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하고 이기적인

[생각]이어지는 철도 사고와 10분 지연

대지의 마음 2016. 6. 4. 13:36


우연히 방문한 어느 블로그에서 다음 글을 만났습니다.


"어제 여수 무궁화호 탈선으로 인해 안타까운 부상자와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중략)... 어제는 탈선으로 인해 기차가 오후까지도 30분 이상 연착이 되었고, 서울지하철에서는 또 기기장치 이상으로 문이 열리지 않아 ...(중략)... 안전불감증..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전라선 율촌의 탈선사고 등 최근 이어지는 열차 사고로 인한 불편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미 여러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안전불감증'은 참으로 쉽지 않은 말이고, 사고의 본질을 가리는 신기한 말이기도 합니다. 어느 노동자가 직장에서 징계로 해고되거나 급여의 삭감을 맞기도 하고, 때로는 스스로의 목숨을 거는 일에 '불감'하게 일부러 그러겠습니까. 우리 사회에선 사고의 원인으로 잘못을 저지른 이에게 책임을 물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통용되고 있고, 사고 이후 대책을 세우는 것도 방해하는 참으로 편리한 단어입니다.


얼마 전 발생한 스크린도어 유지보수를 맡았던 젊은 노동자의 죽음도 그러했습니다. 표면적 원인은 2인 1조 근무를 어긴 희생자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을 쉽게 하니 문제가 꼬이기 시작합니다. 본질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호들갑 쩌는 언론도 초기에는 당사자를 가리키며 '안전불감증'이라 했고, '안전의식'에 문제가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많은 시민들의 분노와 질타 속에 본질적인 책임이 서울메트로에 있다고 결국엔 인정했습니다. 지킬 수 없는 매뉴얼을 만들어놓고 인원도, 제도도, 관리도, 어느 것도 책임지기 싫고 온전히 불안전으로 내몰고 '안전불감'을 부추긴 당사자는 누구일까요? 가려진 '안전불감증'의 주범은 누구인가요?


본론을 약간 벗어났는데 이 글을 쓰게된 이야기의 핵심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저에게 많은 고민을 준 건 앞에서 언급한 부분이 아니라 그 뒤에 이어진 뒷부분이었습니다.


글에서는 그런 사고로 열차가 지연되었을 때 어떻게 지연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방법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글쓴이의 의도가 나쁘다고만 할 수 없지만 댓글까지 읽어보곤 개인적으로 답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느 분의 댓글에는 내 소중한 시간 10분을 이야기하며 보상 기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공기업이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도 등장합니다. 공기업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감시하고 요구하는 것을 문제삼을 수는 없지만, 좀 다른 방향에서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아니 현장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철도노동자들이 공감하는- 최근 일어난 많은 사고의 배후에는 '안전불감증' 보다는 '안전 불감'을 묵인하고 강요하는 관습적, 문화적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핵심은 안전보다 앞서는 정시성입니다. 철도가 가진 장점인 정시성이 이젠 안전을 침해하는 안전 위협 요소로 성격이 바뀌었다는 사실입니다. 

        *정시성 자체에 대한 부정의 의미보다는 이로 인해 발생하는 '시간적 긴급성'을 말함.

         '시간적 긴급성'은 철도의 모든 업무를 수행하면서 인지하는 일정에 대한 압력의 정도를 의미함.


현장 실정에 맞지 않는 매뉴얼을 운영하면서도 문제점을 알지만 수정할 수 없는 이면에는 공기업의 평가가 정시성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안전 의식이 아무리 확고해도 5분, 10분 지연이라는 무서운 칼 앞에선 철도 노동자들이 차분하게 안전을 확보하면서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사고로 기관사가 운명을 달리했던 율촌역 사고의 표면적인 원인은 기관사의 과속이었습니다. 분명 큰 죄를 저지른 건 사실이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감수해야겠지요. 그러나, 기관사가 매뉴얼에 아예 관심이 없거나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서 과속을 저질렀을까요? 왜 기관사는 스스로에게 목숨이 걸린 일이 발생할 수 있음에도 과속을 한 걸까요? 그것을 밝혀내야 이후 사고를 막을 대책이 나오지 않을까요? 안타깝지만 사고 기관사의 실수(과속) 이면에는 이런 암묵적 강요 속에 행해지는 정시 운행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음의 전라선 율촌역 탈선 사고에 대한 글을 차분하게 살펴보신다면 조금이라도 이해가 되실 겁니다.




전라선 탈선 사고에서 성과 평가의 위험을 보았다!

