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에 대한 고민은 접어두려고 했는데, 호기심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최근 여러 사고를 접하며 근본적으로 돌아보아야 할 것으로 주목되는 것이 '안전문화'이다.
물론 '안전문화'는 모르는 이가 없다.
그럼에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본래의 맥락이 전달되지 않고 소통되는 단어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훈계하듯 가르치는 언론이 주장하는 '안전문화',
국토부, 기재부와 같은 정부 부처에서도 핵심 테마로 등장하는 '안전문화'이건만
과연 이것이 '문화'라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떠드는 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또,
'안전문화'는 입으로 안전을 강조하는 관리자와 정책 당국자에게는 충분한 것이되,
늘 뜨거운 볕이나 혹독한 추위가 에워싸는 현장 작업자에게는 '귀찮아서' 가지기 어려운 것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만연하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 정책에 등장하는 안전문화 제고에 대해서도,
언론이 떠드는 '안전불감'과 '안전문화'라는 것에 대해서도 다시 그 본래의 취지와 맥락이 무엇인지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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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 몇 해 뒤 방문 중인 스웨덴에서 들었었던 '에스토니아호 침몰사고'
한겨레신문은 세월호와 관련된 후속 논의가 한창일 무렵 '에스토니아호 침몰사고'에 대한 기사에서
사고의 근본 원인으로 '안전문화'를 조명한다.
짧은 기사였지만 당시 접했던 어떤 기사보다 사고에 대한 입체적이고 본질적인 조명이 아닐까 싶다.
기사는 지나치게 강요된 매뉴얼 준수 문화의 문제점과 창의력과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안전 위주의 실천이 가능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주목하며 '안전문화'를 사고의 원인으로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한겨레신문 기사 : http://blog.daum.net/jmt615/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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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 이후 JR 동일본 철도의 훌륭한 대처는 여러모로 교훈을 준다.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지만 JR 동일본에서는 단 한 사람의 희생자도 발생하지 않았고,
그 주요한 이유로 정해진 매뉴얼을 '뛰어 넘는' 안전한 대응을 지목한다.
평상시와 같으면 매뉴얼을 '넘는다'는 건, 매뉴얼을 '어긴다'는 것일텐데 말이다.
즉 매뉴얼을 어기며 안전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매뉴얼만 지키면 안전이 확보된다고 주장하며,
사고 때마다 현장 작업자가 매뉴얼과 수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만
사고의 원인으로 결정해 처벌하는 일로 후속 대책을 대체한다.
(작업자의 매뉴얼 및 수칙 준수 여부를 따지자는 게 아니라, 그것만 따지는 걸 전부로 취급하는 걸 문제삼는 것!)
그리고, 또 사고는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는 건 원인 진단이 잘못되었고, 대책이 제대로 서지 못했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또 작업자가 원인으로 거론되며 더 강화된 처벌 중심의 문화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매뉴얼을 지키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예측불허의 현대적 사고와 재난 앞에
훨씬 더 안전 중심의 현장 대응이 가능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바로 그것이 '안전문화'을 다시 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돈도 벌고, 안전도 챙기면 좋지."하는 기업 경영인의 말이 맞는 듯 싶지만,
사실 '안전문화' 관점에서는 전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이미 여러 글에서 주장했듯이
현장 작업자는 우리 기업은 안전도 챙겨야 하지만, 돈도 중요하다는 가치를 몸으로 알고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현장 안전문화의 실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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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몇 건의 사례에서 등장한 '안전문화'는 우리가 알고 있거나 언론에서 회자되는 것과는 묘한 이질감이 든다.
즉, '안전문화'는 개인이 안전 최우선의 사고 방식을 가지는 것만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저변의 시스템이 안전 중심의 활동이 가능하도록 패러다임이 수반되고 문화적으로 형성된 수준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법적 강제와 지시로 통하지 않는 '문화'라는 사실임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스위스 철도 담당자와의 대담에서 '안전문화'를 가꾸는 가이드라인이 존재하느냐는 우리의 질문에 현명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지시하는 순간 그것이 '문화'일 수 있는가!'
얼마나 놀라운 답변인가?
그들은 물론 '안전문화'를 개선하고 강화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의 질문에 무엇이 선행되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꿰뚫어보고 답변한 것이다.
이러한 안전담당자의 태도와 관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비로소 안전문화 조성의 첫 걸음이 시작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만나본 안전담당자와 경영자 누구도 이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면담에 함께 했던 관리자들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주의를 돌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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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것이다.
'문화'의 속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안전문화'는 형성되지 않거나 지금처럼 전시적인 것으로 빠지며 왜곡될 것이다.
오늘도 언론을 뒤지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안전문화 선포식', '안전문화 선포 결의대회', '안전문화 서약식'....
선명하게 찍힌 사진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 안전이 확보되는 것인가.
(사실 이러한 보도는 언론도 좋아하고, 특히 그런 흐름을 잘 이해하는 사측은 무엇보다 선호한다. 심지어 파업을 마치면 이런 퍼포먼스라도 해야 한다고 대놓고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사정을 아는 나에겐 웃픈 현실이다.)
이 책을 읽고 싶어지는 이유가 그런 것이다.
정진우 교수의 책은 여러 권 읽어왔고, 지금도 늘 기대하며 기다리는 책이다.
휴먼에러에 대해 다루는 연재 기사도 잘 스크랩해 두고 있다.
고신뢰조직과 에릭 홀나겔 교수의 주장과 같은 안전문화와 관련되어 익히 들었던 논의들을 조명하며
철학적(!)이되 현실적인, 말하자면 본질과 맥락을 관통하는 주장이 담겨 있길 기대해 본다.
CHAPTER
01 안전문화의 전제적 논의
02 안전문화의 위상과 중요성
03 안전문화를 둘러싼 문제
04 고신뢰조직과 안전문화
05 안전문화의 요소
06 안전문화의 모델
07 안전문화 조성을 위한 포인트
08 안전문화의 항목
09 안전대책과 안전문화
10 리질리언스와 안전문화
11 SafetyⅡ와 안전문화
12 안전문화의 평가 및 측정지표
13 안전문화 조성방안
[출판사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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