었는데, MBC는 최악으로 거의 종편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여기에 종편들이 합세해 무책임하고 악의적인 왜곡편파 보도를 통해 국민여론을 조작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민주언론, 공정언론은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이 버텨주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입니다.
이명박 정권 5년, 박근혜 정권 2년의 악정이 극에 달해 있지만, 현재 국민들의 눈에는 대안이 만들어져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향후 대안이 만들어질 희망도 보이지 않아 더 큰 문제입니다.
정성희 소장 : 국정원 시국회의, 세월호 국민대책회의, 민영화 저지 대책위 등 당면 현안 대응을 위한 각종 대책위에서 활동하면서 동분서주하고 계신데, 새정치민주연합의 혼선, 진보정치세력의 분열이 대중운동, 국민운동에 미치는 악영향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어요?
정치가 ‘꼭지’ 못 따서 각종 국민운동 한계 봉착
박석운 대표 : 각종 대중운동은 근래 드물게 큰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운동의 성과를 마무리 짓는 것은, 비유하자면 '꼭지'를 따는 것은 정치권에서 하게 되는데, 바로 이 정치가 잘못되어 대중운동의 성과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정원 등 국가기관에 의한 관권부정선거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들의 거대한 운동이 일어났지요. 그러나 작년 12월초 제1야당이 사실상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 도입을 포기하는 여야합의를 함으로써 진상을 철저히 파헤치는 ‘꼭지’를 따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안전사회건설 문제도 짧은 기간에 530만 명이 서명할 정도로 대중적 열정과 감동의 투쟁이 전개되었지요. 그러나 정치가, 제1야당이 꼭지를 따지 못할 뿐만 아니라 판을 엎어버려 난관에 봉착해 있습니다.
철도 민영화 저지 투쟁도 지난해 말 다수 국민들의 지지 속에서 사상 유례 없는 철도파업을 전개했지요. 그런데 정치에서 꼭지를 못 따니까 박근혜 정부는 지금 또 다시 영국식 분할 민영화를 강행하고 있어요. 영국에서 이미 실패한 정책임이 확인되어 철도를 재공영화하고 있는데, 박근혜 정부는 철도민영화 정책을 그냥 강행하고 있습니다. 또 세월호 참사시국의 와중에 200만 명이나 서명해 국민들이 압도적으로 반대하는 의료민영화, 의료영리화도 그냥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6월에 안 하겠다고 발표한 사항을 8월에는 이를 뒤집고 그냥 강행 추진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렇게 비빌 언덕이 되어야 할 야권이 제대로 힘을 집중하지도 못하고 또 꼭지를 따지 못하니까 국민들이 지치고 또 대중운동을 더 이상 진전시키는데 일정한 한계에 봉착해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에요. 진보정당들의 경우 이런 중요한 사안에 대해 노력은 하고 있지만, 의미 있는 역할을 거의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작지만 강력하게, 즉 강소정당으로서, 서민의 입장을 대변하여야 할 진보정치세력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고, 노동자 민중에게 희망이 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입니다.
정성희 소장 : 이런 상황에서 성찰과 혁신과 통합을 위한 진보정당들의 고민과 노력은 어떠합니까?
박석운 대표 : 한마디로 기가 막히는 수준입니다. 6.4지방선거의 참패 이후 바로 당장이라도 성찰과 혁신에 매진할 줄 알았습니다. 그 길 밖에 없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성찰을 안 하고 있는 겁니다. 성찰을 안 하는데 무슨 혁신이 되겠어요? 성찰과 혁신을 하지 않은 채 7.30 재보선에 몰려가서 또 다시 비슷한 오류를 범하는 거예요.
실수와 패배를 반복하고 성찰 혁신하지 않는 진보정당들은 ‘곰바우’?
'곰바우'라는 옛말이 있지 않아요? 곰 사냥할 때 동굴 앞에 커다란 바위를 매달아 놓는데, 곰이 들어갈 때 툭 받히고 나면 나올 때는 피해가야 하는데 또 툭 받힌다는 거예요. 그렇게 계속 바위에 받혀서 사냥 당한다는 거지요. 성찰도 혁신도 하지 않고 ‘돌격 앞으로’ 하는 식으로 대처하고 있는 진보정당들이, 미안한 얘기이지만, '곰바우'와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더욱 안타깝게 생각되는 점은, 실수와 패배가 아니라 그러고도 성찰과 혁신을 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어느 당은 가공할 만한 탄압 속에서도 선전했다고 생각하거나, 또 어느 당은 지지율과 당원가입이 약간 늘고 있다고 자만하거나, 또 어느 당은 일부 완고한 기성관념에 발목 잡혀 있는 식으로는 현재의 엄혹한 정세와 민중의 요구에 전혀 부합할 수 없습니다. 현재의 진보정당들, 그렇게 참패하고도 크게 성찰도 혁신도 안하고 있는 점에서 경중을 가릴 수가 없습니다.