 


 

성과연봉제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그러나 성과주의 시스템이 철도 안전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지 못해 아쉽다. 이미 현장에 도입된 성과평가시스템으로 인한 영향이 기관사의 사망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나. 성과연봉제 도입이 아니라 원래 존재하던 성과평가시스템마저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함을 이번 전라선 사고는 알려주고 있다.

 

 

지난 422일 새벽 339분경 발생한 제1517열차의 궤도 이탈 사고는 승객의 직접 피해와 열차 운행 중단에 더해 탑승 기관사가 사망에 이른 충격적인 사고다. 사고 직후 언론은 언제나 그랬듯이 안전불감증이란 단골 메뉴에 관제사 지시도 무시하고 기준 속도의 4배 운행이라는 선정성 높은 기사를 통해 사고의 배후 원인 규명에 찬물을 끼얹는 관행을 되풀이했다.

 

 

사고가 일어나고 피해자가 나오면 먼저 범인을 찾아 사고의 결과에 상응하는 처벌을 내리는 사고(思考) 패턴에 위험성마저 느낀다.’는 일본의 안전전문가 이시바시 아키라는 표면에 나타난 현상뿐만 아니라 배후에 잠재된 유발 요인을 가급적 많이 파악하고, 그것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다하는 것이 처벌을 위한 수사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 냉정하고 이성적인 사고 원인 규명 과정에 주의를 돌려야 한다. 기관사가 저지른 실수(과속)를 부정하거나 무마하려는 게 아니다. 사고는 단일한 하나의 원인으로 발생하지 않으며 사고 당사자도 사고를 일으킬 고의를 가지고 운전 취급에 임하지 않았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질문은 당신은 왜 실수를 했나?’가 아니라 당신은 왜 127km로 운전하겠다는 확신이 생겼나?’, ‘왜 기관사의 실수(과속)는 사고에 이르도록 어느 한 부분에서도 통제되지 못했나?’이다. , ‘누가 나쁜가?’가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가?’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선, 이번 사고를 접한 직후 전국의 기관사들에게 직관적으로 떠오른 생각은 비슷하다. ‘그래, 나도 그런 경험이 있는데.’ 복선 구간에서의 단선 취급 상황에서 제동 취급의 막바지에 이르러 하염없이 전방을 주시하고 발끝에 힘만 주고 있었던 승무원들, 그 등줄기에 흥건한 땀이 흘러내리지 않은 이가 얼마나 있나. 운전보안장치의 정상 기능이 확보되지 않아 온전히 승무원의 취급에만 의존하는 단선 반대선 운행은 이미 많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많은 승무원들이 경험했다는 준사고(아차사고)는 우리 현장에서 대형사고를 예방할 교훈으로 활용되지 못했는가? 사고 1건당 29건의 경미한 사고가 있고, 다시 300건의 준사고가 발생한다는 하인리히법칙의 시사점은 300건의 준사고를 통해 대형사고의 가능성을 파악해 사전에 철저히 대비하는 것이다. ‘원활한 의사소통과 자유로운 문제제기를 장려하는 보고하는 문화가 철도안전보건경영방침에 나타난 제1의 안전문화가 아니던가.

 

 

평소 보고하라는 수많은 공문과 지시가 있었음을 볼 때 공사 관리자들의 억울함도 이해된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보자. 작은 에러와 준사고는 평소 보고되면 안되는 금기사항처럼 다루어져 오지 않았던가. 경영평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무사고·무재해 운동의 실적이 무너진다고 아예 하찮게 취급하거나 무시하지는 않았는가? 중요한 정보의 보고를 차단하면서 공문이나 지시를 통해 안전 위협 요소 취합에 나선다면 현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우리 공기업이 사고 건수를 인사평가와 개인별, 팀별 성과급에 반영하는 것과 달리 JR 동일본은 준사고를 비롯한 인적 에러 보고에 대해 인센티브를 부여하되 성과급 제도는 도입하지 않고 있다. 직원간 경쟁을 촉발해 안전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번 사고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다양한 폐색 방식의 병행 사용과 구간의 분할과 통합으로 인한 불안정성그리고 이러한 제도 변경의 배경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살필 수 있다.

