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역사책.
네덜란드 출신의 헤이르트 마크는 그가 가진 기자라는 최고의 장점을 활용해
유럽 곳곳을 누비며 과거와 현재를 섞어 실감난 역사이야기를 만들어냈다.
2.
이 책의 특이한 기획이 진가를 발휘하는 부분은 <1차 세계대전>을 다룬 부분이다.
다른 역사책들과 마찬가지로 '영웅'과 '사건' 중심의 서술이라면 전쟁의 참상을 피부에 와닿게 담아낼 수는 없다.
수 많은 시민들의 일기와 신문기사들을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이 결합되니
비로소 병사 한 사람, 여성 한 사람, 아이 한 사람의 눈으로 걱정스럽게 전쟁을 볼 수 있었다.
3.
특히, 작가의 유럽 순회 방식의 글쓰기가 빛을 발하는 장면은 전쟁의 와중에 혁명의 물결이 휩쓴 러시아 소식을 듣고
레닌과 망명자들의 귀환 과정을 담은 <봉인 열차> 이야기다.
스위스에서 출발, 독일을 봉인열차로 통과해 -지금도 비슷한 방식의 열차 운행 방식인- 배로 옮겨서 스톡홀름까지 이동한 후
핀란드를 통해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의 여정.
똑같은 행로를 추적하며 마치 주변에서 벌어진 일처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고 있다.
레닌과 망명자 내부의 복잡한 기운, 스웨덴 사민주의자들과의 서먹한 만남, 교전국 내부의 혁명을 의도한 독일의 협조 등 숨겨진 이야기들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4.
발트 3국의 비운의 역사 앞에서는 말을 잃게 된다.
냉정한 국제질서의 결과물이라고 이해하기엔 수긍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중앙유럽제국이 남긴 마지막 유적지인 이 곳은 수많은 유럽 문화가 합쳐지는 지역에 위치해 식민의 역사를 반복한다.
러시아제국에서 독일로 그리고 볼셰비키의 영향 아래로 잠시 동안 독립되었다 폴란드 보호 아래로 옮겨지곤 소비에트연방으로...ㅜㅜ.
팔레스타인의 역사가 떠오른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나라 이름도 생소하게 느끼는 것이다.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소비에트연방에 대항한 레지스탕스 부대 '숲의 친구' 이 게릴라 대원의 기대 수명 2~3년. 대부분 21세 미만.
그렇게 시작된 죽음의 반복은 그것을 헤아리는 숫자 개념마저 무감하게 만들어준다.
끔찍한 역사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하는 짓거리가 정녕 이래도 되는건가?"
5.
유럽을 극도의 공포와 죽음으로 몰고간 독일 나치즘은 어떻게 생겨났나?
모든 사건은 그것의 예정된 결과로 향하는 원인이 존재한다.
지금이야 광기어린 정치적 선택을 과연 누가 했을까 하는 측면에선 모두가 공감하는 합리적 판단이 공유되지만..
사실, 무시무시한 독일나치즘은 소수 반란에 의한 결과물이 아니라 '다수 대중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다.
1차대전 이후 2차대전까지의 戰間期,
경제적 궁핍과 사회적 혼란의 시기 사회주의자들을 비롯한 제 정치세력의 무능함이 대중들에게 극단적 선택을 강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의 수정주의(나치즘 또한 정통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선 '수정') 논쟁의 결과가 유럽 대부분에 확고하게 자리한 사회민주주의 정부(세력)이다.
정통에 교조하고 현실의 흐름을 배척한 정치는 이토록 엄청난 역사적 책임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 우리는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암울한 현실 앞에서 무엇을 벗어던지지 못했고, 무엇을 원칙이란 이름으로 고집피우고 있는지 고민해 볼 일이다. 끔찍한 나치의 전개과정을 산책하면서 말이다.
6.
위협적인 나치당의 등장에도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은 연합하려 들지 않았다.
그들 사이의 해묵은 원한만 존재할 뿐.
독일공산당 지도자는 사회민주당을 '온건 파시주의자'라고 불렀고 나치당과 손을 잡기도 했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도 어째 비슷한 모양새다. ㅜㅠ.
7.
얼마전 다녀온 노르웨이와 관련된 이야기 한 대목.(노르웨이에서도 많이 들었던 사실이라 궁금했었는데..)
1940년 4월 9일. 히틀러가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침공했다. 이 사실을 접한 영국은 깜짝 놀랐다.
겨울 내내 독일과 비슷한 공격 계획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립국 노르웨이는 독일 군수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겨울에는 스웨덴에서 생산되는 주요 광물의 선적이 모두 노르웨이 항구에서 이루어졌다.
처칠은 1939년 9월 해군 원수가 되자마자 노르웨이 항구를 기습 점령하고 기뢰를 이용해 독일의 수송 경로를 차단하자고 제안했다.
영국 또한 1940년 4월초에 그 작전을 수행할 계획이었다.
독일 해군대장 에리히 레더는 1939년 10월에 처칠과 같은 생각을 했다.
예컨대 항구를 보전하기 위해 노르웨이를 공격하려 한 것이었다.
결국, 독일이 승리했다.
중립을 지키는 일은 중립을 표방함으로서만 성립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역시 '중립'을 표방했던 스웨덴은 나치에게 노르웨이 진격을 위한 길을 열어주었고,
전쟁 내내 뒷편으로 나치에게 무기를 판매하기도 했었다.
노르웨이기관사노조의 오이스틴의 주장대로 '중립은 중립일 때가 없었다!'
8.
마지막으로 덧붙이면, 글이 아주 편하게 읽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훌륭한 번역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강주헌씨는 이미 번역으로는 자타가 인정하는 분이 아니시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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