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외로움

노동조합 사무실에 울려퍼지는 이적의 '다행이다'

대지의 마음 2011. 11. 18. 15:16

 

비가 내리는 오후.

 

순천전기 지부 조합원 2명이 노동조합(지본) 사무실에 나타났다.

쌀쌀한 날씨인데 다소 추워보이는 옷을 입은 저 동지는

취미로 Guitar 를 다루는데 간혹 노동조합 행사에도 무대에 오르곤 했었다.

 

그 옆에 있는 동지는 안면은 있는데 조금 쑥스러워하는 모습이다.

 

무슨 일일까?

 

궁금해서 2층 회의실에 살금살금 올라가봤다.

 

 

 

 

 

 

 

왠걸 기타반주에 맞춰서 쑥스러워하던 그 동지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적의 '다행이다'

특별한 계기가 아니면 부르기에 만만치 않은 노래일텐데..

 

약간 두꺼운 목소리지만 차분하고 상대에 대한 마음도 느껴지는 분위기.

 

'아니 왠 노래?'

 

'제가 내일 결혼하는데 신부에게 불러줄 노래를 연습하고 있습니다.'

 

오호~ 놀라워!

 

사랑하는 신부에게 신랑이 불러주는 축하의 노래

이적의 '다행이다'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마주보며 숨을 쉴 수 있어서
그대를 안고서  힘이 들면 눈물 흘릴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거친 바람 속에도 젖은 지붕 밑에도
홀로 내팽개쳐져 있지 않다는게
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 게
언제나 나의 곁을 지켜주던
그대라는 놀라운 사람 때문이라는 걸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나눠먹을 밥을 지을 수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저린 손을 잡아 줄 수 있어서
그대를 안고서 되지 않는 위로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거친 바람 속에도 젖은 지붕밑에도
홀로 내팽개쳐져 있지 않다는 게
지친 하루 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 게
언제나 나의 곁을 지켜주던
그대라는 놀라운 사람 때문이란 걸

 

 

 

 

아주 적절한 노래지만 놀랍다.

젊어서(?)일까

 

그리고 또 놀랐다.

약간은 떨어진 거리에 있는 노동조합 사무실 2층 회의실에 와서 연습할 생각을 하다니...

 

고마웠다.

그렇게 편하게 와서 즐기고 가면 되는데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무슨 '파업'이네 '투쟁'이네 하는 일에 심장 떨리는 심정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동네에서 그저 막걸리 한 잔 먹고 지나치다 커피 한 잔 먹으러 왔다는 곳이었으면 좋겠고,

사랑하는 신부에게 불러주는 축가 연습 공간으로 안성맞춤이라고 추천해도 좋고,

본인이 사는 아파트 학부모 모임할 공간이 없다는데 노동조합 사무실이 안성맞춤이라네 해도 좋겠다.

 

뭐 다른 뭔가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러면 엄청 좋을 것 같다.

 

예쁜 신부를 위해 준비하는 축가 잘 부르고

새신랑 신부의 앞날이 진심으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비와 외로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겐 불편한 트위터와 페이스북  (0) 2012.01.24
어머니의 3가지 시름 풀릴 2012년  (0) 2012.01.24
조창익 선생님의 서예전  (0) 2011.11.14
10월의 마지막 밤에...  (0) 2011.10.31
첫눈을 기다린다.  (0) 2011.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