 

 

복선구간에서의 일시적 단선 운전은 폐색구간의 분할과 합병, 도중 운전취급생략역의 존재, 폐색 방식의 병행 사용이 더해져 상당히 복잡한 매뉴얼을 구성한다. 이마저도 지침을 통해 변경 과정을 거쳐 왔다. CTC(중앙집중제어시스템) 도입이 가져온 변화라 할 수 있지만 제도 변경의 배경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이미 본사의 일부 관리자들도 문제점을 토로했다시피 불안정성이 확대됨에도 열차 지연 운행을 최소화하고 더 많은 열차의 운행을 가능하게 하려는 수익 중심의 관점이 핵심 원인이기 때문이다. 사고가 발생했던 율촌과 성산이 폐색구간의 양 끝 지점이 아닌 도중 무인역임에도 불구하고 운행선 변경을 감행하게 했던 건 201012월 잠정지시를 통해 폐색구간을 축소해 추가 열차 투입이 가능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사고 직후 본사의 제1조치가 바로 이 지시를 취소한 것이었다.

 

 

또 다른 배후 요인으로 짚을 문제는 정시 운행 압박과 이로 인한 문화적 영향이다. 이 문제는 우리 내부의 안전문화(안전철학)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해법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열차에 대한 총괄적 제어를 책임지는 관제사에서 잠깐의 정차에도 폭언을 듣거나 승객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열차승무원, 긴박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유지보수 현장과 열차 운행 최일선의 기관사까지 전 직종의 사고 대응 문화를 좌우하는 안전과 직결된 사안이다.

 

 

사고 열차는 순천역에서 약 6분 늦게 인수인계 되었고 도중 작업자 보호를 위한 서행을 통해 더욱 지연되었다. 사고 지점인 율촌역을 앞두고 상구배 터널에서 최대 부하 8단 운전을 감행했음은 당연하고 터널을 벗어날 즈음 운행선 변경을 인식하고 급제동 취급을 했지만 망연자실 생사를 넘나드는 현장과 대면했다. 기관사라면 누구나 이해되는 생각의 흐름이고 감정마저 이입되어 끔찍한 트라우마로 남는다.

 

 

이 배후 요인의 원인은 무엇인가? 20·40분 지연보상제도와 열차 정시운행이 공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전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정시 운행이 모든 경우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 수익 중심의 공기업 평가 기준이 안전을 등한시하게 만드는 근본적 배후 원인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정책과 제도의 영향으로 상시화된 불안전 요소를 안고 열차는 달리고 있는 것이다.

 

 

안전상 문제를 느끼면 가장 안전한 조치를 취하라. 이로 인해 불이익이 남거나 시민들로부터 쏟아지는 민원이 들어와도 경영진이 감당할 것이다.경영진의 확고부동한 의사표시가 있어야 비로소 <안전 실천 결의>에 따라 가장 안전한 방법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조직 안전 문화의 획기적 전기가 마련될 것이다. 허용속도 범위 내에서 최대한 회복 운전을 해야 한다는 규정도 삭제를 검토해야 한다. 이 문구 하나가 주는 안전 위협 요인을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철도 안전은 확보가 가능하다.

                       *서울메트로 정수영 사장 직무대행은 구의역 사고 이후 대책을 밝히면서 "시민이나 작업자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통상적 업무 처리가 늦어지거나 열차가 지연되는 것에는 절대로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직접적 원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잠재적 배후 요인과 문화는 많다. 문제는 현장 직원들의 직관과 경험, 주장을 비전문가적 견해로 치부하고, 제도와 문화적 한계에 대한 근본적 대책 마련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사고에는 이른바 계보가 있다고 한다. 지난 20037명의 유지보수 노동자가 사망한 신태인~김제간 사고가 동일 계보라 할 수 있다. 당시 60km/h 전체 구간 서행은 얼마 뒤에 작업 구간으로 축소되었고, 이마저도 특정 작업 시 서행으로 바뀌었다. 역시 열차 지연을 최소화해야 할 수익적 목적이 가장 큰 이유였다. 전라선 사고에서 성과주의 평가시스템의 위험을 보지 못한다면 사고의 계보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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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지연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복잡한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모두가 성과평가를 위한 것입니다. 정부경영평가와 고객서비스헌장, 철도서비스품질평가 등으로 대체로 5분, 10분, 15분 정도의 시간을 설정하고 지연을 방지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실정입니다.(지연 보상에 등장하는 20분, 40분과는 달리 내부 기준은 시간의 압박이 훨씬 큽니다.)


