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올해 삼남길 전남지역 14개 코스(해남 땅끝에서 백양사역 앞까지 약 230km)를 모두 걸어보겠다는 목표.
무더운 여름을 피해 잠시 쉬기로 해놓고서... 회사 교육 기간까지 겹쳐지는 바람에 족히 4개월 이상은 걸음을 떼지 못했습니다.
이제 남은 구간은 해남과 강진구간인 1~5코스. 그리고 광주와 장성에 걸쳐진 13코스.
이번 걸음은 삼남길 13코스입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먹다 남은 그릇들을 치운 후 버스로 송산유원지에 내립니다.(9시 30분)
삼남길 12코스로 떠날 때 들렀던 (13코스 출발지) 운평마을은 송산유원지에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오늘은 그냥 송산유원지를 출발점으로 해서 걷기로 합니다.
이곳에서 황룡강변을 따라 임곡역까지 걷습니다.
황룡강누리길로 이름 지어지고 새로 자전거가 다닐 수 있도록 정비를 하였습니다.
가을빛이 완연합니다.
길 위의 삼남길 표지가 반갑습니다.
(디카 설정을 잘못해 한동안 사진이 뿌옇습니다. ㅜㅠ.)
가을 황룡강 풍경이 흐린 날씨에 잘 어울립니다.
군데군데 어우러진 억새 물결도 가을빛을 더합니다.
인적없는 자전거길을 따라 산수배수펌프장 옆 쉼터까지 줄곧 걸었습니다.
아랫배에서부터 더운 땀 기운이 천천히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2.5km를 걸었습니다.
외투를 벗어서 베낭에 넣고 잠시 쉬었다 다시 걷습니다.
여전히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하지만 사이로 햇살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어느덧 그토록 따갑던 태양의 기운은 변했습니다.
입석마을을 지나 삼거리 정자에서 잠시 쉬었다 임곡교로 향합니다.
한결 억새가 풍성해졌습니다.
무등산이나 천관산의 억새 군락과는 비길 바가 아니지만 강과 어울려 흔들리는 풍경이 멋집니다.
임곡교에서 삼남길 이정표를 따라 천변으로 내려섭니다.
여름이면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임곡교 아래는 강에서 뭔가 채취하는 어르신들 몇 분을 제외하곤 한산합니다.
길 앞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고양이가 보입니다.
사람이 와도 피하지 않고 걸어오는 고양이가...... 무섭습니다.(?)
얼른 카메라로 찍어두고 발을 구르니 옆 풀밭으로 어슬렁거리며 사라집니다.
길을 걷다보면 개도 무섭지만... 난 유난히 고양이가 무섭습니다.
그것도 피하지 않고 무서운(?) 눈빛으로 뻔히 쳐다보는 냥이는 소름이 돋을 만큼 무섭습니다.
용케 피한 고양이를 다시 살피기 위해 디카를 살펴봅니다.
근데 왠걸...
고양이 모습이 뿌옇게 보입니다.
아니 이미 찍은 사진들 모두가 그렇게 뿌옇게만 보입니다.
...
카메라 설정이 '근접촬영' 으로 되어 있었던 까닭입니다.
(그러고보면 우리 눈의 자유로움을 따라올 도구는 없는 듯 합니다.^^)
카메라 설정을 바꾸고 강변의 모습을 담아봅니다.
훨씬 깨끗해졌습니다.
눈 앞을 가리던 안개가 사라지듯이 선명해 마음까지 시원합니다.
좁은 보행로 곁에 선 나를 지나쳐 짐을 가득실은 차 몇 대가 쏜살같이 달려갑니다.
차가 그리 많지 않지만...... 아니 차량 통행이 없어서 오히려 속도 높은 차들이 위험하게 느껴집니다.
다리를 건너 삼거리로 나왔을땐... 사방에서 달려드는 차량들로 혼쭐이 납니다.
장성 쪽에서 내려오는 차들은 아예 길이 구부러져 보이지도 않습니다.
조심스럽게 좌우를 살펴서 쏜살같이 뛰어 길을 건넙니다.(휴~)
임곡역을 지나칠 때마다 만나던 익숙한 고가도로를 오늘 마침내 직접 건너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생겼을까?
사람의 통행이 그리 많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계단으로 오르는 입구엔 잡풀이 무성하고 한기가 차갑게 느껴집니다.
고가도로 위에서 철길 아래를 쳐다봅니다.
기차가 지나가면 좋을텐데....^^
건너편으로 내려오는 계단 아래편에 조그만 고양이 새끼들이 보입니다.
정말 귀엽습니다.^^
귀여운 고양이 새끼 3마리가 보이더니 이내 나를 발견한 한마리가 얼른 풀 속으로 숨습니다.
...
