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2일 새벽 전라선 율촌역 부근을 달리던 무궁화호가 탈선 후 전도되어 기관사가 숨지고 8명이 다친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다. 철도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사고였다. 사고 초반에는 충돌 때문인 탈선으로 짐작되었지만, 현재까지 조사 결과 과속과 지시 위반 때문인 사고로 갈피가 잡히고 있다. 새벽 시간 운행되는 승객이 적은 열차였기에 사고의 규모에 비하면 인명 피해가 적었지만, 하마터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과연 이번 사고는 막을 수 없는 사고였을까?
첨단 시스템 운용, 그러나 이례 상황으로 인한 허점 막지 못해…
사고 직전 열차가 분기기에 접근할 당시 속도는 관제사가 지시한 제한속도인 50km/h를 훨씬 넘긴 127km/h였다. 몇몇 사람들은 철도에는 이런 과속을 막아 줄 안전장치가 없느냐고 의문을 품는다. 사실 해당 구간과 열차에는 우수한 신호체계인 ‘ATP(자동 열차 방호장치)’설비가 구축되어 있다. 열차 간의 간격이 가까워지면 제한속도를 낮춰줌은 물론이고 곡선구간, 분기기 등 취약구간의 제한속도도 자동으로 조절해 주는 신호체계이다. 이러한 신호체계를 통해 과속, 탈선사고가 원칙적으로 일어나지 않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일반적인 상황과는 다른,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보통 철도는 열차가 잘 다니지 않는 새벽 시간대에 전차선과 선로를 보수하는 작업을 한다. 새벽 시간 운행되는 해당 열차가 지나가야 할 일부 구간 역시 선로 보수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따라서 열차는 원래 다니는 하행선(좌측 선로)으로 운행할 수 없어, 상행선(우측 선로)로 선로를 바꾸어 운행하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우측 선로의 신호 설비는 상행선 전용으로 설치 되어 있다. 따라서 하행선을 달리던 해당 열차가 진입하게 되면 별도의 안전측 동작을 지원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례 상황에서는 관제사가 지시한 속도에 따라 서행운전 하도록 규정이 있다. 하지만 이를 기관사가 위반하면 막아줄 안전 설비는 사실상 없다. 열차의 안전이 오로지 기관사의 손에만 달린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상행선로에서 하행선로로 다시 변경해야 하는 구간을 기관사는 관제실과 서로 오인했고, 결국 열차는 별도의 보호 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채 127km/h의 속도로 해당 구간을 지나가다 사고가 나게 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비슷한 사고가 없도록 다방면의 분석이 필요
대부분 이번 사고의 원인을 단순히 ‘과속’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몇몇 철도 전문가들은 ‘신호 설비’로 조심스럽게 분석한다. 한 철도분야 교수는 “고속선과 간선을 제외한 대부분 노선에는 반대편 선로 운전을 위한 ‘양방향 신호설비’가 도입되지 않았다.”라며, “반대선로 운전 시 안전 시스템이 동작하지 않는 상황에서 오직 기관사의 판단에 안전을 맡기는 것은 위험한 상황이며, 사고가 한 건이라도 발생한 이상 별도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전문가는 “경부선의 경우 양방향 설비를 도입하는 데 약 400억 원의 비용이 들었다.”라며, “해당 전라선을 비롯한 대부분 노선에는 비용 등의 문제로 평상시 잘 쓰지 않는 양방향 설비는 구축하지 않은 것 같다.”며 비용문제로 추가적 안전 설비 도입이 어려운 것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현실적으로 몇 번 없는 운행 상황에 대비해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이번 사고로 인해 안전에 구멍이 발견된 이상 추가 설비 도입 이외에도 여러 방면의 논의가 필요해 보이는 시점이다.
[주] 철도를 전공하는 대학생 인턴기자가 쓴 글이다. 적어도 이 정도의 인식과 분석이 철도 경영 주무 부처나 운영사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대학생 인턴기자의 문제의식보다도 더 형편없는 생각에 연연하고 있지 않을까 걱정이다. 사람의 죽음을 두고서도 배우려 하지 않는 철도 현실이 가장 무서운 위험 요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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