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설 명절이 지나간다.
멀리 호주에 있는 민준이네는 여전히 무더운 날씨지만
오래동안 불편하게 살던 아파트에서 이사했단다.
처음 얻어보는 단독주택이 넓찍해서 만족스럽고
앞에 조그만 땅도 있어서 야채를 심어서 키우고 있단다.
명절 즈음에 마침 비가 내려 일도 없겠다
한국에 갔다 들어온 처제네 식구들과
삼겹살 파티를 벌인단다.
호주에서 태어난 첫째 아이 민준이는 이제 7살이 된다.
한국땅을 제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잠깐 딛었으니 아마 기억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민준이는 한국말을 아주 잘하고, 외국사람들과 만나서도 자신감있게 이야기(?) 한단다.
혼자 지내는 민준이에게 이제 동생까지 생긴다니 먼 곳에 있는 동생네에게도 여유가 생기는구나.
-그리고, 어머니는 한 시름 놓았다고 하셨다.(못내 멀리 있는 아들이 마음에 걸렸는데...)
나주(영산포)에 사는 딸 홍경이는
어머니 집과 가까운 곳에 있는 나주대학(이름이 수시로 바뀌었었다. 고구려대학?)에서
설립초기부터 작년까지 근무를 했었다.
의례히 어느 시골의 기업(학교도 마찬가지)들도 모두 그러하듯이
좋은 게 좋은 거야 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부려먹는 학교였다.(내가 느끼기에...)
아무때고 학교 필요에 의해서 일을 시켜도 뭐라 항변하지 못하는 현실에
홍경이는 마음 고생을 심하게 했단다.
눈물바람으로 이야기하는 여동생 홍경이를 데리고서
나주대학인지 뭔지에 가서 뒤집어 엎어버릴 생각도 많이 했었지만 홍경이가 극구 반대했었다.
어쨌든 작년에 홍경이는 그 학교(직장)를 그만두었다.
빠듯한 살림에 차서방이 고생이겠지만 점차 적응이 되어서 이젠 어찌어찌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고 했다.
홍경이는 건강하지 못한 얼굴 색깔(마치 지금의 나의 얼굴?)이 펴져 활기 있는 모습을 되찾았다.
수영장도 시간을 내서 다니고 건강을 찾아가고 있단다.
딸 인서는 태어날때부터 부자연스러운 몸을 가졌지만
이제 다른 또래의 아이들처럼 사고하고 행동하고 변해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또 한시름 놓았다고 하셨다.(걱정인 딸과 손녀가 눈에 자꾸 밟힌다고 고생하셨는데...)
큰 아들이 텔레비젼에 자꾸 나왔다.
뉴스 시간에 물짠(좋지 않은 얼굴을 어머님은 늘 그렇게 말씀하신다.) 얼굴을 하고서
그것도 한 가운데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있었단다.
"얼굴이 안 좋아서 어쩐다냐?"
어머님은 텔레비젼을 보신 후 전화를 걸어서 나의 얼굴색부터 말씀하셨다.
누구의 대표라는 사람이 등치도 좀 있고 위엄이 있어야지 너처럼 얼굴빛이 안나서 어쩌겠냐는 말씀이시다.
명절에 만난 어머님은 여전히 그 말씀부터 시작하신다.
며느리에게 얘기 아빠 옷을 한 벌 깔끔하게 사주라고 하신다.
매일처럼 입고 다니는 작업복 잠바가 눈에 밟히셨단다.
호주에 사는 민준이네, 나주(영산포)에 사는 인서네 가족들 이야기를 하시면서
이제 다른 시름은 없어졌다고 하셨다.
아내와 두 아이, 어머니 그리고 나까지 다섯 식구가 모두 모여 음식 장만을 시작했다.
내 아이들 민결이와 태림이는 여기저기 자기들이 하겠다고 부산히 움직였고 웃음소리도 크게 났다.
막걸리 한 병을 아내와 나눠 마시고 저녁 늦게 잠자리에 들 무렵,
아들 녀석이 할머니 옆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오래간만에 손자 옆에 누워 잠을 청하는 할머니의 말씀,
'어찌 이리 이쁜 얘들을 낳았을까? 이제 민결 아빠가 얼른 좀 편해지면 한 시름 놓겄는디...'
-어머니가 여전히 마음으로 고생하시는 시름은 큰 아들 때문이시다.
어머니의 고향은 나주 반남이라는 곳이다.
그 곳에서 19살에 시집오셔서 다시 가 본 적이 한손가락을 꼽을 정도라신다.
그렇게 친정의 일을 멀리하시고 지내신지 40년을 훌쩍 넘겼다.
마음의 위안을 찾을 곳은 어디실까?
올해는 큰 시름 하나 마저 없애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할머니 옆에서 자겠다고 누운 아들녀석이 어찌나 대견스럽던지...]
나의 어머니에게도 그리운 어머니가 계시다는 걸
나의 어머니에게도 추억이 있다는 걸
오래되어서야 알았어요
마당에 봄나물 다듬으시면서
구슬픈 소리로 들려오는 콧노래
나의 어머니에게도 그리운 어머니가 계시다는 걸
뒤늦게야 알았어요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시며 부르는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상고머리에 빛 바랜 사진속에 장난기 어린 나의 어머니
그 옆에 인자한 웃음짓는 내 어머니의 그리운 어머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아
어머니 둥근 등을 바라보다가 그만 울었어요
추억은 어머니에게도 소중하건만
자식들 키우며 그 추억 다 빼앗겼나요. 어머니...
나의 어머니에게도 그리운 어머니가 계시다는 걸
뒤늦게야 알았어요
[신동호 시, 이지상 곡] 이지상의 3집 <위로하다 위로받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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