정성희 소장 : 진보정치세력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핵심 원인은 무엇입니까?
박석운 대표 : 국민들로 하여금 질리게 만들어버리는 것이 제일 큰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나 운동과 정치를 해나가는 데 있어 실수나 패배도 할 수 있지요. 일시적으로 실수나 패배를 하였더라도, 그 이후 국민적 질책을 받아들여 깊이 성찰, 혁신하고 다시 추슬러 나가면 또다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게 되고, 이런 과정을 통해 대중정당은 변화 발전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진보정당의 경우는 이런저런 이유로 분열과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이면서 실망과 좌절을 안기고, 그래서 선거에서 참패하고 지지율이 추락하는데도, 성찰과 혁신을 제대로 안하고 마냥 자기주장만 하면서 떼쓰는 방식으로 가니까 국민들이 질려버리는 겁니다.
더구나 일반국민들은 차치하더라도 진보정치에 애정과 기대를 갖고 있는 진보개혁적 국민들, 보수꼴통 일변도의 사회를 넘어서서 서민들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로의 변화를 갈망하는 괜찮은 보통사람들조차 질려버리게 만들어요. 그래서 '쟤들 안 돼, 진보정치 안 돼'라는 혐오증을 유발하는 상황이 되면서, 마치 진보정치를 위한 마지막 몇 톨의 씨앗조차 깨먹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또 국민들은 여러 개의 진보정당들에 대해 어느 게 어느 것인지 헷갈리기도 해요. 이런 상황에서 진보정당이 기성 정치권에 대한 대안으로 고려되기는커녕, 아예 관심의 대상에서도 멀어지고 있어요. 남은 것은 진보정당의 게토화 현상뿐이지요. 구체적으로 진보정치의 리더십, 정책, 이미지, 조직, 문화, 활동방식 등의 문제점을 일일이 분석하고 극복하기 이전에, 정치의 기본과 상식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진보정치 추락, 보통사람들 질리게 하고 실감나는 성과 내지 못한 때문
또 한 가지는 그동안 진보정치가 서민들에게 실감나게 어필하는 그 무엇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서민들이 서민의 정당이라는 진보정당들을 지지하지 않고, 도리어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극히 일부 사람들만 진보정당들을 지지하는 꼴이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서민대중들에게 '이렇게 팍팍한 내 삶. 내 생활을 바꿀 수 있는 실감나는 그 무엇’이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보정치를 지지하거나 참여하면 내 삶이 이렇게 바뀌겠구나'라는 실감나는 것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진보교육감이 13명까지 확대된 계기가 무엇 입니까?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의 무상급식 실현이 아닙니까? “무상급식이 되는구나”, “아이들 도시락 걱정 안 해도 되겠구나”, “내 생활이 달라지는구나” 라고 서민대중들로 하여금 실감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2010년 6명, 2014년 13명의 진보교육감을 배출한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실감나는 삶의 변화를 가시화하는 것이 진보정치의 발전전략으로 결정적으로 중요한데, 지난 시기 진보정당에서 기초단체장 몇 군데 당선되었지만 이런 모범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울산 북구, 동구와 인천의 남동구, 동구에서 나름대로 성과를 내기도 하였지만, 서민들의 삶을 바꾸는 실감나는 진보정치다운 개혁으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거예요. 대략 클린(clean) 정치, 자유주의개혁정치의 수준을 뛰어넘지 못한 겁니다. 물론 쉽지 않지요. 여러 악조건이 중첩되어 있지요. 그러나 의미 있는 사고를 쳐서라도 주어진 여건을 돌파하는 시도를 하면서 서민들의 혼을 불러일으키고 마음을 격동하게 하는 정치를 했어야지요. 그렇지 못하고 자유주의개혁정치 비슷한 감성의 정치공학적 접근에 머물렀어요.
