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따라 초록빛을 띠기도 했고, 황금빛을 띠기도 했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보기엔 초록빛 잔디밭 같은 포근함을
주는 그 곳, 그 곳은 3미터에 달하는 갈대밭이었다.
그것도 매장된 폭발물의 수 조차도 가늠할 수 없는 치열한 냉전의
한기가 강물을 따라 흐르는 살벌한 곳이었다.
때론 그곳에 작전을 나가 지뢰를 밟아 발목이 절단되기도 했고,
세워진 입간판과 서로를 향해 쏟아붓는 방송 소리의 긴장감 너머로
의외로 편안한 모습의 상대를 응시하는 한가로움도 있었던 곳이다.
젊은 시절 짧지 않은 몇 개월을 보낸 철책 너머 속 풍경이다.
높은 봉우리 초소에서의 시간은
멀리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상대를 응시하는 상상할 수 없는 나만의 평화로움이었다.
그 누구는 매 순간 긴장감에 땀이 절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난 그 곳이 너무나도 좋았다.
상대를 바라보는 것도, 뉘엇뉘엇 넘어가는 붉은 해를 받아 물결치는 3미터 갈대밭의 풍요로움도,
나를 간섭하는 그 어떤 것도 합법적으로 배제된 넉넉한 상상과 추억의 그 시간과 장소들...
난 그곳에서 초년병의 몇 개월을 보냈고,
수 없이 많은 선배들을 전역시킨 후 내가 그곳으로 다시 돌아올 때,
예정된 그곳의 생활도 마무리되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 날을 보내고 괜한 눈물바람으로 추적추적 걸어내려오던 그 곳은
그 시절 내내 그리워할 수 밖에 없는 마음 속 고향이기도 했다.
'회상'은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노래다.
텔레비젼이나 라디오, 지나가는 가게 앞에서라도 이 노래만 들으면 난 자연스럽게 그 곳을 추억한다.
상대를 향해 많은 노래와 선전선동의 멘트들이 오고가지만
내 초소 옆 스피커는 유난히 서정적인 노래들로 가득 채워졌었다.
그것도 최유나의 '너를 사랑하고도' 와 김성호의 '회상'...
하루에 보통 몇십번은 들어야 했었으니...
그땐 너무 지겨워서 제발 다른 노래로 바꾸어달라는 전화를 한 적도 있었다.
어쨌든 난 요즘도 이 노래를 들으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침을 흘리며 옛일을 떠올린다.
[회상_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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