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소낙비

술 한잔_정호승 시, 김현성 노래

대지의 마음 2009. 6. 12. 22:35

 

 

 

 

 

술 한잔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꽃 소리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정호승 시집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에서

 

 

 

 

 

 


 

글 김현성

 


 

 

 

살면서 어떤 날은 술잔을 홀로 기울이고 싶은 때가 더러 있다. 삶이 공허하고, 갑자기 자신의 뒤를 돌아보는 때가 바로 그런 날이다.

 

<술 한잔〉을 읽으며 노래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쓸한 어느 골목길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포장마차 안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어떤 사람을 생각했다. 다 식은 우동 국물을 앞에 두고 홀로 술잔을 들이켜는. 어쩌면 그는 부도를 낸 회사의 사장일 수도 있다. 아니면 부도난 회사의 말단 직원일지도. 또는 가정이 흔들려서 마음이 괴로운 사람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 바로 포장마차이다. 그곳에서의 술 한잔은 여느 좋은 술집의 술 한잔과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삶이란 어느 때에는 손댈 수 없을 만큼 뜨겁다가, 한 순간에 그 열기를 잃는 것인지도 모른다. 앞서 산 사람들의 얘기처럼 인생은 정말 짧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짧다고 말하는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고민이 상존하는가. 어떤 이는 불과 얼마 안 되는 돈 때문에 목숨을 걸기도 하며, 어떤 이는 정반대에서의 고민을 한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곧은 나무보다/굽은 나무가 더 아름답다’고. 그렇다, 삶은 오랜 풍상에 이렇게 저렇게 굽는 것이리라. 아무리 강한 비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견디며 굽는 것이야말로 삶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요즈음 젊어 보이기 위해 성형외과가 문전성시를 이룬다지만, 자연스레 늙는 모습이야말로 아무런 흉이 될 수없다. 그야말로 파란 노을이 없듯이, 황혼이란 잘 익은 포도주처럼 깊은 붉은 빛이 아름다운 법이다.

 

인생이 간혹 슬프고 힘들더라도 분명 살아야 할 이유는, 삶이 그 자체만으로 우리에게 소중하다는 것이다. 쓸쓸한 날에도 외로움의 한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게 있다. 시인의 말처럼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자.

 

〈술 한잔〉을 노래로 부르며 오늘 같은 날은 술 한잔 건네보자. 인생이 무엇 하나 가르쳐주지 않는다 해도 이미 존재함으로 기쁜 일일 터이다. 오직 부와 명예만을 헤아리는 삶이라면 슬픈 일이다. 계절이 오고가는 것을,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나의 옷자락처럼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