여기에 여러 가지 사고가 발생하고 거듭되는 실수를 하고서도 그 수습과정에서 도덕성까지 깨지게 되는 최악의 상황이 되면서, 또 그러고도 성찰과 혁신을 하지 않으면서 분열 갈등하면서 각개 약진하니까 서민대중의 지지를 못 받는 거지요.
진보정치가 분열도 극복해야 하지만, 실감나는 삶의 변화를 비록 샘플차원에서라도 실현 가능한 방식으로 가시화시키는 것이 가장 핵심입니다. 다시 말해 새로운 진보통합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삶의 변화를 이끄는 작은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요체입니다.
정책을 잘 세우는 것만으로는 진보정치가 전진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아름답고 좋은 정책은 많아요. 진보정당의 좋은 정책을 민주당, 심지어 새누리당까지 가져다 쓰고 있잖아요. 지금은 다 파기했지만 복지니 경제민주화니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얼마나 그럴듯한 공약을 많이 내걸었습니까? 공약만으로는 국민 신뢰의 변별성이 잘 안 생기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진보정치가 그토록 헌신하고도 욕먹는 이유는 패권주의와 분파주의로 점철된 조직문화 때문이지만, 또 한편으로 서민들이 진보정치에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진보정당들이 서민들의 삶을 바꾸는 작은 모범을 창출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성희 소장 : 패권주의는 불가피한 것입니까? 단순히 다수와 소수의 당내 민주주의 문제가 아니라, 위상을 달리하는 정파조직이 진보적 대중정당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합니까?
패권주의와 분파주의 극복, 집단지도체제, 대중정치노선, 균형세력 강화 등으로
박석운 대표 : 패권주의와 분파주의의 극복을 도덕론적으로 당위적으로만 접근해서는 잘 해결이 안될 것 같아요. 당내에 승자독식구조를 탈피하는 집단지도체제 방식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도부에 소수의견을 가진 분들도 함께 논의에 참여하고 이견을 통합 조정해 나갈 수 있어야 됨은 물론이고, 집행라인에서도 집단지도체제의 정신이 반영되어 승자독식구조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집단지도체제로 지도력과 집행력을 함께 공유해야 패권주의를 완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집단지도체제가 정착되면 그간 어렵사리 형성된 정치적 지도력이나 집행 관련 경험의 유실현상을 완화시킬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또한 대중정치노선을 전면화하고 철저히 구현해야 합니다. 진보정당의 이해관계보다 정파의 이해관계를 더 우선시하는 식의 조직노선이나 정치노선은 극복되어야 합니다. 소속된 정파의 지침이나 가까운 그룹의 정치적 입장에 매이지 않고,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하는 시시비비하는 노선이 전면적으로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과도기적으로 정파등록제, 정파명부제 등의 제도적 장치도 나름대로 필요하다고 봅니다. 있는 정파를 눈 감고 덮어둔다고 그 악폐가 시정되지 않기에 그 통합 조정을 위한 연합정당론 등 다양한 방안이 모색될 수 있지요. 그러나 출발은 그렇게 하더라도, 대중정치노선에 의해 화학적 통합을 지향하는 방향성을 분명히 가질 때만 그 것이 유효하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또 콩가루 집안이 될 것입니다. 또한 당내에 정파 색이 약한 중간층, 균형세력이 강화되어야 양극단의 정파세력에 의해 당이 휘둘리지 않겠지요. 균형세력이 시시비비를 해야 합니다. 사안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통합 조정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집단지도체제 운영, 대중정치노선 확립, 과도기적 연합정당론 활용, 성찰적 기풍, 중간층의 균형이 어우러져 패권주의와 분파주의를 극복하고 통일단결의 기운을 높일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문제를 일으킨 정파조직이 대중정치노선을 제대로 확립하는 것이 그 무엇 보다 중요하겠지요.
정성희 소장 : 냉전수구세력의 ‘종북’ 악선전은 상투적인 수법입니다만, ‘종북’ 이미지에 대해 좀 더 엄밀하게 진단해주시지요.