다시 요약하면, (가급적) 정해진 시간에 열차가 도착하는 건 철도의 오래된 강점이고 자랑이지만 다른 해외와 비교해서도 차원이 다른 우리나라의 실정은 이제 그 장점을 넘어서 철도 안전을 해치는 가장 중요한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것. 이러한 사정을 두루 살펴서 '열차 지연 보상'과 '안전 문제'를 접근하는 사회적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영국에서 변호사로 근무하는 이의 글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습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한 죽음



김세정_런던 GRM Law 변호사



스크린도어 사고가 발생했다고 보고가 된 것이 28일 오후 4시 58분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고 발생 후 한 시간 내에 출동하기로 되어 있는 계약에 따라 직원이 출동한 것이 5시 52분이었고. 출동한 직원이 달려오는 열차에 치여 사망한 것이 오후 5시 57분이고, 지하철은 20여분간 운행을 중지했다가 오후 6시 23분에 다시 운행을 재개했다. 출동해야 하는 시간이 무조건 한 시간. 사람이 죽었는데 그걸 수습하는 시간이 겨우 이십 분. 놀랍다. 영국에서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스피드다. 꼭 이런 놀라운 스피드로 스크린도어 고장이 해결되어야 하고 열차가 다시 다녀야 하는 건가.

 

열아홉, 겨우 소년을 막 벗은 젊은이의 죽음에 슬퍼하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로 스케줄에 쫓겼다는 걸 안타까워하고, 그 가방 속의 컵라면 때문에 우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고장 난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보거나 사고로 인하여 열차 운행이 지연되고 있다고 하면 화를 내고 참을 수 없어 할 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고장은 빨리빨리 고쳐져야 하고, 사고 현장은 빨리빨리 수습되어야 하고, 그리고 모든 것이 다시 정상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물론 무엇보다도 관련 인력이 충분히 투입되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목숨을 걸고 작업을 하는데도 그 보수란 터무니 없을 정도로 적더라. 이러니 운영 비용을 아끼려는 자본의 속성이 가장 큰 문제라 하겠지만 그에 더하여 눈곱만큼의 불편도 겪지 않는 것이 당연한 소비자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태도 역시 서비스 노동자를 무리하게 일하도록 하고 끼니를 챙길 시간도 챙기지 못하도록 하는 데 일조를 한다.


스크린도어를 승강장 쪽에서 고칠 수 없다면, 즉 작업자가 직접 스크린도어 넘어 선로 쪽으로 들어가야만 수리 작업을 할 수 있다면, 그동안은 열차가 다니지 말아야 한다. 아무래도 도저히 그럴 수는 없다면 그 스크린도어 앞에 고장이라고 표식을 붙이든 줄을 쳐 놓든 안전장치를 해 놓고 이용을 하지 못하도록 하면 된다. 그리고 열차 운행이 중단된 시간에 수리를 하면 될 것 아닌가. 야간 작업 역시 쉬운 일은 아니겠다만, 목숨을 걸고 수리를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 2인 1조 작업이 원칙이라지만 이는 인력이 부족하여 현실적으로 지켜지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도 사용자 측에서는 이를 원칙으로 정해 놓았고 피해자가 그걸 지키지 않았으니 죽은 자의 잘못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이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하여 단순히 2인 1조 원칙이 지켜진다고 그것만으로 다 된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다. 열차가 지나가는 선로에 한 명은 목숨을 걸고 나가서 일을 하고 다른 한명은 열차가 오는지를 본다. 이게 뭐냐. 그럼 망보는 역할이 뭔가 실수라도 하면 동료의 죽음은 온전히 그의 탓인 건가.


제발, 목숨 걸고 위험하게 작업하지 않아도 되도록 승강장 안쪽에서 스크린도어 고장을 수리할 수 있도록 하고, 이런 교체 작업이 돈이 너무 많이 들고 시간이 걸라는 일이라면 그 동안 고장난 스크린도어 수리작업은 야간에 하도록 하라는 거다. 열차가 다니지 않는 시간에. 그 동안애는 고장난 문의 그 왼쪽문이나 오른쪽문을 사용하면 되지 않나.


이와 같은 일은 당연히 불편한 일이다. 그리고 소비자로서 사측에 스크린도어를 잘 점검해 달라는 것 역시 당연한 요청이고. 그러나 그 해결 방식이 결국 누군가의 휴식 시간을 희생하고 더 심하게는 목숨을 담보로 해서 무리하게 당장 저 고장을 고쳐 내는 것이라면, 약간의 불편을 감수해서라도 그러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거다. 누군가가 목숨을 걸고 작업을 하는 방식을 그대로 두고 비용을 낮추고 편의를 추구해서는 안된다는 것.


계속 같은 일의 반복이다. 돈 아끼느라 사람 죽고, 편리하느라 사람 죽고, 사람은 자꾸 죽는데, 결국 누가 돈을 벌고 누가 편한 건지.





이어지는 철도 사고와 10분 지연



* 위에 인용한 블로거의 견해를 탓하는 목적의 글이 아닙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