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 소통하겠다는 것인가?'
이 블로그를 보면서 누군가는 할 수 있는 이야기이고,
나도 그 비슷한(?) 생각 정도는 했었다.
그냥 생활하면서 부딪히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야
어느 누가 특별히 강조하지 않아도 될 말이겠지만..
뭔가 다른 사정이 있는 모양이다.
예를 들면, 특별히 목적하는 바가 있고,
그것을 이루는 일은 내가 살아가는 삶의 전반을 좌우하는 중요한 일이겠고,
그리하니 남들과 소통하는 일이 그저 지나가는 음악처럼 들어서는 안되겠지.. 하고 강조하는 모양이다.
'소통'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저 아래 밑바닥은 그러겠지만
정작 난 무엇 하나 편한게 없다.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블로그는 들어오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됩니까?
-예, 아마 하루 평균 50~60명 정도되는 모양입니다.
-그저 보고 가는 사람이 그렇겠지요.
-예, 아마도....
-특별히 관심있어 글을 읽어보고 댓글을 다는 사람은 많나요?
-뭐, ... 쩝~ 댓글이래봐야 많이 달리기도, 안 달리기도 합니다.
으음... 좀 꼼꼼하게 살펴보니 '철길에 부는 바람'이나 '첫마음' 등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런 정도이니 누구와 '소통'이 되겠습니까?
-.....
그래서 편한 게 없는 모양이다.
사실 이 블로그도 마찬가지이고
이제 적게 될 트위터나 페이스북도 같은 경우지만
그게 '소통'이려면 다른 게 필요한 모양이다.
곰곰히 생각해봤다.
내 블로그,
난 하나 하나의 글을 누구에게 쓰고 있나?
아마 때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일 경우도 있겠다.
어떤 글은 '철길에 부는 바람'님이 읽었으면 좋겠고,
어떤 글은 '첫마음'님이 읽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어떤 글은 '가은승준이네'가, 또 어떤 건 '비래동 서가' 나 '민지네'가 읽었으면 했다.
또, 어떤 글은 호주에 있는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와 같은 성격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사실인 건 아니다.
이 모든 글은 내 아이들이 장차 커서 읽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컸었다.
그 무슨 역사를 거창하게 남기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흐르는 생활 속에서 아빠는 이런저런 취향을 가진 사람이었고,
너희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진 한 두장 차곡차곡 모아두었더라 하는 거 말이다.
그리고,
내게 블로그를 트위터나 페이스북보다 훨씬 좋아하게 만드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 시간만큼은 스스로를 진심으로 대접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분하게 나와 내 일상을 짚어보는 시간이 책을 몇 권 읽는 것보다도 훨씬 좋은 시간이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이제 시작한지 1주일쯤 되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누군가는 그거 1주일정도 해보고 뭔 뚱딴지 같은 소리 하고 있냐고 하겠지만,
... 요란스럽고 거추장스럽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익숙한 사람만의 정서와 질서가 있겠지만,
내겐 스스로를 그런 흐름에 맞추고 싶은 생각이 잘 들지 않고, 뭔가 큰 결심이 필요할 것 같고(감각적으로).
또, 왠지 자연스럽지 못한 옷을 입은 느낌이 든다.
그 공간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정보와 인간적인 연대감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어찌할까?
이것도 저것도 적응은 해야겠지만 왠지 불편한 마음은 어찌할까?
...
아, 술 좀 깨면 이어서 써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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