‘종북’ 이미지 극복은 모두의 성찰혁신 과제, 부메랑 부르는 공개논쟁은 금물
박석운 대표 : '종북'이란 말이 운동권 내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매우 심각한 역사적 과오라고 생각합니다. 조중동에 의해 확대재생산되고 국정원 공작을 통해 증폭되고 부메랑이 되어 다시 돌아왔지요. 그런데 과거 군사독재정권이 민주화운동 세력들을 모조리 좌경용공으로 몰았기 때문에 오히려 역설적으로 이런 프레임을 극복할 수 있었던 측면이 있었어요. 지금이 그렇습니다. 일부 진보세력만이 아니라 박원순도 종북, 노무현도 종북이라는 식으로 야권 전체, 야권 인사 모두를 종복으로 몰아가고 있기에 역설적이게도 종북프레임을 극복할 수 있는 위기 극복의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진보정치 진보운동 내부에서 과거와 비슷하게 스스로 종북 논쟁을 일삼고 서로 총질하게 되면 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뼈를 깎는 수준으로 성찰하고 혁신하고 단결하면서 대중정치노선을 구현하다 보면, 종북프레임 문제가 극복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편 저들이 진보운동과 진보정치의 취약지점을 파고 들어와 증폭시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 취약 지점에 대한 성찰과 혁신을 통해 내부적으로 해결해가는 방식이 현명할 것입니다. 종복소동을 일으켜 부메랑을 야기한 쪽이나 종북 이미지의 빌미를 준 쪽이나 모두 성찰해야지요. 지난 과정의 성찰과 그에 따른 혁신이 중요하지, 또 이 문제를 공개적 논쟁을 통해 과민하게 다루는 것은 별로 효과적이지 않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정성희 소장 :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란 측면에서 지난 10여 년 진보정당과 노·농·빈 등 대중조직의 관계에 대해 진단해주고 향후 올바른 관계 설정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박석운 대표 : 대중조직의 정치역량들이 정파에 휘둘린 것이 가장 아프지요. 기층의 조직대중들은 휘둘리지 않는데, 일부 임원 및 간부들이나 활동가들이 휘둘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서 헌신하는 분들도 많은데, 큰 흐름을 형성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대중조직이 대중투쟁을 하면서 진보정치에서 그 꼭지를 따주기를 기대했는데, 그러기는커녕 진보정치의 분열과 갈등이 도리어 대중투쟁, 대중조직을 더 어렵게 만들고 짐을 지우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지요. 진보정치의 분열이 대중조직의 갈등을 촉진시키는 양상입니다.
노동조합, 농민회 등 대중조직, 또 다른 ‘문고리’ 정파에 휘둘리지 말아야
그리고 대중조직 자체도 정파에 휘둘리는 현상을 능동적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있어요. 기층 대중조직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효과적인 진보정치가 될 수 있도록 진보정당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어야지요. 그런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진보정당에 당원으로 많이 가입해야 하고, 당의 기본 활동단위는 지역이므로 노동자 당원들이 지역으로 재편되어야 합니다. 그간 노동조합, 사업장의 울타리에 갇혀 지역사회의 진보적 재편에 소홀했습니다.
사업장의 노동조합원들이 지역의 진보정당 당원으로서 이중멤버십을 갖고 열심히 활동하고 영향력을 키워야 합니다. 노동조합 자체가 정치활동의 책임까지 떠안고 사업장 안에서만 머물러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힘 있게 추진하기 어렵습니다. 수많은 조합원들이 진보정당에 입당하고 지역으로 재편되고 미조직 서민들과 함께 지역사회의 진보판을 만들어 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정치교육을 강화하고 정치간부를 양성하고 배치하는 사업이 무엇 보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정파가 대중조직의 당원들을 대상화하고 또 다른 ‘문고리’ 권력을 행사하는 식이었지요.
노동자들, 지역 민주화 진보화 프로그램 적극 참여해야
동시에 민주노조운동에 전투적 경제주의 경향으로 노동자에 대한 정치교육을 소홀히 한 측면도 있었어요. 지역 차원의 민주화, 진보화 프로그램과 노동자의 참여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 부족했습니다. 높은 곳이나 거대 담론만 쫓고 풀뿌리의 진보적 조직화에는 무능했던 것입니다. 가령 지역의 생협 등 협동조합, 마을공동체를 노조원과 비노조원, 그리고 서민들이 함께 만들어 나가야지요.
