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은 아쉬움

5월에 겹쳐지는 얼굴, 화물노동자 박종태 열사의 '마지막 일기'

대지의 마음 2012. 5. 1. 06:50

 

며칠 전 화물노동자 故 박종태 열사의 3주기 추모제 행사가 있었습니다.

전날까지 여름 날씨처럼 덥더니 비가 올 듯 하늘은 꾸물거렸습니다.

그가 세상을 버리던 그 때도, 그의 장례가 치러지던 날에도

1주기와 2주기에도 비가 왔던 듯 합니다.

 

혜주와 정하를 보았습니다.

유난히 엄마 곁에 바짝 달라붙어 있는 아이들을 말이죠.

 

 

박종태 열사는 제 고등학교 1년 후배입니다.

화물연대 활동을 시작한 이후 만날 때마다

'정말 강인한 신념을 가졌구나'하고 놀라곤 했습니다.

 

화물연대 인홍상사의 총파업 투쟁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승리하기도 했고,

50m 송전탑에 올라 거대 자본 삼성에 맞서 싸우다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

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들과 수수료 30원 인상 요구에 집단 해고시킨 대한통운 자본의 생명천시, 반인륜적 작태를 폭로하며

수배 중에도 전국을 순회하며 투쟁을 호소하였습니다.

 

2009년 4월 30일, 자신의 죽음이 부당한 해고 철회와 화물연대 사수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 확신하며

대한통운 대전지사 건너편 아카시아 동산에서 '대한통운은 노조탄압 중단하라!'는 현수막을 걸고 산화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러하겠지만

대한통운 택배 투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마지막 결단'을 고민했을 당시를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두려운 마음의 떨림이 나에게도 뚜렷이 전해져 옵니다.

 

그 앞에 서면

여전히 무거운 마음으로 힘들고,

솔직히 어떻게 박종태 열사를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렵습니다.

아마 그것이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어떠한 경우에도 마지막 책임을 놓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약속만은 남겨두고 왔습니다.

 

 

 

'철길에 부는 바람' 카페가 새로운 시작을 알립니다.

축하의 마음을 담아 그것도 우리 모두의 생일인 노동절의 의미를 담아

희망으로 활기찬 노래를 하나 골라볼까 하다가 포기합니다.

 

그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이 공간은 저에게는 어떤 의무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연속되는 일상이고, 작은 취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의무감 내려두고

자연스럽게 며칠 전 다녀온 화물노동자 박종태 열사의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황정우의 '철길에 부는 바람'의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아니, 제 꼭지 때문에 발전이 되었다는 소릴 들으면 더 없는 기쁨이 되겠습니다.^^

 

 

[박종태 열사 가족의 감사 인사]

 

 

 

 

 

 

아래는 제가 만든 창작 영상입니다.

 

2009년 박종태 열사의 죽음을 접하고

철도노조 호남지방본부 사무실에 그의 영정을 세우고 분향소를 설치해서 장례를 치르던 날까지 내내 향을 피웠습니다.

 

홀로 잠자던 사무실 방으로 가는 길이 저에겐 두려운 길이었습니다.

모든 불을 끄고 침실로 걸어가는 길 옆에 위치한 그의 분향소를 지나치는 마음은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힘들게 그의 장례를 마치고

5월 광주와 광주의 아들 박종태 그리고, 광주 항쟁 당시 고교생의 일기를 주제로 삼은 블랙홀의 '마지막 일기'를 엮어서

영상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영상 창작 프로그램을 배운 이후 첫번째 작품이었습니다.

 

 

 

 

 

 

 

[박종태 열사 3주기 추모시]

 

 

박종태 열사를 기리며

 

 

박종화

 

 

2009년 봄 날

물대포를 앞세우고 방패로 찍고

몽둥이로 대가리를 훌겨 쳐 실신시키고

꽃다운 스무 살 처녀의 머리통을 검붉은 피로 물들여 놓고

헝클어진 머리카락 그대로 시장바닥 가오리 끌 듯 끌고 가던

봄 날

한 동지가 있었습니다.

공장에서 거리로 내몰리고

거리에서 다시 뒷골목으로 몰리고

뒷골목에서 또 다시 전봇대 같은 철탑 꼭대기로 떠밀려

밤마다 살을 에는 찬바람에 웅크린 채

백일 이백일 아니 죽기 전에 내려오지 않을

하염없는 민초의 슬픈 운명의 눈물이 있었습니다.

살인 같은 해고에 맞선 저항이 있었습니다.

피눈물을 겹겹으로 흘리게 하는 총칼 아래서

결국 그 하늘 아래서

밟힐 수 밖에 없는 노동자가 있었습니다.

시체로 널부러진 우리의 동지가 있었습니다.

 

특별하지 않을 지라도 흐르고

한 순간을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은 작은 소망마저

사치라고 생각하는 세상이라면

그 소망조차 팽개쳐 흐르고

날고 싶어도 날 수가 없고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그런 세상이라면

소리 없이 기어서라도 흐르고

수수료 30원 올려 달란다고 패대기쳐 끌고 가는 미친 세상이라면

주저 없이 미친놈이 되어 흐르고

눈에 밟히는 어린 자식들과 심장으로 녹아드는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끝내 목숨을 끊을 수 밖에 없는 처참하고 비참한 세상에서

차라리 흐르고 또 흐르다가 산산이 부서져 갔던 우리의 혈육이 있었습니다.

 

다시 돌아온 봄 날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는 이 봄 날

변함없는 투쟁을 결사해야 하는 오늘 이 봄 날

열사의 이름 석 자를 애타게 불러봅니다.

알 수 없는 미래의 공포가 가슴을 짓누르고

먹구름처럼 몰려올 것만 같은 자본의 탄압이

우리를 겹겹이 에워쌀지라도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열사여

하염없는 눈물로 동지를 떠나 보내야만 했던

그 날을 기억하며

분노의 어금니를 씹는

불패의 복수전을 준비하여 부서질 것입니다 열사여

이 화려한 금수강산이 만 갈래로 찢기울지언정

사랑을 바친 내가

청춘을 바친 그대가

목숨을 바친 우리가

모두가 박종태가 되어

기어이 해방의 바다를 향해 흐르고야 말 것입니다 열사여

우리에게 힘을 주소서.

죽은 자가 살아 남은 자의 비겁함을 꾸짖어 주소서.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 보내지 않게

강철의 힘을 주소서 열사여

의리와 신념의 힘을 주소서 열사여

마지막 남은 양심이 횃불로 살아

온 광야를 불태울 수 있게

단결 또 단결의 힘을 주소서 열사여

불멸의 열사 박종태 열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