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외로움

내게 생긴 변화, 동네 비건 빵집을 만나는 반가움!

대지의 마음 2020. 1. 22. 06:30


사소한 것이라도 하나쯤 실천하기 위해


이젠 운전면허증이 없어져버린 내게 왜 운전을 하지 않느냐는 물음을 종종 듣는다.

처음에는 운전을 극구 말리시는 어머니 핑계를 대거나 술 많이 먹는 버릇 때문이라고 돌려 말했지만,

지금은 나름 소신껏 답을 준다.


'지구 환경을 위해 사소한 것이라도 하나쯤 실천을 하기 위해서'

모두들 이야기하듯, 나 혼자 무얼 실천한다고 지구 환경이 당장 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실천하지 않고 가능하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누구는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나 음식물을 남기는 습관에서 변화를 꾀할 수 있을리라.

또, 비닐 사용을 줄이기 위해 장바구니를 챙겨 다니거나 텀블러 사용을 고집할 수 있다.


나는 조금 더 나아간 것 뿐이다.

운전을 하지 않기 위해 아예 운전면허 갱신을 하지 않았고 결국 면허는 취소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비교적 먼 거리-약 2시간 30분 정도-를 가능한 걸어서 출퇴근하려 한다.

적어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그것마저도 줄여서 두 발로 걸으려고 노력한다.





변화를 도운 몇 가지 고민들


그런 내게 또 하나의 혁명적인(!) 변화가 생겼다.

변화는 최근 나의 뼈아픈 후회에서 시작되는데, 때마침 책 한 권('몸에도 미니멀리즘')이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나는 원래 고집이 세다는 사실을 합리화해 왔다.(돌이켜보니...)

어린 시절 떼를 쓰던 추억도 그러하지만, 직장 생활(과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하면서는 창피한 일이라기 보다는 그걸 장점이거나 어쩔 수 없지만 유난스럽지 않은 집요함 정도로 보여지려고 애를 써왔다.(역시 돌이켜보니...)

솔직히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사회을 유익하게 바꿔보려는 의무감은 복잡미묘한 조직 내부의 관계나 조합원과의 관계에서 활동가들을 매우 힘들게 한다. 그러니 어느 정도의 고집이나 집요한 근성이 자연스럽게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게 숱한 시간을 지내오면서 내 특유의 성격은 무던한 일상의 활력소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듯 싶었지만,

타인과의 감정적 충돌을 일으키거나 그렇지 않다면 긴 시간 동안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는 횟수가 늘어갔다.


대부분은 직장(이나 노조)에서 얽힌 사람 관계에서 발생하거나, 내게 부여된 역할을 행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그렇게 외부에서 해소되지 못한 문제들은 오랜 동안 내 가족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돌아가 쌓여갔다.


예사롭지 않은 관계의 출발은 그랬다.

특히, 작년 9월 즈음의 고민들은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고민을 풀어가는 방식'이 정작 나를 힘들게 했다.


아주 소소한 갈등에도 즉각적으로 노골적인 욕설이 나오거나, 혼자서 짜증스런 감정에 휩싸여 반응했다.

나를 통제할 시간 조차 허락하지 않는 즉자적인 반응에 정작 가장 놀라는 건 '나'였다.

작년 파업 때 민주당사 인근 카페 주인과 주고받은 욕설은 두고두고 부끄러운 기억으로 얼굴을 달군다.

(물론 전적으로 나에게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분명!!)





아이들의 모습에서 과거의 '나'를 돌아보다.


비슷한 시기 나는 딸과의 관계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공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율적인 학교 생활이 좋아 보였지만, 친구 관계에서 생긴 무책임한 모습은 실망스런 것이었다.

부모라고 혼을 낼라치면 경찰을 부르겠다거나 -실제로 불렀다!- 한마디도 수긍하지 않고 적대적 감정을 내놓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렇게 서로의 감정은 극과 극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 시절 어떠했을까?

대학시절까지 이어진 고집스러운 내 태도가 부모들을 얼마나 힘들게 했을까?

딸의 지금 모습은 어쩌면 18년 동안 아이에게 은연 중에 보인 부모들의 모든 유산이 담겨진 것이리라.






카톡 프로필의 변신


절제하기 힘든 감정과 부자연스러운 가족 관계, 돌파구를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연일 어떻게 해야 할까하는 고민이 이어졌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내게 이기적인 생활'

올해 계획에 담긴 내 목표가 그런 고민의 결과물이다.

타인을 괴롭히지 않는, 온전히 내게 집중한 '이기적인 생활'. (그러니 타인의 이익을 취하는 이기주의와는 다르겠다.)


예를 들면, 사회가 어떠니, 노동조합이 어떠니, 공동체가 어떠니 하는 오지랖들을 팽개치고

내가 하는 직장생활(열차 운전)과 독서, 걷기 등 나를 가꾸는 데 모든 것을 집중하는 것.


그것이 내게는 '이기적인 생활'이다.

소박하지만 내가 결정한 것을 꾸준히 실천하기 위해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 또한 매우 이기적인 것이 될 수 있겠다.


마침 읽고 있던 책 한권과 다큐멘터리 몇 편을 통해, 나의 건강과 지구 환경을 함께 챙기는 습관의 변화를 통해 내 정신도 육체도 함께 건강해 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결심을 하니 카톡 프로필도 따라서 변신을 하게 된다.

'내 친구 지구와 화해하기', '내 친구 지구와 친하게 지내기' 등등...









아직 '채식주의'보다는 '육식 거부'


다큐멘터리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과 '카우스피라시'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인간의 육식이 얼마나 자연과 내 몸에 해가 되는지 알 수 있었다.


우선 나는 고기와 생선을 먹지 않기로 한다.

완전한 채식주의는 내게 현실적이지 않다는 판단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내용을 마련해 실천하는 것에 집중한다.

비건 지향의 -고기와 생선은 먹지 않고, 가능한 유제품과 달걀을 피하는- 식습관이 핵심이다.


기관사 생활은 외부 식당을 이용하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나의 식습관이 사람과의 관계를 방해하지 않도록

아주 작은 정도의 일탈을 허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생활의 변화

내 몸과 마음에서 건강한 신호가 느껴진다.

객관적인 상황은 변하지 않았지만 나를 편하게 대하려고 노력하니 모든 부담이 덜어지고 평온해지는 느낌이다.




그러니 출퇴근길에 만날 수 있는 동네 비건빵집이 반가울 수 밖에...

빵집 '빵과 장미'에서 얻은 홍보전단은 이면지를 사용해 만들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담긴 내용이 너무 예쁜 마음이어서 흐뭇한 웃음을 짓게 했다.


대안적인 빵, 대안적인 삶이라...

나는 그 소소한 노력들이 얼마나 중요한 일들인지 알 것 같다.


내게도, 내 가정에서도 조그마한 변화가 시작되길 희망한다.

아직 그 단초도 찾기 어렵지만 말이다.





(2020. 1. 22. 새벽)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