이렇게 토대를 튼튼히 구축해야지, 바람몰이 식으로 진보정치를 해서는 한계가 있고 비과학적이지요. 우리나라 보수야당이 바람몰이 방식으로 어떨 때는 뭔가 이루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잘 안 되기도 하였지요? 진보정치가 은연중에 이런 방식을 흉내 내는 것은 아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지요. 간판만 다르지 접근하는 방식과 공학은 보수야당과 비슷한 버전으로 하면 진보정치가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정성희 소장 : 진보정치가 어렵고 전망도 안 보이니까 여러 편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봐야 합니까? 새로운 진보통합, 진보의 재구성이 필요한지, 가능한지에 대해 말씀해주시지요.
박석운 대표 : '새정치민주연합의 좌측으로 들어가자'는 생각은 사실상 진보정치를 포기하고 투항하자는 주장이나 다름없을 것입니다. 위기의 새정연 내에서 진보정치의 구현이 제대로 되겠어요? 그동안 수많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제1야당에 수혈되어 들어갔지만, 또 그 정당이 정권교체를 하고 집권까지 하였지만, 그 정당이 기득권층과 제휴 또는 야합하는데 그쳤을 뿐이고, 서민의 삶을 바꾸는 수준의 의미 있는 개혁에는 사실상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한편 '현재의 진보정당들이 2016년 총선까지 각개약진하고 장기적으로 통합하자'는 견해는, 뼈아픈 지난 과정에서 전혀 교훈을 찾지 않는 수구적 태도입니다. 2012년 사태를 성찰하고 혁신하여 2014년 지방선거에 임해야 했으나 그러지 못해 참패했고, 또 지방선거 이후에라도 이런 상황을 성찰하고 혁신해야 했으나 7.30 재보선에서 똑같은 오류를 되풀이 했는데, 또 이대로 2016년 총선까지 가보자는 것은 진보정치의 자멸행위이자 역사적 범죄에 해당될 것입니다.
진보정당들의 야권통합 참여는 투항, 각개약진은 자멸
'진보정치 안되니까 각종 대중조직 강화에만 매진하자’는 발상도 있는데, 이미 말씀 드렸듯이, 대중조직 강화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는 또 다른 조합주의, 개량주의예요. 대중조직과 진보정당, 대중운동과 진보정치가 투트랙으로 가야지요. 대중조직이 강화되어야 하고 진보적 대중정당도 발전해야 합니다. 꼭지는 정치에서 따는 것이니까요. 대중조직, 대중운동이 숨 쉴 수 있는 정치공간이 마련될 때, 대중운동이 활성화되고 또 대중조직 강화가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야만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실현하고 노동자 민중이 사회와 역사의 주인이 되는 길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것은 오랜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진보정치의 혁신과 통합 이외에 다른 길은 없다고 봅니다.
정성희 소장 : 상호불신을 해소하고 새로운 국민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진보정치통합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시 실패하지 않는 진보통합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박석운 대표 : 진보정당들을 단순 통합해서는 길이 안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피로도가 극에 달해 짜증을 내는 수준에 와 있거든요. 지금 현장대중들은 진보통합하자고 하면 짜증냅니다. 야권연대하자고 하면 더 더욱 짜증을 냅니다. 냉소주의, 패배주의에 젖어 있습니다. 또 그간 진보정당의 여러 정파들이 자신들끼리 주도권 다툼을 하면서 기층대중들의 정치적 진출을 확대시키지 못하고 도리어 소외시키고 배반했지요. 그래서 요즘 대중조직들은 좋아서가 아니라 자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정치연합을 찾아갑니다. 철도, 보건의료, 공공 등 유수한 대중조직들이 다 그렇습니다. 공공부문 민영화 정책 등 박근혜 정권의 각종 역주행을 저지하려 해도 국회에서 잡아줘야 하니까요. 꼭지를 정치에서 따줘야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죠. 뼈아프지만 엄연한 현실상황입니다.
