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 그리워

두 차례 도전 끝에 완주한 해남 달마고도 17.7km

대지의 마음 2020. 8. 19. 10:38

첫번째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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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고도 첫 도전

_2020년 8월 12일, 장마 끝 습하고 소나기 자주 내리던 날.

 

 

 

온 가족이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미황사 앞에 도착.

최장기 장마 속에도 비는 오지 않음. 다만 소나기가 내릴만한 하늘.

걱정이 없진 않았지만 일단 출발하기로...

 

우산 하나씩을 지팡이 삼아 1코스부터 걷기 시작.

입구에 준비된 스탬프북에 첫 스탬프를 찍는 순간, 완주에 대한 열정이 팍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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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고도를 찾기 위해 검색하던 중 알게 된 사실.

아무런 기계적인 도움도 받지 않고 오랜 기간 사람의 힘만으로 만든 친환경적인 길이라는 것.

과연 길은 어떤 모양일까?

 

달마산 중턱을 굽이굽이 오르락내리락 돌아가는 '달마고도'

1코스의 완만한 길을 오르는 내내 만나는 정갈하게 정돈된 모습.

 

길 곳곳에서 바라보는 암벽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달마산의 모습도 좋고,

해안과 마을, 논밭이 어울려 낸 풍광도 멋지고,

무엇보다 건너편 산등성이로 조금씩 드러나 보이는 '내가 지나온 길'과 '가야할 길'의 모습이

왜 이 길의 이름을 차마고도의 그것처럼, '달마고도'라 하였는지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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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쉽게도 2시간 여를 넘긴 산행은 간간히 쏟아지던 소나기가 굵어지면서 완주는 포기해야 했다.

더욱 난감한 일은 달마고도에 들어서서는 갈림길을 통해 하산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

비를 맞으며 걸어온 길을 다시 되돌아갈 것인가, 아님 문바위재를 넘어 미황사로 복귀할 것인가?

 

조금 힘이 들더라도 거리상으로 가까운 문바위재를 넘는 코스를 택하고

소나기와 비오듯 쏟아지는 땀방울을 참아내며 문바위재에 도착.

비가 잦아든 틈을 타 준비해간 라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문바위재 정상에서의 라면 맛은 기가 막혔다.

비록 완주는 포기했지만, 한 끼의 점심만으로 충분히 위로가 되었다.

 

 

 

 

 

 

 

두번째 도전

_2020년 8월 18일, 장마 끝에 시작된 폭염으로 뜨거웠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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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산행을 중단했던 곳과 가장 인접한 곳을 통해 달마고도로 접근하기로.

선택한 곳은 평암리 보건소를 통해 노지랑골을 오르는 코스.

그렇게 3코스의 시작점을 통하면 스탬프 인증도 가능할 것으로 판단.

 

하지만, 노지랑골로 오르는 길은 쉽지 않았음.

동네 어르신들로부터 외길이라 헛갈리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우리는 갈림길 두 군데를 모두 잘못된 선택으로 걷다 돌아오는 수고를 해야 했음.

 

아스팔트가 뿜어내는 덥고 습한 열기도 힘이 들지만,

본 코스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갈팡질팡 2시간 여를 헤매고 있으니 몸도 마음도 모두 힘이 들었음.

이 정도하고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없진 않았지만, 우린 그 말만큼은 하지 않은 채 힘듬을 견뎠음.

 

그렇게 헤매며 쉬기를 반복한 결과 '노지랑골 스탬프함'을 발견한 순간,

기쁜 나머지 무의식적으로 만세를 불렀음.

 

 

"힘이 들었지만 서로 짜증내지 말자고 격려했던 순간들이 남은 인생의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이렇게 아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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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도 건성으로 먹고 노지랑골 3코스 시작점에 도착했지만

무리한 초반 산행에 아들은 녹초가 되었고 더부룩한 속도 말썽.

물만 연거푸 마셔대는 데 물마저도 충분치가 않다.

조금 더 여유있게 준비할 걸 하는 후회도 들지만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다.

 

물은 아껴 먹으면 될 일.

안되면 막걸리라도 나누어 마셔야지.

그러나 남은 10여킬로 넘는 거리를 걸어야 하는 심리적 부담감은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그 때 2코스 쪽에서 남녀 한 쌍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어디서 부터 왔느냐고 묻자,

미황사에서 출발해 2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고 해준다.

헐, 폭염 속에서 상당히 부지런한 걸음걸이를 한 셈이다.

 

점심 식사는 어쩔 생각이냐고 묻자, 금방 걸어서 완주한 후 식사할 생각이란다. 헉!!

대단하다!!!

 

아이와 아빠는 서로를 보며 찡긋해 보인다.

그리고, 저 정도라면 우리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다시 생긴다.

그래 걸어보자! 기분좋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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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4코스를 남기고,

결국 아이와 막걸리로 목을 축이기에 이르렀다.

막걸리는 주린 배를 채워줬고,

힘든 걸음을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를 주었고,

한 동안 갈증도 해소해주었다.

(물론 많이 마시면 갈증은 심해질테지만 한 컵 정도씩을 조금씩 나누어 마시는 정도라면 OK)

 

막걸리 애호가인 내게도 -막걸리의 진가를 몸소 체험한 -'막걸리의 재발견'이라 이름할 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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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코스는 여느 코스와는 달리 포근한 느낌의 걷는 부담도 덜한 길이었다.

걷는 부담이 덜어지고 목적지가 가까워오자 우리는 오전부터 있었던 일들을 웃으며 돌아볼 수 있었다.

 

멋진 풍광을 보며 이토록 '아름다운 길을 걸을 수 있어서 좋다.'는 말도 주고 받았다.

나는 '기회가 되면 다시 오고 싶다.'고도 했다.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는 함께하리라 믿는다.

 

앞으로 20여 년이 흐른 뒤에 아들의 아들과 함께 이 길을 걸어보라고도 했다.

할아버지가 된 내가 걸을 수 있다면 함께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근처 펜션을 얻어서 너희들의 완주를 응원하겠다고도 했다.

아들과 걸으며 할아버지와 함께 걸었던 사연을 이야기해주라고도 했다.

그리고, '길은 그렇게 역사가 된다.'고도 했다.

 

 

돌이켜보니 괜한 소리를 한 게 아닌가 싶지만,

누구라도 달마고도를 걸으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아름다운 길에 '명품'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나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명품이라 이름붙인 아파트가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과잉된 이름으로 사물의 본래의 기능과 본질을 담지 못하는 현실.

차고 넘치는 게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는 믿음이 확연해지는 요즈음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보다 더 좋은 말을 뭘로 해야 할지 딱히 모르겠다.

 

그저 나에겐, 여느 길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아름다운 추억을 경험하게 해 준,

다시 걷고 싶은 좋은 길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