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철마야

대한민국의 철도는 오늘도 누군가의 절망을 안고 달린다!

대지의 마음 2010. 12. 27. 01:44

"같이 잘래?"

 

12시를 막 넘긴 늦은 밤,  승무원 대기실...

어린 아이의 투정처럼 나이 지긋한 선배는 내게 이 말을 건네곤 장황한 설명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한 가정의 든든한 가장인 그 사람이 토로하는 말의 정황은 이렇다.

 

....

 

며칠 전 그 사람은 끔찍한 주검을 수습하였다.

 

 

그리고,

위로휴가(이 마저도 힘겨운 파업투쟁의 결과물로 얻어낸 것이다.)로 주어진 며칠을 집에서 가정사로 보낸 뒤 출근한 그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아니 갈수록 뚜렷해지는 기억너머로 힘겨운 잠을 청해야하건만 도저히 빈방에 혼자선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것이다.

 

 

"아이고, 형님! 한 두번도 아닌데 그렇게 힘들어하면 어떻게 해요?"

 

 

이건 위로가 아니다.

그 말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어서 하는 넋두리이거나 대화의 시간을 채우는 의무와 같은 것이다.

 

 

"아니야, 이번엔 오래갈 것 같다. 예전에는 그래도 깨끗한 주검을 처리했었는데... 이번엔 너무도 끔찍했다."

 

 

그랬을 것이다.

주검을 만지는 순간의 섬뜩함이 어떤가?

거기에 깨끗함은 무엇이고 그 반대인 더러운 건 또 뭐란 말인가?

 

 

그렇게 그는 죽은 이의 팔다리 몇 개와 이미 없어진 머리, 떨어진 살점들을 무심하려 애써 노력하며 주섬주섬 모았을 것이며,

관제실에서 걸려오는 수 십 통의 전화와 서둘러 현장을 출발할 것을 강요하는 무언의 압력속에 제 정신을 놓은 채 주검을 수습했을 것이다.

 

 

그리곤, 창백한 얼굴로 도착한 숙소에서도 마무리되지 못한 상황을 떠올리며 늦은 저녁 피곤에 절어, 오지 않은 잠을 청했을 것이다.

 

 

남아있는 귀찮은 조사들이 부담이지만 '죽은 이에 비하면 뭐가  피곤하리요' 라며 위로하며

아직 핏내음이 가시지 않은 손가락을 문지르며 잠을 청했을 것이다.

 

몇 시간 뒤에 그는 다시 돌아오는 열차를 운전해야 하니까?

 

...

 

 

사람을 죽여본 일이 있을까?

 

사람을 죽인 끔찍한 인간들은 모두들 그 만큼의 책임으로 수 년 혹 수 십 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반성의 시간을 보낸다.

 

기관사는 불가항력의 상황에 휩쓸려간 주검을 수습하며

그 댓가로 이렇듯 평생을 고통의 감옥에서 그 책임을 다한다.

 

...

 

"같이 잘래?"

 

이는 사랑하는 이가 나에게 던지는 달콤한 유혹의 말도,

잠 못 이루며 엄마와 아빠를 찾는 다정스런 자식들의 말도 아니다.

 

뜻하지 않은 주검을 마주쳤던 어느 기관사의,

어둠이 주는 무서운 공포를 이겨내고 싶은 절망의 소리다.

 

 

철길은 누군가에겐 추억을 가져다주지만 힘든 경제와 개인사를 비관해서 스스로를 매몰차게 버리는 곳이기도 하다.

 

사회가 어려우면 기관사는 힘들어진다.

 

 

 

오늘도 대~한민국의 철도는 누군가의 절망을 안고 달린다.

 

 

 

[배경/영화음악 '철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