성찰과 혁신을 통한 진보정치 재구성 강력히 추진해야
또한 통합해봐야 그 나물에 그 밥이고, 위기에 몰리니까 저러지 배가 불러지면 또 쪼개먹을 것이라는 차가운 시선이 팽배합니다. 지금은 비록 그런 상황일지라도 감동과 기대를 창출할 수 있는 진보정치의 재구성을 강력히 추진해야 합니다.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제2의 민중 정치세력화의 관점에서 진보정치를 재구성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층 대중조직들이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초기부터 기층 대중조직들이 중심이 되고, 미조직 서민대중을 결합시키면서 기존 진보정당들을 '성찰 조건부'로 참여시켜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성찰과 혁신을 통한 진보대통합의 길로 가야 합니다. 기존 진보정당들끼리의 정치공학적 통합으로는 노동자 민중의 감동과 기대를 불러일으키지도 못하고 새로운 진보정치를 구현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정성희 소장 : 그래서 위로부터 통합논의 테이블을 구성하는 접근으로는 감동도 없고 성사도 어려우니까 아래로부터 상처가 적은 지역부터 진보정치 혁신-실천 연대를 통해 신뢰도 회복하고 새로운 기대도 불러일으키자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박석운 대표 : 역시 투트랙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능한 시 군 구부터 진보정치의 혁신-실천 연대를 시작하고 이를 전국 각 지역으로 확산시켜야 합니다. 중앙보다 지역의 연대연합이 아무래도 덜 복잡하지요. 동시에 중앙차원에서도 상호간의 신뢰구축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뢰구축에 기반하여 가능하다면 상호간의 논의 테이블도 구성하여 아래로부터의 성찰과 혁신, 재편과 통합의 요구, 진보정치 재구성의 바람에 신속히 응답할 채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지역 진보정치 혁신연대와 직선제 선거시기 공론화로부터
특히 이번 민주노총의 직선제 임원선거에서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통한 진보정치의 재구성과제가 각 후보들의 핵심공약의 하나가 되어 공론화나 쟁점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중물이 되고 분위기를 쇄신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직선이기에 정파 담합을 극복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이 과정에서 노동정치, 진보정치에 대한 냉소와 불신, 패배의식도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이 만들어 져야 한다고 희망합니다.
정성희 소장 : 가능한 지역과 부문부터 진보정치의 연대연합, 새로운 통합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서라도 통합적 지도력을 찾고 세우는 노력이 중요할 텐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박석운 대표 : 진보정치의 통합적 지도력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고 올바른 가치와 노선과 역량과 헌신이 어우러져야 합니다. 아래 위, 양 옆에서 같이 노력해야지요. 기층 대중조직, 현안 대책기구, 혁신하는 진보정당들의 통합적 마인드를 갖춘 분들이 다양한 경로의 공동 논의가 있어야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점차 분위기는 익어가고 있습니다. 더 늦어지면 안 되겠지요. 특정 인사들을 거론하기 보다는 큰 흐름을 형성하고 정성을 모아 다시는 균열이 나지 않는 통합적 지도력을 구축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성희 소장 : 마지막으로 진보운동 진보정치를 아끼는 분들에게 하실 말씀을 해주시지요.
박석운 대표 : 노동자 민중의 새로운 정치세력화, 노동진보정치의 재구성 또는 재편통합이 안되면, 결과적으로 2017년 정권 교체도 어려울 것입니다. 이 지긋지긋한 신자유주의 독재체제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숨이 막힙니다. 여전히 진보정치의 혁신과 진보정치의 재구성은 ‘기본과제’입니다. 이 기본과제를 이행하지 않고 ‘현시기 주요과제’인 민주개혁세력과 진보세력간의 연대, 선거연합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진보정치 재구성과 대중운동 활성화로 정권교체 실현하자
저들의 광란의 질주를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다수 세력의 집권전략과 소수 세력의 교두보전략에 기반한 야권연대, 선거연합 전략이 여전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성찰 혁신하고 제2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통한 새로운 진보통합, 즉 진보정치의 재구성을 전제하지 않는 야권연대는 사상누각이 될 것입니다. 또 다른 오류의 확대재생산이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정권교체에도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새누리당의 정권 재창출이 훨씬 용이해 지게 될 겁니다. 정권교체는 노동자 민중 운동의 숨 쉴 공간이자 진보정치 발전의 교두보이기에 관건적으로 중요합니다.
따라서 진보정치도 제각기 빵 부스러기에 집착할 게 아니라, 뭉쳐서 진보정치의 복권과 약진을 위한 큰 판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이 지겹지 않습니까? 지금은 박근혜 정권의 무한질주로 답답하고 고통스런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새로운 진보정치의 재구성이 성사되고 또 대중운동이 활성화된다면, 임기 중반을 넘어서는 박근혜 정권이 거꾸로 몰리고 균열되는 상황이 도래할 것입니다. 힘들지만 완강하게 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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