얼마전 야생 고양이에 대한 언론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야생 고양이를 없애기 위해 잡을 것인지 먹이를 주며 보호해야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을 담고 있었습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야생 고양이들은 잡아서 없애면 또 그만큼의 영역에 또 그만큼의 개체수가 생겨난다는 말이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어떤 지자체에서는 야생 고양이들이 먹을 수 있는 먹이를 마련해두어 보호하기도 한답니다.
논란은 많겠지만 그런 특성이 있다면 그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싶습니다.
잠시 살피던 인기척이 느껴져서인지 어미 고양이가 날카로운 눈으로 날 쳐다봅니다.
에고고...ㅜㅠ.
잘못 한 것도 없는데 살기(?)가 느껴집니다.
난 역시 고양이가 무섭습니다.^^
고양이 가족의 편안했던 모습과는 달리 바로 옆에는 개들이 우리에 갇혀서 짖어대고 있습니다.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에 개들이 불쌍해 보입니다.
개는 가두어 기를수록 거칠고 사나워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야생에 개들을 방치하면 여러가지 질병을 옮기고 고양이보다 더 거친 행동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길을 걷다보니 주인이 없는 개와 고양이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보살필 것인지도...
누군가는 고민해야 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로 느껴집니다.
임곡초등학교 방향으로 길을 건너기 전에 시간을 들여다봅니다.
11시 20분입니다.
조금 빠르긴 하지만 이 곳을 지나치면 한동안 식당을 만날 수 없을 듯하여 이른 점심을 먹기로 합니다.
길을 건너지 않고 왼편 임곡역 방향으로 식당을 찾아 걷습니다.
임곡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허름한 식당에서 소머리국밥을 먹습니다.
투박하지만 시골스러운 반찬도 가득 담아주셔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
다시 임곡초등학교 앞에 돌아옵니다.
12시입니다.
저녁 식사 약속도 있으니 최대한 빨리 걷기로 합니다.
지도를 살펴보니 월봉서원까지는 한동안 백우산을 오르다가 갈림길에서 장성방향으로 내려서야 합니다.
이제 황룡강 둑방길과는 다른 숲길로 접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몇 주 동안 몸을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허리며, 다리며 아직은 아프지 않습니다.
아마도 올 한 해 동안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멋진 전원주택이 들어선 옆을 지나치니 수확이 끝난 감나무밭이 보입니다.
겨울을 지내는 까치에게 남겨두는 감.
'까치밥'이라.. 저렇게 매달려 홍시로 변해갈테니..
내가 유일하게 외우고 다니는 시라며 간혹 읊조린 적이 있던 김남주의 시.
'찬 서리 나무 끝을 날으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 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이와 비슷한 것이 '고수레(고시래)' 입니다.
제사 음식으로 싸온 것들을 주변에 던져주는 것인데 주술적 의미도 있겠지만 역시 작은 짐승들과 먹거리를 나누는 것입니다.
'까치밥홍시'
우리네 인정이자 조선의 마음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숲길을 오릅니다.
도로와는 다른 푹신함이 발걸음을 상쾌하게 합니다.
판사등산 방향으로 경사 높은 고개를 한참 올라
월봉서원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10.7km 를 걸어왔습니다.
가파른 고개를 걸어온터라 땀이 흥건히 배어나옵니다.
땀을 닦고 나무의자에 앉아서 주변을 살펴봅니다만 여전히 인기척은 없습니다.
월봉서원으로 내려서는 1.2km 숲길도 역시 조용합니다.
군데 군데 노란색으로 멋진 은행나무와 나무 다리, 가을빛 머금은 개울물이 어울려 시선을 잡아 끕니다.
한참이나 쳐다보다 연신 카메라에 담아보지만 실제 풍경만큼 아름다운 사진은 찍혀지지 않습니다.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사진도 우연의 산물은 아닌 모양입니다.^^
12시 40분.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 나무 사이로 탁 트인 벌판이 보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가을빛을 머금은 나무들 사이로 월봉서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월봉서원은 조선시대 퇴계 이황 선생과 성리학 논쟁으로 유명한 고봉 기대승 선생을 기리는 사당입니다.
'사단칠정 논쟁'이라면 역사 수업을 통해 들은 바는 있지만 철학적 논쟁의 맥락은 이해하질 못합니다.
고봉 기대승 선생에 대한 깊은 관심때문에 온 발걸음이 아니지만
앞으론 고봉 기대승 선생에 대해 다루는 글이라면 관심을 가지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오늘은 그 정도에 만족하기로 합니다.
월봉서원 홈페이지 http://wolbong.org/
월봉서원과 광곡마을 이곳저곳을 사진에 담아 봅니다.
