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하고 이기적인

[생각]전라선 탈선 사고에서 '성과 평가'의 위험을 보았다!

대지의 마음 2016. 5. 8. 11:21

[기고]

 

전라선 탈선 사고에서 성과 평가의 위험을 보았다!

 


 

성과연봉제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그러나 성과주의 시스템이 철도 안전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지 못해 아쉽다. 이미 현장에 도입된 성과평가시스템으로 인한 영향이 기관사의 사망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나. 성과연봉제 도입이 아니라 원래 존재하던 성과평가시스템마저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함을 이번 전라선 사고는 알려주고 있다.

 

 

지난 422일 새벽 339분경 발생한 제1517열차의 궤도 이탈 사고는 승객의 직접 피해와 열차 운행 중단에 더해 탑승 기관사가 사망에 이른 충격적인 사고다. 사고 직후 언론은 언제나 그랬듯이 안전불감증이란 단골 메뉴에 관제사 지시도 무시하고 기준 속도의 4배 운행이라는 선정성 높은 기사를 통해 사고의 배후 원인 규명에 찬물을 끼얹는 관행을 되풀이했다.

 

 

사고가 일어나고 피해자가 나오면 먼저 범인을 찾아 사고의 결과에 상응하는 처벌을 내리는 사고(思考) 패턴에 위험성마저 느낀다.’는 일본의 안전전문가 이시바시 아키라는 표면에 나타난 현상뿐만 아니라 배후에 잠재된 유발 요인을 가급적 많이 파악하고, 그것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다하는 것이 처벌을 위한 수사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 냉정하고 이성적인 사고 원인 규명 과정에 주의를 돌려야 한다. 기관사가 저지른 실수(과속)를 부정하거나 무마하려는 게 아니다. 사고는 단일한 하나의 원인으로 발생하지 않으며 사고 당사자도 사고를 일으킬 고의를 가지고 운전 취급에 임하지 않았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질문은 당신은 왜 실수를 했나?’가 아니라 당신은 왜 127km로 운전하겠다는 확신이 생겼나?’, ‘왜 기관사의 실수(과속)는 사고에 이르도록 어느 한 부분에서도 통제되지 못했나?’이다. , ‘누가 나쁜가?’가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가?’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선, 이번 사고를 접한 직후 전국의 기관사들에게 직관적으로 떠오른 생각은 비슷하다. ‘그래, 나도 그런 경험이 있는데.’ 복선 구간에서의 단선 취급 상황에서 제동 취급의 막바지에 이르러 하염없이 전방을 주시하고 발끝에 힘만 주고 있었던 승무원들, 그 등줄기에 흥건한 땀이 흘러내리지 않은 이가 얼마나 있나. 운전보안장치의 정상 기능이 확보되지 않아 온전히 승무원의 취급에만 의존하는 단선 반대선 운행은 이미 많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많은 승무원들이 경험했다는 준사고(아차사고)는 우리 현장에서 대형사고를 예방할 교훈으로 활용되지 못했는가? 사고 1건당 29건의 경미한 사고가 있고, 다시 300건의 준사고가 발생한다는 하인리히법칙의 시사점은 300건의 준사고를 통해 대형사고의 가능성을 파악해 사전에 철저히 대비하는 것이다. ‘원활한 의사소통과 자유로운 문제제기를 장려하는 보고하는 문화가 철도안전보건경영방침에 나타난 제1의 안전문화가 아니던가.

 

 

평소 보고하라는 수많은 공문과 지시가 있었음을 볼 때 공사 관리자들의 억울함도 이해된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보자. 작은 에러와 준사고는 평소 보고되면 안되는 금기사항처럼 다루어져 오지 않았던가. 경영평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무사고·무재해 운동의 실적이 무너진다고 아예 하찮게 취급하거나 무시하지는 않았는가? 중요한 정보의 보고를 차단하면서 공문이나 지시를 통해 안전 위협 요소 취합에 나선다면 현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우리 공기업이 사고 건수를 인사평가와 개인별, 팀별 성과급에 반영하는 것과 달리 JR 동일본은 준사고를 비롯한 인적 에러 보고에 대해 인센티브를 부여하되 성과급 제도는 도입하지 않고 있다. 직원간 경쟁을 촉발해 안전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번 사고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다양한 폐색 방식의 병행 사용과 구간의 분할과 통합으로 인한 불안정성그리고 이러한 제도 변경의 배경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살필 수 있다.

