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외로움

[추억의 소품]아버지의 재떨이와 책갈피(병따개?)

대지의 마음 2019. 9. 14. 11:50




병따개? 책갈피?



분명 책갈피(?)(잘보면 병따개!)를 구입했었다.

가족들과 캄보디아 기념품 가게에 들어섰을 때,

이것저것 구경하던 와중에 단연 손이 갔던 물건.


얇지 않은 두께임에도 책 속에 넣어둔다면 펼칠 때마다 만지고 보는 것으로 좋겠다 싶었다.

손에 무언가 내가 아끼는 걸 만지작 거린다면 책 속에 빠져들기 쉽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내 책상 옆에 방치되었던 물건.


그런데 2년 동안이나 잊고 지냈던 책갈피가 어디서 갑자기 등장한 것일까?



...




...


추석 명절 아침.


50년 동안 운영해 온 식당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2층에 간소한 거처를 마련 중인 어머니.

이미 몇 가지 필수 살림들이 새롭게 자리를 차지한 가운데,

1층에 자리한 장독대를 옮기려고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오랫동안 묵힌 가정초의 맛은 바로 이 장독대에서 나온다.

장독에 담긴 내용물을 비우고, 노끈이나 보자기를 이용해 미끄러지지 않게 2층으로 장독을 옮긴 후,

흘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다시 채우면 끝이다.

물론 말처럼 간단치는 않았다.


그렇게 1시간 여를 넘겨 장독대를 옮기는 와중에,

낯익은 물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


우와!!!



...





몇 해 동안이나 찾곤 하던 바로 그 물건.

돌아가신 아버님이 -안방에서!- 담배를 피우실 때마다 쓰던 놋재떨이가 그것이다.




"도대체 그 놋재떨이는 어디로 갔을까요?"

어머니에게 묻곤 했었다.

"그러게 귀한 물건인데, 손님 중에 누가 가져갔을끄나?"



그런데, 바로 놋재떨이가 발견된 것이다.


어릴 적 추억이 새록새록...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사진으로 톡방에 올리자 호주에 사는 남동생 왈,

"ㅎㅎㅎ, 워따메 오랜만이네!"하고 반가워한다.






...


세제를 섞은 물로 몇 차례 문질러보지만 영 시원치않다.


예전에는 짚단으로 모래를 문질러 윤을 낸 기억이 있다는 어머니.

근데 짚단을, 모래를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


휴대전화 검색.....


.....

식초를 섞은 소금물에 얼마간 담가두었다 씻으면 말끔하다?

그렇군.


그렇게 또 30분.

쇠수세미로 또 몇 분을 문지르고 물을 흘려보내니 비로소 놋 빛깔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묵은 때가 사라지고 반짝반짝 조금씩 드러나는 놋 빛깔이 얼마나 신기하고 이쁘던지.. 










그리고, 다음날...



애지중지 가방에 담아 옮긴 놋재떨이는 내 책상 한 켠에 자리를 잡았다.

책상 주변에 어지럽게 놓여졌던 소품들도 각각 제 의미를 다시 되찾게 되었다.

캄보디아에서 사 온 책갈피도...!




몇 가지 소품들과 어울리니 더 빛깔이 살아난다.

더군다나 여러 추억이 담긴 소품 하나하나씩 만지는 기분이라니...!



아버지의 시계, 올해 5월 행사에서 얻은 공공운수노조의 518 뱃지,

내 이름 담은 책 도장, 스위스 SBB에서 선물로 받은 USB,

그리고 7마리(꼼꼼히 세어보니 7마리였다! 7마리!!) 코끼리 모양을 담은 책갈피....






 


작은 소품 하나를 얻고 만지고 정리하는 것으로 마음이 가라앉을 수 있다니....

얼마만에 느껴보는 온화함인가.



좋은 일이다.

감사한 일이다.





(2019. 9.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