깔끔하게 정비한 흙담길 사이로 은행나무 잎사귀가 떨어지는 풍경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광곡마을을 벗어나니 호남선 철길을 만납니다.
마침 무궁화호 열차가 지나갑니다.^^
기관차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어보지만 별 반응이 없습니다.
열차을 탔을 때 느끼던 속도감과는 완전히 다른 엄청난 속도감이 전해져옵니다.
호남선 철길과 함께 걷는 것도 잠시 종산마을 입구에서 다시 마을로 진입해 조그만 언덕을 넘습니다.
철길이 멀찌감치 보이는 길을 따라 오룡동 정자까지 바쁜 걸음으로 걸어갑니다.
KTX 몇 대, 그리고 새마을호, 무궁화호, 화물열차까지...
서울로 목포로, 광주로 상하행으로 많은 열차들이 쉼없이 통과해갑니다.
약수 우물샘에서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난 후 이제는 역사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옥정역을 만납니다.
이 곳 옥정역 근방을 경계로 광주와 장성군이 나뉘어집니다.
옥정역 뒷편에서 밭일을 하시는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렸더니 '기차를 탈려면 장성까지 가야한다.'고 하십니다.
...
옥정역에 정차해 마을 주민들을 태우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간이역에 정차한 열차를 향해 손을 흔들면서 마을에서 급하게 뛰어오시던 어르신들의 모습도 떠오릅니다.
그 후 마을 주민들에게 제공되는 대중교통서비스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루에 몇 번씩 멈추어서 사람을 실어나르던 기차가 마지막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몇 km를 걷든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타든...
어떻게든 삶은 계속되겠지만
이 곳 주민들에게 하루 2~3번 주어지는 (유일한 대중교통서비스인) 열차 서비스가 그렇게 호사스럽고 불필요한 서비스인지 모르겠습니다.
안타깝게도... 돈이 되지 않으면 없어지는 게 '상식'인 사회입니다. ㅠㅠ.
옥정역을 지나자 새로 지어진 집에 고급스러워보이는 자가용이 눈에 들어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오래된 폐차가 개집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오른손 손잡이 안쪽에 매달린 줄에 묶인 개가 반갑게(?) 짖어 댑니다.
'ㅋㅋ. 니 집 한 번 좋구나!'
옥정리 경로당을 지나니 나무 정자에 초록빛 호박 두 개가 한 켠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어느 분이 수확해 두었을까?
아무나 가져가도 신경쓰지 않는 모양입니다.
(아니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 모양입니다.^^)
정갈하게 닦아놓은 호박의 초록빛이 피곤함을 달래줍니다.
14시 40분. 걷기 시작한지 대략 5시간.
호남선 철길을 가로질러 다시 황룡강과 만납니다.
이제 장성읍내에 가까워진 탓일까요?
황룡강을 따라 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도 보이고 산책 나온 이들도 자주 만납니다.
멀리 직선 고가로 쭉 뻗어나가는 호남고속철도 노반 건설 공사 현장이 보입니다.
광주에서 용산까지 약 2시간이면 갈 수 있도록 해 줄 이 공사는 2015년 말이면 완공된다고 합니다.
원래 수도권, 특히 서울~시흥 구간의 열차 밀집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우회 철길을 건설하고,
KTX 고속열차의 속도 문제로 소외된 호남지역에 전용선을 건설해 해결하겠다는 복합적인 의미의 사업입니다.
정부가 KTX 민영화를 추진하겠다고 한창 논란 많은 <수서발 KTX 민영화>가 바로 이 신설 고속철도 건설과 관련이 있습니다.
국민 세금으로 건설된 자산은 국가가 운영하는 것이 맞습니다.
철도와 같은 국민의 이동권은 그 어떤 이유로도 포기해서는 안될 권리입니다.
고집스러운 정부와 소통하지 않는 현 정권의 철도 정책 추진이 걱정됩니다.
15시 15분.
(4일/9일에만 열리는) 한가한 황룡강 5일장을 지나 지하도를 건넙니다.
15시 32분.
오늘의 목적지인 장성역 앞에 도착합니다.
광주 광산구 송산유원지에서부터 식사와 휴식시간을 포함해 약 6시간 동안, 23.24km를 걸어왔습니다.
'강이 그리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섬진강 여행 두번째]1일차_섬진강댐에서 순창 구송정유원지까지(약 30km) (1) | 2014.06.23 |
---|---|
[자전거 여행]제주도 2박 3일(5월 13일~15일) (0) | 2014.05.16 |
_2013년 가을 무등산 중봉 억새 (0) | 2013.09.25 |
[섬진강 자전거여행]여행기에 담지 못했던 모습들 (0) | 2013.08.19 |
[섬진강 자전거여행]3일차_광양 다압 평촌마을에서 배알도까지(약 35km) (0) | 2013.08.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