 

 

복선구간에서의 일시적 단선 운전은 폐색구간의 분할과 합병, 도중 운전취급생략역의 존재, 폐색 방식의 병행 사용이 더해져 상당히 복잡한 매뉴얼을 구성한다. 이마저도 지침을 통해 변경 과정을 거쳐 왔다. CTC(중앙집중제어시스템) 도입이 가져온 변화라 할 수 있지만 제도 변경의 배경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이미 본사의 일부 관리자들도 문제점을 토로했다시피 불안정성이 확대됨에도 열차 지연 운행을 최소화하고 더 많은 열차의 운행을 가능하게 하려는 수익 중심의 관점이 핵심 원인이기 때문이다. 사고가 발생했던 율촌과 성산이 폐색구간의 양 끝 지점이 아닌 도중 무인역임에도 불구하고 운행선 변경을 감행하게 했던 건 201012월 잠정지시를 통해 폐색구간을 축소해 추가 열차 투입이 가능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사고 직후 본사의 제1조치가 바로 이 지시를 취소한 것이었다.

 

 

또 다른 배후 요인으로 짚을 문제는 정시 운행 압박과 이로 인한 문화적 영향이다. 이 문제는 우리 내부의 안전문화(안전철학)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해법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열차에 대한 총괄적 제어를 책임지는 관제사에서 잠깐의 정차에도 폭언을 듣거나 승객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열차승무원, 긴박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유지보수 현장과 열차 운행 최일선의 기관사까지 전 직종의 사고 대응 문화를 좌우하는 안전과 직결된 사안이다.

 

 

사고 열차는 순천역에서 약 6분 늦게 인수인계 되었고 도중 작업자 보호를 위한 서행을 통해 더욱 지연되었다. 사고 지점인 율촌역을 앞두고 상구배 터널에서 최대 부하 8단 운전을 감행했음은 당연하고 터널을 벗어날 즈음 운행선 변경을 인식하고 급제동 취급을 했지만 망연자실 생사를 넘나드는 현장과 대면했다. 기관사라면 누구나 이해되는 생각의 흐름이고 감정마저 이입되어 끔찍한 트라우마로 남는다.

 

 

이 배후 요인의 원인은 무엇인가? 20·40분 지연보상제도와 열차 정시운행이 공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전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정시 운행이 모든 경우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 수익 중심의 공기업 평가 기준이 안전을 등한시하게 만드는 근본적 배후 원인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정책과 제도의 영향으로 상시화된 불안전 요소를 안고 열차는 달리고 있는 것이다.

 

 

안전상 문제를 느끼면 가장 안전한 조치를 취하라. 이로 인해 불이익이 남거나 시민들로부터 쏟아지는 민원이 들어와도 경영진이 감당할 것이다.경영진의 확고부동한 의사표시가 있어야 비로소 <안전 실천 결의>에 따라 가장 안전한 방법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조직 안전 문화의 획기적 전기가 마련될 것이다. 허용속도 범위 내에서 최대한 회복 운전을 해야 한다는 규정도 삭제를 검토해야 한다. 이 문구 하나가 주는 안전 위협 요인을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철도 안전은 확보가 가능하다.

 

 

이 밖에도 직접적 원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잠재적 배후 요인과 문화는 많다. 문제는 현장 직원들의 직관과 경험, 주장을 비전문가적 견해로 치부하고, 제도와 문화적 한계에 대한 근본적 대책 마련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사고에는 이른바 계보가 있다고 한다. 지난 20037명의 유지보수 노동자가 사망한 신태인~김제간 사고가 동일 계보라 할 수 있다. 당시 60km/h 전체 구간 서행은 얼마 뒤에 작업 구간으로 축소되었고, 이마저도 특정 작업 시 서행으로 바뀌었다. 역시 열차 지연을 최소화해야 할 수익적 목적이 가장 큰 이유였다. 전라선 사고에서 성과주의 평가시스템의 위험을 보지 못한다면 사고의 계보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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