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래치는 펭귄

아홉 살은 쉬운 ‘멍 때리기’ 우리에겐 왜 어려울까요?

대지의 마음 2014. 10. 29. 08:37

아홉 살은 쉬운 ‘멍 때리기’ 우리에겐 왜 어려울까요?

                                                                                                  국민일보 최지윤 기자

 

 

[친절한 쿡기자] ‘멍 때리기 대회’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우승자가 초등학생이라는 말에 한 번 더 놀랐죠. 28일 인터넷은 온통 멍 때리기 대회 이야기로 떠들썩합니다. 네티즌들은 SNS를 통해 현장사진을 공유하고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멍 때리는 걸로 순위를 매기냐”고 비난한 사람들도 취지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27일 낮 12시 서울시청 앞 잔디밭에 50여명이 모였습니다. 군복을 입은 남자, 요리사 복장을 한 중년 아저씨,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보입니다.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얼굴로 분장한 여성과 빨간 모자를 쓴 귀여운 초등학생도 있습니다. 다들 멍한 표정으로 앉거나 누워 있습니다.

올해 처음 열린 ‘멍 때리기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는 사람에게 “멍 때리냐”라고 말하죠. 이 단어에서 착안해서 기획한 겁니다. 참가자들은 3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누가 더 멍을 잘 때리는지’ 겨뤘습니다.

대회는 빠른 속도와 경쟁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보자는 뜻에서 시작됐습니다. 심사기준은 간단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장 정적인 상태로 있으면 됩니다. 심박측정기에서 심박수가 가장 안정적으로 나온 사람이 우승하는 겁니다.

물론 크게 움직이거나 딴 짓을 하면 실격입니다. 지나가던 시민들도 참가자들의 표정을 보고 ‘멍을 잘 때린’ 사람에게 스티커를 붙였죠.

놀랍게도 우승은 초등학생 김모(9)양에게 돌아갔습니다. 프랑스 출신 조각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모양을 본 딴 트로피가 수여됐죠. 포털사이트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김양이 멍 때리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단연 화제였습니다. 네티즌들은 “초등학생의 얼굴에서 왠지 모를 씁쓸함마저 엿보인다”며 즐거워했습니다.

네티즌들은 또 이 대회를 국회의원들의 모습에 비교했습니다. 국회 본회의장이나 상임위 회의실에서 ‘멍 때리는’ 국회의원들이 집중 포화 대상입니다. 이밖에도 반응은 다양합니다. “대회가 지속적으로 시행돼 사람들이 여유를 갖고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다시금 깨달았으면” “멍 때리기 대회 1등 해서 자기소개서 공모전 수상경력에 쓰면 어떨까” “대회 참여한 사람들 보니까 나도 모르게 힘이 쭉 빠진다” “초등학생이 우승자라는 사실이 뭔가 슬프다” 등의 댓글도 쏟아졌습니다.

바쁜 생활 속에서 여유를 갖기란 쉽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살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대회에 참가하지 않더라도 잠깐만이라도 ‘멍 때리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