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듣는 노래 이야기]
정인화
노래 '춤'은 같은 제목의 김남주 시인의 시를 노래로 만든 것입니다.
1985년 10월도 다 저물어갈 무렵, 나는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총학생회 일을 마친 후 지리산 자락에 은거하고 있던 나는 목욕을 하러 읍내에 나왔다가 신문을 사 펼쳐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회면 한 귀퉁이에 있는 친구의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점거 시위로 구속된 친구의 이름이었습니다.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그 길로 나는 학교로 달려왔고 그 얼마 전에 사랑하던 후배가 구속됐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상념에 젖어 하염없이 교정을 거닐다가 학교 앞 책방에 복사된 시집(당시에는 이런 게 다 금지된 출판물이었답니다)을 한 권 사 들었습니다. 잘 아는 책방 주인이 나에게 준 것이었지요. 김남주의 시집이었습니다.
자취집으로 돌아온 나는 기타를 집어들었습니다.
친구와 후배의 얘기를 엮어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20년이 지난 아직도 이 노래의 제목은 없습니다. 이 노래를 많은 후배,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 친구의 출소 환영연이었지요 - 울면서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발표를 한 적은 없습니다. 이튿날 시집을 받았던 그 책방에서 주인에게 한 번 들어보겠냐고 해서 불렀던 게 처음이었습니다. 주인은 좋은 노래라고 하였습니다.
언제인지 기억이 불분명합니다. 아마 86년이나 쯤 아니겠나 싶습니다만, 부산에서 '노래야 나오너라(노나라)'란 노래 운동패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부산 공연이 있었습니다. 그 공연에서 '노나라'가 "부산 대학교를 나오신 선배께서 만드신 부산에서 처음으로 나온 노래를 자신있게 소개한다"는 멘트를 하면서 불렀던 게 대중 앞에 처음이 아니었던가 싶은데, 지금의 제 아내가 당시 공연을 녹음해둬서 물어봤습니다만 너무 오래 전 일이라서 정확한 시기를 잘 기억 못하겠네요.
다만 '춤의 작곡 시기는 정확하게 압니다. '1985년 10월 25일' 당시 습작 노트에 그렇게 기록돼 있네요.
참 나의 그 친구는 나중에 학교 앞에 '춤'이란 주점을 차렸습니다. 지금도 그 '춤'은 장소를 옮겨 여전히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지금 저와 가장 가까운 곳에 함께 있구요. 노래 '춤'을 많이 사랑해 주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뒤늦게 감사드립니다.
[블로그 - 가장 거대한 아스피린에서 옮겨 옴]
춤
흑산도라 검은 섬, 암벽에 부숴지는 하얀파도 없다면
남해 바다 너, 무엇에 쓰랴.
전라도라 남도길, 천군만마 휘달리는 말발굽 소리 없다면
황산벌 너, 무엇에 쓰랴, 무엇에 쓰랴!
천으로 만으로 터진 아우성 소리 없다면
이 거리 이 젊음 무엇에 쓰랴!
살아라 형제여 한번 살아 봐라, 한번 죽어 골백번 영원으로 살아라.
창대빛 죽창에 미쳐 광화문 네거리 후두둑, 떨어지는
녹두꽃 햇살에 미쳐 사월의 자유에 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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