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래치는 펭귄

말의 공격성, 그건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겠다!

대지의 마음 2014. 10. 13. 08:19


말의 공격성


_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했고 지금은 평화운동을 하고 있는 대학 동기를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그는 우리 사회 진보파의 언어가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때로는 폭력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는 말을 했다. 그러다보니 진보적 매체나 논의의 장에 더 이상 참여하거나 관심을 갖지 않게 되더란다. 


미국 진보파들 사이에서 정신적 지주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사울 알린스키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1930년대 시카고에서 빈민운동을 주도했고 나이가 들어서는 진보적 활동가들을 교육하는 일에 전념했다. 그가 교육했던 주제 가운데 하나는, 말의 공격성 혹은 상대에게 모욕을 주는 것으로 자신의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태도에 대한 것이었다. 누군가를 향해 ‘돼지’나 ‘파시스트’라고 인격적으로 비난하는 활동 방식은,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운동권이 원래 그렇지”라는 식으로 정형화된 이미지를 갖게 해 사회운동의 고립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려면 일반 대중의 경험세계 속에서 자신의 말이 어떻게 공명될 것인지를 중시해야 하고, 또 “상대의 가치관을 온전히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진보의 언어적 실천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진보파의 언어 때론 폭력적

최근 인터넷 글쓰기의 영향이 커지면서 진보파들의 언어습관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보여 주목되고 있다. 집권세력과 그 수장을 ‘MB’ 내지 ‘2MB’로 표현하고 거기에 ‘명박이’ ‘쥐박이’ ‘생쥐’ ‘바퀴벌레’ 등의 모욕적 이미지를 결합시키려는 노력이, 진보파들의 말과 글에서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통치의 가혹함에 대한 강렬한 항의의 소산이겠지만, 결과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것 같다. 한번은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을 진작시키기 위한 콘서트에 갔는데, 시작에 앞서 사회자가 그 취지를 설명했고 해직교사 한 분을 무대로 초청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해직교사가 자신의 사례를 설명하면서 현 정부를 “이명박 정부”라고 지칭하자 사회자는 “MB 정부를 좋아하시나 보네요”라고 물었다. 이명박 정부와 MB 정부 사이의 언어 선택이 갖는 정치적 의미가 사회자에게는 예민하게 포착되었던 듯하다.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객석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조용했는데, 사회자가 농담이라고 말한 다음에도 여전히 조용했다. 진보파들과 그렇지 않은 일반 시민 사이에 언어습관의 괴리가 커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말이 갖는 공격성 내지 폭력성은 주로 보수적 정향이 강한 사람들의 특징이었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 폭도나 빨갱이, 친북좌파라고 공격하는 일이 허다했다. “말 많으면 빨갱이”라는 비이성적 논리가 강요되기도 했고, 빨갱이들은 개조가 안 되고 대화로 풀어보려 했다가는 자칫 말려들기나 한다며 “때려잡자”거나 “북한에 보내자”는 무서운 주장도 많았다. 그런데 그런 억압적인 현실을 개선하고자 하는 진보파들 사이에서도 말이 자꾸만 나빠지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마음 불편한 일이다. 

인간적 따뜻함 뒷받침될때 힘



흑인이라는 정체성 속의 이중적 억압성을 날카롭게 문제 삼는 작품들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은 토니 모리슨은, “문학은 정치적인 동시에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치적인 주제를 진지하게 다룬다면, 분명 이 말과 글은 파당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성체제에 대한 근본적 비판자로서 진보파가 갖는 사회적 가치 또한 파당적이 됨을 기꺼이 감수하는 자세에서 기인하는 바 크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 파당성은 공정한 태도와 인간적인 따뜻함 그리고 말의 부드러움에 의해 뒷받침될 때,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진보적인 것의 가치도 소중하지만 그보다 인간적인 것의 가치가 더 넓고 풍부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경향, 2010년]




무엇이 진보의 언어일까?


요즘 말 잘못해서 크게 고생한 사람은 단연 현오석 경제부총리이다. 그는 1억건이 넘는 금융정보 유출 사건이 터졌지만 “어리석은 사람이 무슨 일이 터지면 책임을 따진다”며 감독 실패를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종주먹을 들어 보였다. 해임은 가까스로 면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에게서 27일 사실상 ‘마지막 경고’를 받았다.

다른 한명은 임순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보도교양방송특위 위원이다. 야당 몫으로 활동 중인 임 위원은 18일께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한 듯한 내용의 사진을 퍼나르기(리트위트)해 위원직에서 해촉되는 등 큰 곤욕을 치렀다.

임 위원이 퍼나르기한 트위트는 ‘경축! 비행기 추락 바뀐애 즉사’라고 적힌 손팻말을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은 집회 현장에서 시민이 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해외 순방 중인 박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추락하기를 원하는 내용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두 사람 다 공직자로서 빈약한 영혼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중에서도 임순혜 위원의 발언(사회관계망에 글을 쓰거나 퍼나르는 것도 발언이다)은 평소 진보나 개혁파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말을 하는 방법과 관련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정치학자 박상훈은 <정치의 발견>(후마니타스)에서 요즘 진보파의 말과 글이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공격적으로 변했다며 이렇게 말하는 게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박상훈은 미국 진보파의 정신적 지주인 사울 알린스키가 왜 말년에 진보적 활동가들이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를 교육하는 데 온 힘을 집중했는지 생각해 보자고 제안한다. 1930년대 시카고에서 빈민운동을 주도한 알린스키는 젊은 시절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 적지 않은 정신적 감화를 준 인물이다.

알린스키는 상대에게 모욕을 주는 것으로 자신의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진보를 경멸했다. 누군가를 향해 ‘돼지’나 ‘파시스트’라고 인격적으로 비난하는 활동방식은 속은 시원하겠지만 듣는 사람에게 ‘운동권이 원래 그렇지’ 하는 식으로 정형화된 이미지를 갖게 만든다. 이렇게 되면 개혁이든 진보든 소수의 동아리 활동으로 고립되게 된다. 알린스키는 진보적 활동가라면 일반 대중이 자신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늘 성찰해야 하며 “상대의 가치관을 온전히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진보의 언어들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 사회의 진보는 늘 보수파의 언어폭력에 시달려 왔다. ‘종북’이나 ‘빨갱이’니 하는 말들이 소통의 셔터를 팍 내려버리는 폭력적 언어들이다. 그렇다고 비슷한 폭력으로 그런 몰지각함에 대응할 필요는 없다. 기울어진 언론 지형 등 단순히 계산해 봐도 어림없는 싸움판에 끌려들어가는 것이다.

날카로운 풍자라면 언제나 환영이다. 그것도 아니면서 ‘쌍욕’을 진보의 언어라며 늘어놓지는 말아야 한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한겨레, 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