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인상주의, 표현주의가 무얼까?
그림을 비롯해 예술 작품을 비평하는 글이나 말들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이런 단어들은 오히려 작품 자체에 대한 나만의 감상을 일정한 한계로 가두어 버리곤 한다. 보통 사람들이 하는 '저 그림 참 좋다!'거나 아님 '내 스타일 아니야.'라는 감상평에 크게 공감하지만, 그것만으로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이를 때에는 '예술도 아무나 감상하는 게 아닌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림이야 사진과 같은 실제 현실을 옮기는 장치와 근본적으로 달라서 무엇이든 그리는 순간 그대로 옮겨온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게 아닌가?(물론 사진 또한 그것이 반영하고자 하는 실체와는 완벽히 일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예술'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아마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그리스, 로마시대의 '고전주의'야 당대의 사고에서 비롯된 것으로 현실 이상의 '이상'을 작품으로 옮기는 것을 최고의 것으로 삼았다.
깔끔한 비율로 대표되는 인체와 근육질의 몸매, 자연을 담는 방식도 마찬가지로 현실을 그렇게 수정한 것이었다.
'자연주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다고 하지만 어찌 작가의 느낌이나 감상이 배제될 수 있겠나?
그래서 '인상주의'나 '표현주의'와 같은 방식으로 훨씬 더 객관적 실체로서의 대상과 분리된 작가의 의도와 감정이 중요하게 부각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흐름의 변화는 예술의 자연스러운 발전 과정일 수도 있겠지만 시대적 분위기나 이데올로기를 넘어서긴 쉽지 않아서 늘 첫 발걸음 뗀 이들에게는 고난의 길이었다. 그런 '미술'의 변화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위험한 그림의 미술사'다.
노르웨이에서 뭉크의 '절규' 앞에 섰을 때 나는 이 그림을 어떻게 이해하고 보아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작가의 거친 내면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지만 이 그림이 그토록 많은 이들로부터 훌륭한 평가를 받는 이유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건 내가 바라보는 그림 감상이 아니고 어쩌면 다른 사람이 좋다고 하는 그림을 그저 보게된 영광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불편한 자세지만 오래도록 그림 앞을 떠나지 못하는 건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뭉크의 작품이 처음 그려졌을 때 시대는 용납해주지 않았다. 대상에 대한 정확한 관찰과 표현을 기본으로 한 그림만을 최고로 자부하는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예술에 대한 모욕'이라는 고함이 튀어나오지 않았겠는가? 불온한 그림을 당장 치워버리라는 빗발치는 항의 속에서도 '뭉크의 예술적 취향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를 범죄시하여 다루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논쟁이 붙었다니 역사는 늘 그렇게 발전해오는 모양이다.(19세기의 독일과 노르웨이, 그리고 21세기 대한민국이 비교되지 않는가?)
성화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되어 퇴짜만 맞는 카라바조의 그림들, 이상적인 풍경에서 벗어나 내 감정의 눈으로 바라본 풍경화를 그렸던 프리드리히, 화려한 색채마저 외설로, 정치로 비판받아야 했던 마네, 미술에 대한 근본을 뿌리채 흔드는 문제 제기를 했던 마르셀 뒤샹까지...
사회가 진보하는 것만큼 힘들게 변화되어온 미술의 흐름들을 조금이나마 듣고나서야 무슨 무슨 주의하는 것에 대해 고개가 끄덕여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뭉크의 그림을 바라본다. 음... 이해가 될 것 같다.
소설을 쓰는 아내에게 '미술에서 자주 거론되는 oo주의, **주의 라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무슨 책이라도 읽어볼까?' 하고 물었을 때,
'그거 책으로 쓰는 사람마다 다르고.. 예술이야 자기가 보고 평가하는 것인데.. 무슨 주의니 하는 것이 평론가들이 나중에 붙여놓은 건데..' 라며 긴 설명을 해준다. 어쩌면 내가 가장 궁금해 했던 이야기였다.
그리고, 나는 또 물었다.
'그런데 왜 마르셀 뒤샹의 변기는 예술이 되고, 동네 얘들이 가지고 노는 변기 쪼가리들은 그렇지 않지?'
무언가 예술적인 답을 기다리는 나에게 의외로 단순 명쾌하고도 시원한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좀 웃기는 거야!'
지금까지 들어온 이야기 중 가장 핵심을 짚어주는 대답이다.
이렇듯 작품 감상은 '좀 웃기는' 평론가들의 틀에서 벗어나는 게 좋겠다.
대신 작가가 의도하든 그렇지 않았든 작품으로 부딪혔던 시대와의 불화를 역사적으로 읽는 것은 그림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 책을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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